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과 집값의 경제학 / 조시 라이언-콜린스 등

주거 자본주의 시대를 이해하는 훌륭한 가이드

by 이진희

개포 8단지 재건축 아파트 청약에서 만 19세의 응모자가 당첨되었다. 분양가는 14억, 당장 예상되는 수익만 8억 이상이라 '로또청약'이라 불리지만 중도금 대출이 되지 않아 금수저가 아니면 시도조차 할 수 없었다.


강남은 남의 일이라치더라도 한국에서 부동산을 외면하고 살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많이 가진 사람은 더 불리려고 혈안이 되어 있고, 없는 사람은 없는대로 고민이 많다.

대부분의 사회문제에 부동산이 물려있다. 왜 결혼과 육아를 하려는 사람들이 급격히 줄어드는지, 왜 주당 노동시간이 이렇게 긴지, 왜 문화적 취향을 가질 여유가 없는지. 하물며 회사 앞 식당이 가격대비 맛이 없는지 소소한 일상까지도.


내게도 부동산은 화두다. 집 고민에 들어가는 에너지를 삶을 더 풍요롭고 행복하게 만드는데 쓰고 싶다. 그러자면 부동산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어느 정도는 알아야한다. 그러던 와중에 이 책을 발견했다.



'저자들이 영국인이네.' 우리나라와 상황이 다르지 않을까싶어 주저되었다. 하지만 다른 선진국은 어떤지 궁금하기도 했고, 머리말에서 아래 대목을 발견하고는 제대로 읽기 시작했다.

근로자, 상점 운영자, 기업가 등이 자신의 노력에서 이득을 얻을 수 없고 그 이득이 지대의 형태로 땅주인에게로 빠져나가는 것을 지켜봐야한다면 이들이 왜 노력이나 혁신을 하겠는가? (중략) 결국 지대추구에는 <파이의 크기를 키우기보다는 더 큰 조각을 차지하려는> 쪽으로 노력을 기울이는 행동이 뒤따르기 마련이다.

대한민국 청년들의 장래희망은 공무원이거나 임대사업자, 혹은 '둘 다'다. 혁신적인 아이디어로 창업을 하든 자기만의 레시피로 개업을 하든 결국 지대의 벽에 부딪힌다. 그때쯤 깨닫는다. 힘들게 고민할 필요 없이 월세를 받아야겠구나!


이 책은 땅과 집값이 경제학에서 어떻게 다루어졌나를 돌아보고, 토지소유권의 모순적 측면과 각 국가들이 이 문제를 다루기 위해 어떤 시도를 했는지 살펴본다. 땅과 금융의 관계, 부의 창출에 대한 역학과 거기서 발생하는 지대문제를 해소할 수 있는 해결책까지 제안하고 있다. '부동산 시장이 어쩌다 소수에게만 부가 돌아가는 게임이 되었는지, 이 게임의 진행과정과 이면을 파헤쳐본다'는 야심찬 과제를 풀어내고 있다.


뒷표지에 몇 개의 질문이 제시되어 있다.

- 지난 45년간 선진국들에서 집값이 폭등과 폭락을 반복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 땅과 집은 어떻게 투기적 금융자산이 되었는가

- 사회가 집과 땅의 소유를 부자가 되는 최고의 방법으로 여기고 갈망하는 것이 바람직한가


이 질문들에 대한 대답을 경제학을 기반으로 매우 논리적으로 제시한다. 차가운 숫자와 통계에 기대지만 땅과 집값이라는 소제 자체가 가진 힘으로 이야기는 드라마틱한 궤적을 그린다.


이 책에 따르면 토지에 대한 사적소유권이 확보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고 한다. 봉건시대에도 토지는 점유나 사용의 대상이었다. '토지의 사적 소유는 자유이자 도둑질'이라는 표현처럼 '토지소유'는 천부인권이 아니다. 아주 첨예한 경제적, 정치적 필요에 따라 만들어진 제도일 뿐. 최근 개헌과 함께 제기되는 토지공개념의 개념도 여기서 나온다.


재산권이 자연권이라는 주장의 배경엔 존 로크가 있다. 하지만 그의 주장에는 하나의 전제가 필요하다. 이른바 로크의 단서(Lockean Proviso)인데 재산권이 자연권이려면 다른 사람들에게도 그들을 위한 충분한 공유지가 남아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로크가 이 주장을 하던 때만해도 미국에 주인 없는 땅이 많이 있었고, 땅이 충분했던 시대다. 이 전제는 살짝 빼 놓고 토지에까지 재산권의 확장을 주장하는 것이 얼마나 무리인지, 이 책은 지적한다.

땅의 고유특성은 농업에서 산업으로 경제구조가 바뀌면서 이론이나 정책에서 교묘히 사라졌다. 그래서 땅의 금융화와 가치변화가 현대사회의 불평등을 야기하는 일차적 결정요인임에도 경제이론에서 대부분 간과되었다.




내 학부 전공은 지리학이다. 나는 서울을 사랑하고, 지도만 있으면 시간가는 줄 몰랐다. 이슈가 있을때마다 카메라와 종이지도를 들고 ‘답사’를 다녔다. 입지와 경관을 연구하고 싶었다. 통일된 한반도라는 공간을 어떻게 배분하고 관리해야 할지 청사진을 제시하고 싶었다.
졸업과 대학원 입학을 앞두고 진로 결정에 별 고민이 없었다. 단지 같은 캠퍼스에서 층만 달리해가며 계속 다닐 게 지겨웠다. 잠시 바람 쏘이고 견문을 넓히겠다고 여행을 다니다 마음이 변했다. 공부는 사회생활하다해도 늦지 않는다고 취업한 게 벌써 햇수로 14년이다.

미련도 조금 있었지만 한편 안심했다. 사회생활을 할수록 이 나라에서 공간을 연구한다는 게 녹록지 않다는 걸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한국의 부동산-공간구조-은 학술적으로 연구하고 개선할 대상이 아니라 필사적인 경제적 대상이었다. 물론 그 뒤엔 정치가 있고.


실제로 당시 나의 담당교수님은 청계천과 4대강 개발을 뒷받침하는 연구결과를 내놓았고 얼마지 않아 대통령의 오른팔이 되었다. 계획대로 대학원에 갔다면 그 밑에서 자료조사하고 대통령 비서실과 중국대사관에서 교수님을 보좌했겠지. 대학원 같은 학번이 될 뻔한 동기가 그랬듯. 그 친구는 지금 어디서 뭘하고 있을까? 구속수사된 피의자를 위해 검찰조사준비를 하고 있는 건 아닐지.


정치와 돈의 논리 앞에 관심과 연구는 무의미하다고 생각했다. 진학은 둘째치고 관심조차 끊었다. 하지만 '생활인'으로 결국 다시 땅과 집값의 현실 앞에 섰다. 그리고 이 책 덕분에 원인과 결과를 바꾸어 생각해 볼 기회를 가졌다. 땅과 집값은 정치와 돈의 논리로 움직이지만 무작정 그 결과에 휘둘릴 것인가, 그걸 잘 알고 움직일 것인가? 이 책의 마무리 말이 그 단초를 제공한다.


역사가 우리에게 가르쳐 준 것이 있다면, 토지자산의 특성과 경제적 기능은 고정되어 있지 않고 정치적 압력과 경제적 영향력에 반응하여 끊임없이 변한다는 사실일것이다.
이 점에 유념하여 토지경제의 작용을 면밀히 살펴보고 방향이 잘못된 경제이론과 기득권이 키워놓은 오해에 이의를 제기하는 것이 우리 자신과 다음 세대에 대한 의무다. (p.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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