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켜 봐’ 대신 ‘뒤로 두 걸음’

모호한 명령을 구체적 부탁으로

by 이진희

예전에 오은영 선생님의 <어떻게 말해줘야 할까>를 읽고 아래와 같은 글을 올린 적이 있어요. 저는 비단 저 책뿐 아니라 대화에 관심이 많아요. 6년 전쯤부터 비폭력대화를 공부하고 있어서 아이들과의 대화는 물론이고 다른 (성인)사람들 그리고 나 자신과의 대화를 유심히 살피곤 합니다.

https://brunch.co.kr/@ioi/105


화법이나 화술에 대한 글은 많습니다. 이론이나 원리를 설명하거나 잘못된 걸 지적하거나 팁을 알려주죠. 그런데 그런 글을 읽는다고 제 대화가 저절로 달라지지 않더라고요. 아무리 그 이론이 타당하고, 원리가 합리적이라고 해도요. 지적받으면 기분도 살짝 나쁘고 '그래서 어떻게 바꾸라고?'라는 질문엔 답이 없어 답답합니다. 팁은 그때그때 다르기 마련이고요.


제가 바라는 것은 버릇처럼 해오던 말들 중에 조금 다르게 해야 할 말들을 추려내는 안목을 가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말을 어떻게 다르게 할지에 대한 깨알 같고 구체적인 제안이 필요해요. 마침 아이들이 점점 대화를 함께 나눌 수 있게 되어 여러 가지를 시도하고 관찰하고 있어요. 그 과정을 글로 남기고 나눠보려 해요.

(*저는 막 말문이 트인 두 돌 전후의 쌍둥이를 돌보고 있습니다. 더 큰 아이들이나 말이 빠른 아이들을 양육 중이시라면 참고해서 읽어주세요.)



쌍둥이를 돌보다 보면 위험하고 곤란한 상황이 생기기 마련이지요. 한 아이의 옷을 갈아입히고 있는데 다른 녀석이 안아달라고 달려들어서 이것도 저것도 못하게 된다거나, 좁은 공간에서 두 녀석이 떼를 쓰기 시작해서 여기저기 부딪히기 십상이라거나. 사례를 들자면 끝이 없어요.

그럴 때면 양육자는 걱정되고 짜증 나고 다급해집니다. 여유가 없으니 습관적으로 하던 표현이 튀어나옵니다. 가령 이런 말들요.

저리 비켜 봐
조심해(라)
나와

모두 명령형이고, 글로 적어서 뉘앙스가 안 살지만 날카롭고 공격적이기 쉽지요. 소리 내어 읽어보세요. 아마 나도 모르게 문장 끝에 느낌표를 세 개씩 붙이고 있을 걸요? 그만큼 아이들에게 소리를 지르거나 인상 쓰고 말하기 쉽고요.


내용도 다시 살펴볼 필요가 있어요. 저 표현은 아이들이 듣기에 추상적이고 모호할 수 있으니까요. 공간에 대한 개념이 있고, 아는 어휘가 많고, 환경을 두루 살필 수 있는 어른 입장에서야 명확하고 구체적이지요. 짧고 직관적이고요. 하지만 아이들 입장에서는 ‘비키다’, 조심하다’, 나오다’라는 말이 아직 낯설고 어렵습니다. 제가 아이 입장이면 이런 고민에 빠질 것 같아요.

응? 비키는 게 뭐지? 어디로 어떻게 움직이라는 거지? 조심이 뭐지?
나오는 게 뭐야? 어디로 들어가서 어디로 나오는 거지?


저렇게 말하면 실제로 아이들이 순간 의아해하는 표정을 지어요. 분위기상 '엄마가 뭔가 내게 요구하는구나' 혹은 '내가 잘못하고 있나' 싶어 집중하다가 이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모르겠고, 답답해하는 것 같았어요. 내가 원하는 것(엄마가 날 안아주고, 옷을 얼른 입고 놀고 싶고 등등)은 여전히 이루어지지 않았으니 울음이나 소리로 표현하지요. 그럼 양육자도 더 지쳐요. 안 그래도 위험해서 불안하고 짜증 났었는데 아이는 비키지 않고 그 자리에서 더 심하게 울고 징징대니까요.


제가 공부하는 비폭력대화는 부탁을 구체적이고 긍정적으로 하라고 권합니다. (부탁에 대해서는 앞으로 자주 많이 이야기할 계획입니다만 약 2년 전에 이미 이런 글을 썼었네요. https://brunch.co.kr/@ioi/90)


아이들 입장에서도 구체적이고 긍정적일 순 없을까 고민해보면요. 저희 아이들은 앞/옆/뒤는 아는 것 같아요. 손가락으로 가리켜주면 도움이 되겠지요. 숫자는 둘셋 정도까지 압니다. 킨더밀쉬 탈 때 소리 내서 하나-두울-세엣-넷 했더니 둘셋을 따라 하더라고요. 10까지 나오는 숫자놀이 책을 같이 읽으면 다섯까지만 읽고 덮습니다. 방향과 양을 구체적으로 말하면 아이들이 알아듣고 행동으로 옮기기 더 쉬울 것 같아요. 그래서 제가 찾은 대안은, ‘뒤로 두 걸음 (가줄래?)’입니다.


물론 아이의 안전이 위태로울 만큼 다급한 상황이라면 우선 몸으로 안전하게 만들어야겠지요. 하지만 그렇지 않은데도 놀라거나 날카롭게 반응하는 습관은 없나 살펴보세요. 저는 있습니다.

여유가 된다면 약간의 리듬과 운율을 넣어보는 것도 좋아요. 'OO야. 뒤로 하나, 두울'하는 식으로 말하면 아이들이 재밌어하면서 잘 호응해줘요.


이렇게 말하는 게 구체적이고 긍정적이지만 너무 단순해서 아이들의 어휘력을 늘리는 데 지장을 줄까 염려되신다면, 편안한 상황에서 여러 표현을 바꾸어서 해 주세요. 들어와요/나가요, 이쪽/저쪽 (*'조심하다'는 자주 쓰지만 다르게 해보고 싶은 표현이라 좀더 고민해보고 다음에 다뤄볼게요.) 같이 몸을 움직여서 놀이처럼 익혀둔다면 앞으로 '이 문으로 나가볼까?'하고 말해도 알아들을 수 있겠죠.


마지막으로 우리의 ‘욕구’를 짚어보고 싶어요. 제가 공부하고 있는 비폭력대화는 우리의 말이 우리가 원하고 중요하게 여기는 것에 뿌리를 두고 있다고 말합니다. 가령 지금 이야기 나누는 상황에서는 이런 것들이 중요하지요.

(아이의) 안전

(이 순간의) 평화

(나의) 편안함

내 말의 뿌리를 잘 붙잡고 있으면 내가 하는 말이 왜, 무얼 위해 하는지 알고 말하게 됩니다. 그 욕구들이 충족되는 상황을 상상하고 그 에너지로 말하면 더욱 좋지요. 아이들이 안전하고 나도 편안하고 안심되고 평화로운 순간을 그려보세요. 어떤가요? 저는 위험한 상황뿐 아니라 아이들과 함께 있는 동안 늘 저 욕구들을 잊지 않으려고 노력해요.


물론 '나가!', '저리 비켜!', '조심하라고 했잖아!'도 우리는 안전과 평화와 편안함을 원해서 하는 말입니다. 오랫동안 들여온 잘못된 습관 때문에 우리는 원하는 것을 부정적이고 비극적으로 표현합니다. 안타깝게도 그렇게 말해서는 우리가 원하는 것을 이룰 수 없어요. 이제는 다르게 표현해 봐요. 아이들과 안전하고, 내가 편안하고, 함께 평화롭기 위해서요.


"OO야, 뒤로 두 걸음 가줄래?"


* 이 글에 마음이 닿으셨다면, 그간 했던 모호한 명령을 구체적인 부탁으로 바꾸어 댓글로 나눠주세요. (틀려도 괜찮아요. 같이 고민해요. 다르게 해보려고 노력하는 게 중요하니까요.) 서로 도와서 소리 덜(!) 지르는 양육자가 되어 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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