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뒤에 서럽지 않은 부모 되기
아이가 생기니 양가 부모님들이 연락을 자주 하십니다. 대화는 아이들 안부로 시작해서 '사진 좀 보내라'로 마무리됩니다. 부모님들이 육아를 함께 해주시기 어려운 상황이라 아이들이 더욱 보고 싶으신가 봅니다.
연락이 늘 반갑지는 않습니다. 우는 아이들 달래고 집안일하느라 이야기 나눌 여유가 좀처럼 나지 않으니까요. 하지만 물리적인 어려움보다는 마음의 부담이 더 큽니다. 대화가 이어질수록 '내가 너를 얼마나 힘들게 키웠냐 하면'류의 하소연으로 빠지곤 하거든요. 밤낮이 바뀌어 고생했다는 이야기부터 머리가 커서 낳기 어려웠다 등등. 때로는 굳이 알고 싶지 않은 내밀한 이야기까지 등장합니다.
처음엔 다소 당황했습니다. ‘저 (혹은 남편) 키울 때는 어떠셨어요?’ 라고 묻지도 않았는데 어머니들은 저를 불쑥 과거로 끌고가시니까요. 이런 마음을 접어두고 짧게나마 호응해드리면 이야기가 언제 끝날지 예측하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이젠, ‘내가 널~’이란 화두만으로도 지치곤하지요.
모든 이야기에는 '이제 너도 부모가 되었으니 알겠지만'이란 전제가 깔려 있습니다. 제가 출산을 했다는 사실만으로도 강력한 연대감이 생기시나봅니다. ‘아이 낳아보니 이제야 알겠어요. 얼마나 저희를 고생해서 키우셨는지'라고 제가 먼저 말씀드리면 참 아름다운 그림이겠지만 두 어머니의 서러움이 늘 앞섭니다.
어머니들의 서러움을 들여다봅니다. 천 기저귀를 썼다 거나 제가 예민해서 힘들었다는 몸의 고통은 이내 아버지나 시댁 식구들에게서 받은 마음의 상처로 옮아갑니다. 같은 이야기가 반복되기도 합니다. 깊이 묵은 감정이 온전히 위로받지 못했다는 뜻이겠지요.
아버지들은 아버지들대로 섭섭합니다. '그땐 열심히 돈 벌어다 주는 게 내 몫이었다'며 어머니들과의 간격을 좁히지 않으시죠. 실제로 저희 아빠는 제 기저귀를 한 번도 갈아주신 적이 없으셨답니다. 퇴근하면 저는 늘 자고 있었다고요. 어렴풋이 기억납니다. 가벼운 알코올 냄새와 까슬까슬한 수염이요. 긴 노동 후에 한 잔 걸치고 들어와 잠든 제 얼굴에 볼을 부비는 아빠의 모습이 그려집니다. 누군가 제 키를 물으면 두 팔을 가로로 벌려 ‘이만큼?’이라고 대답하셨지요. 누워있는 모습만 보셨을테니까요.
꽤 많은 시간이 흐른 뒤의 일이지만 상상해봅니다. 우리 아이들이 만약에 결혼을 하고, 또 만약에 아이를 낳는다면 저도 '내가 널 얼마나 힘들게 키웠냐 하면'으로 시작하는 서사를 풀어놓게 될까요?
섣불리 장담할 순 없겠네요. 지금의 심정으로는 하소연 대신 너희들이 얼마나 작고도 아름다웠는지 이야기해주고 싶어요. 말을 하지 못해도 다양한 소리와 표정과 몸놀림으로 감정을 표현해주어 놀라웠다고. 너무 빛나고 멋지고 소중해서 손 끝 하나 함부로 하기 어려웠다고요. 매일 어김없이 하나하나 성장해나가는 걸 지켜보며 한없이 감동했다고. 며칠 밤낮 쪽잠을 자서 힘들다가도 너희의 미소 한 번에 피로가 다 가셨다고. 정말 큰 행복과 사랑을 경험하게 해 주어 고맙다고요.
이 말을 하는 미래의 제 얼굴은 서럽기보다 가볍게 들뜬 웃음을 머금으면 좋겠어요. 아! 물론 아이들이 저에게 먼저 '엄마, 저 어렸을 때 어땠어요?'라고 물어본다면 말이죠.
어머니들의 하소연 너머에도 이런 감동과 사랑이 담겨있겠지요? 그 감동과 사랑을 표현하기 전에 풀어내야 할 감정이 많을 뿐이지요. 혹은 안타깝게도 감동과 사랑을 음미할 겨를이 없으셨을지도요.
고되고 외롭고 막막하고 서러웠던 기억은 한 번도 공감받지 못했을 겁니다. 공감은 커녕 맘껏 꺼내 본 적도 없으시겠지요. 나이가 차면 당연히 결혼하고, 결혼하면 당연히 애 낳고, 애는 당연히 여자가 키우는 세상에서 사셨으니까요. 그렇게 키운 아이들은 마치 다 자기 힘으로 큰 것처럼 굴고요.
내일도 어김없이 어머니들에게 연락이 오겠지요. 요즘 아이들이 목을 가누기 시작합니다. 그 이야기를 드리면 ‘너는 백일 한참 지나고야 목을 가눴는데...’라며 또 제 육아 이야기로 소환될지도요.
이번엔 아주 조금이라도 더 들어드려야겠어요. 그리고 먼저 말씀드려볼까 봐요. 고생 많으셨다고. 낳아서 잘 키워주신 덕분에 제가 이렇게 부모라는 멋진 경험을 하고 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