아침 운동을 시작했다
아침 운동을 시작했다. 사실 운동이라고 하기도 쑥스러운 것이 고작 한 시간 남짓 빠르게 걷는 정도다. 하지만 시작한 지 어느덧 세 달에 접어들고 있으니, 이 핑계 저 핑계를 대며 평생 운동과는 담을 쌓고 숨쉬기 운동만 하고 살아온 나에게는 엄청난 일이 아닐 수 없다.
아침에 눈을 뜨면 곧바로 세수를 하고, 물을 한 잔 마신다. 그리고 모자를 눌러쓰고 집을 나선다.(모자는 헝클어진 머리를 감추기 위한 위장전술이다.) 이때 주의해야 할 점은 집을 나서기 전까지 아무 일도 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지난밤 정리를 채 끝내지 못한 싱크대를 잠시라도 바라보거나 방바닥으로 시선을 떨궈서도 안된다. 십중팔구 싱크대 정리를 시작하거나 새롭게 발견한 방바닥 먼지를 치우려고 청소기를 가지러 갈 것이기 때문이다. 집안일은 언제나 복병처럼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어디 집안일뿐이랴. 특히 조심해야 할 것은 핸드폰을 만지지 않는 것이다. 핸드폰을 여는 순간, 어쩌면 현관문을 나서는 것이 아예 불가능해질 수도 있다. 그러니 눈을 떴다면 그 무엇도 하지 말고 최대한 빠른 속도로 현관문을 나서는 것이 낫다.
매일 아침 모닝 드로잉
아침 운동을 나선 지 보름쯤 되었을까?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기왕 나서는 김에 드로잉을 하고 오면 어떨까? 사실, 대학을 졸업한 후 간간히 그룹 전시에 참여하기는 했지만 절대적으로 그리는 시간이 부족했던 터라 손의 감각은 완전히 무디어진 상태. 당연히 그리기에 대한 자신감도 떨어질 대로 떨어져 있었다. 자유로운 손의 감각을 살리기 위한 훈련이 필요하다. 지난 오월, 첫 개인전을 준비하면서 느꼈듯이 지금 나는 내 또래 작가들이 이미 수 십 년 전 했던 과정을 지금 압축해서 하고 있다고 느낀다.
동기야 어찌 되었건 스스로 '모닝 드로잉'이라고 이름 붙인 이 시간은 나의 일과 중 가장 행복한 시간 중 하나가 되었고, 이제 아침 운동은 드로잉을 위해 나서는 길이 되었다. 대문을 나서면 최소한 삼십 여분을 걷는다. 걸으면서 그리고 싶은 것을 탐색한다. 그리고 싶은 대상이나 장소를 발견하면 그 자리에 돗자리를 깔고 앉아 그리기 시작한다. 그러니까, 30분 걷기, 한 시간 드로잉, 다시 30분 걷기의 순서다. 운동을 시작하면서 비로소 사는 곳 주변의 풍경을 찬찬히 보기 시작했다.
모닝 드로잉의 원칙
모닝드로잉을 시작할 때 스스로에게 약속한 것이 있다. 모닝드로잉을 할 때는 사진의 도움을 받지 말 것. 예를 들어 사진을 찍어서 집에서 그리는 방식으로는 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사진은 작가들에게 가장 중요한 보조 수단이다. 나 역시도 사진의 도움을 많이 받는다. 하지만 사진은 누군가의 생각과 느낌이 반영된 것이다. 설사 그것이 작가 자신의 것이라 하더라도 말이다. 또, 사진은 기계가 만들어낸 이미지이기 때문에 기계가 담을 수 있는 이미지로 구현된다. 사진의 한계는 또 있다. 내가 대상에게서 느낀 것은 '이 순간 있는 것'이지만 사진은 그 순간의 감각이 절대적으로 축소되거나 사라질 때가 많다.
드로잉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나와 대상이 직면하는 순간이다. 가끔 인터넷에서 드로잉 방법을 담은 동영상을 본 적이 있다. 나무 그리는 법, 집 그리는 법.... 물론 그 같은 학습이 아주 불필요하다는 것은 아니다. 당연히 도움이 되는 지점이 있다. 하지만 나무의 생김새는 나무를 보면 안다. 나무마다 기둥과 줄기의 모양이나 무늬가 다르다. 나뭇잎의 모양이 다르고 나뭇잎이 달린 방향도 다르다. 대상을 찬찬히 바라보면서 천천히 따라 그리면서 생김새를 관찰하는 것이다. 그리는 방법이란 그와 같은 경험을 사후적으로 정리해 놓은 것이기 때문에 선후가 다르다. 내 생각에는 대상에 집중하여 여러 번 반복해서 그리다 보면 자연스럽게 대상에 도달하게 되는 것 같다. 대상의 모든 것은 내가 보고 있는 이 순간 대상 안에 있다. 드로잉 하는 순간은 대상과 내가 순수하게 직면하는 순간이어야 한다.
이렇게 굳게 결심을 해도 어쩔 수 없이 사진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날이 있다. 비가 너무 많이 와서 아침 운동을 나갈 수 없거나 이런저런 집안행사로 시간을 확보하지 못할 때는 어쩔 수 없이 사진의 도움을 받는다.
내 눈으로 대상을 보고 관찰하고, 그 생김새를 옮기는 시간은 생각보다 행복하다. 고작 나무 한 그루인데 한 시간이 순식간에 지나간다. 집을 나설 때는 없었던 아침 햇살이 어느덧 나뭇잎 사이에서 반짝이고 산책로에 긴 아침 그림자가 드리워진다. 풀벌레 소리가 사위를 채운다. 사각사각 그리다 보면 그 시간은 한순간인 듯 지나간다. 그런 의미에서 드로잉은 명상과 비슷하다는 생각을 때때로 해본다. 또 하나, 스케치북을 펼치면 그림을 그린 날 있었던 일이나 그릴 때의 감각이 생생하게 되살아난다. 드로잉은 일종의 일기인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