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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몽연 Jul 08. 2024

홀로서기

조울증 소녀가 사랑한 것들 01 | 몽연




어서 오세요, 손님.


  자퇴를 고민하게 된 가장 큰 이유는 나에게 찾아온 불안을 손님 취급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처음엔 문제를 풀고 정답을 맞혀야 한다는 부담감에 공부에서 손을 놓게 되었다. 병원을 다니기 시작한 지 얼마 안 됐을 때였다. 공부를 하는 게 무서워졌다. 이런 증상들 역시 병원에 말씀드렸다. 처음엔 심하지 않아서 당시 먹고 있던 항우울제 용량을 늘리는 걸로 끝났다. 하지만 문제는 그 이후였다.


  문제를 시작으로 공부, 수업, 등교를 하기 힘들 정도로 불안이 심해졌다. 눈을 뜨고 나서야 등교 여부를 알 수 있을 정도로 매일이 힘들었다. 불안과 함께 우울감이 심해졌고 이 시기에 조증 증상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병원에서 약을 바꾸고 불안을 진정시켜 주는 약을 추가했다고 말씀하셨다. 그렇게 2알, 3알, 용량을 늘리면서 진정이 되는가 싶었지만 평일이 되면 죽고 싶을 만큼 흔들리는  마음에 자퇴를 해야겠다고 다짐했다.


  안 다니고 싶은 게 아니라 못 다니는 것이었다. 우선 2주 정도 고민할 시간을 주는 숙려제를 신청했다. 나에게는 말이야 숙려제지 2주 동안 학교를 안 나와도 출석인정을 해주겠다는 말로 들렸다. 그땐 자퇴를 이미 결정했을 시기였기 때문이다. 숙려제 신청이 허락되고 2주라는 휴식기를 얻었다.


  숙려제 덕분에 하루를 쉬고 내 마음은 완전히 굳었다. 자퇴를 하기로. 2주 동안 아예 학교를 가지 않는 것은 아니다. 1주에 2번, 그러니까 4번을 학교에 가서 1시간 정도 상담을 받아야 한다. 학교에 있는 상담실 가서 상담 선생님과 이야기하는 것이다. 나는 자퇴를 마음먹고 진행했기 때문에 그저 절차를 밟는다는 생각으로 상담에 임했다.


  상담은 감정을 살펴보는 것 위주로 진행됐다. 깊은 대화를 하거나, 감정 리스트를 보고 느껴지는 것을 선택하거나, 감정 마인드맵처럼 나에 대해 깊게 생각하는 것들 위주였다. 또, 자퇴해야 하는 이유와 학교를 다녀야 하는 이유를 적어보거나 자퇴한 사람들의 인터뷰 영상을 보는 등 자퇴에 대해 고민해 보는 활동도 있었다.


  상담 선생님께서 계속 나에게 하셨던 말씀이 있다. 누구에게나 불안과 우울은 찾아온다. 그 불안과 우울을 곁에 두느냐, 손님으로 보느냐에 달렸다고. 어느 날 나에게 찾아온 불안과 우울을 곁에 둘 생각 말고 ‘아, 그분이 오셨네.’하고 가시게 내버려 두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당시엔 그게 잘 되지 않아서 자퇴라는 선택을 했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참 중요한 일인 것 같다. 나에게 찾아온 어두운 이들을 “어서 오세요, 손님.” 하고 인사할 줄 아는 것. 그렇게 다시 보내드릴 줄 아는 것.



조울증 소녀가 사랑하는 법


  자퇴를 결정하고 작별인사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정이 많아서, 사랑이 많아서 학교에서 가볍게 인사하던 친구들 마저 그냥 보낼 수가 없었다. (사실 정이 많다는 사실을 이번에 자퇴를 하면서 알게 되었다. 그전까지는 몰랐다.)


  비록 조울증 소녀지만 저 깊이 숨겨둔 따뜻한 마음이 있다. 조울증 소녀도 사랑하는 법을 안다.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아끼는 방법을 안다. 너무나도 잘 알아서 정이 든 학교를 떠날 때 눈물이 많이 났다.  자퇴를 하는 당일 날엔 너무 많이 울어서 눈이 퉁퉁 부은 채로 있었다.


  처음으로 자퇴를 밝힌 건 숙려제를 시작한 날이었다. 내 친한 친구들에게 미리 알리기 위해 편지를 썼다. 4명의 여자 아이들과 1명의 남자아이에게 편지를 썼다. 모두 내가 힘들 때 힘이 되어줬던 친구들이었다.


  우리는 6명은 모두 1학년 때 같은 반이었다. 4명의 여자 아이들은 나와 1년을 함께 보냈고 그중 셋은 문과, 나와 한 명의 친구는 이과를 선택했다. 남자애도 문과를 선택했다. 문이과가 갈라졌지만 계속해서 연락을 이어갔고 이과를 선택한 우리 둘은 같은 반이 되어 둘이서 꼭 붙어다니기까지 했다. 남자애를 제외한 우리는 점심시간을 항상 함께했다. 다섯이서 급식을 먹으면서 시시콜콜한 얘기를 하던 게 떠오른다. 남자애와는 복도에서 마주치면 반갑게 인사하는 사이였다.


  그러던 어느 날, 내가 학교에 잘 나가지 않기 시작했고 갑자기 나타나서 하는 말이 자퇴라니 많이 놀랐을 것이다. 원래는 다 같이 모여있을 때 말하려고 했지만 수행평가가 많을 시기라 한 명씩 전해주게 되었다. 같은 반이었던, 이과를 선택한 친구L은 내 자퇴 사실을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울지 않을 줄 알았는데 편지를 받자마자 눈물을 쏟아 나도 눈물을 참지 못했다. 시끄러운 교실에서 우리 둘만 엉엉 울었다. 이 상황이 웃겨서 웃기도 했다. 웃었다 울었다 하는 모습이 아직까지 선명하다.


  다음으로 먼저 찾아온 친구P는 밝은 아이다. 곁에 있으면 나까지 밝아지는 친구. 그런데 눈물이 많은 친구다. 역시나 내 이야기를 듣고 눈물을 쏟아냈다. 처음엔 조금 참는 듯싶었지만 “우는 거야?”라는 한 마디에 무너졌다. 나도 눈물이 나왔다. 그렇게 울리는 수업 종에 P는 엉엉 울며 교실로 향했다.


  친구I는 수행평가 때문에 다음 시간에 내가 직접 찾아갔다. I를 데리고 교실로 가 편지를 주자 종이 쳐버렸다. 결국 “나 자퇴해!”라는 말을 하고 교실로 찢어졌다. 놀란 친구I가 다음 시간에 나를 찾아왔다. 갑자기 이게 무슨 소리냐고 물었다. 그렇게 됐다며 어깨를 토닥이자 I가 눈물을 흘렸다. 조금 놀랐다. 밝지만 덤덤한 성격이라 울지 않을 줄 알았지만 마음이 여린 아이라는 것을 간과하고 있었다. 친구I와 친구P가 같이 복도에 주저앉아 울었다. 다 울고 나니 부끄럽다고 교실로 가는 모습이 얼마나 웃겼는지 모른다.


  친구J는 그날 학교에 나오지 않아 다음날 알려주었다. 학교에서 주는 마지막 편지라고 말하자 장난인 줄 알았던 J가 조금 웃었다. 진짜라고 말하자 많이 놀란 모습이었다. J는 다행히 오열하지 않았다. 눈시울이 붉어지는 모습에 나도 눈물이 차올랐지만 우리 두 사람 다 잘 참았다.


  남자 애는 에피소드가 별로 없다. 많이 놀라긴 했지만 놀란 게 끝이었다. 하지만 고등학교에 올라와서 처음으로 친해진 남자애였기 때문에 잘 지내라는 인사를 꼭 해주고 싶었다. 편지에 대한 답장을 나중에 디엠으로 받았다. 덕분에 아직까지 디엠을 주고받는 사이다.


  선생님들도 나를 많이 응원해 주셨다. 1학년 때 담임 선생님과 지금 2학년 담임 선생님, 지구과학 선생님과 1학년 때 야구 얘기를 하면서 친해졌던 선생님까지. 지나가던 수학 I 선생님과 영어 선생님 등 많은 분들의 응원을 받게 되었다. 그중 1학년 담임 선생님과 지구과학 선생님과는 카페에 가 대화를 했다. 선생님들께 들은 말이 도움이 정말 많이 되었다.


  내가 사랑했던 모든 분들에게 코바늘로 직접 만든 네잎클로버를 선물했다. 그리고 반 친구들을 위해 간식을 포장했다. 이제 교복을 입고 만날 일이 없다고 생각하니 뭐라도 더 주고 싶은 마음이었다. 네잎클로버와 간식을 포장하며 생각했다. 나는 정이 참 많다. 너무 많아서 탈이다.

  하지만 정이라도 많아서 다행이다. 외로움을 조금 더 느끼긴 하지만 따뜻한 마음도 더 잘 느끼니까.

  조울증 소녀가 사랑하는 방법은 정을 담은 선물을 하는 것이다. 형체가 없는 것일지라도 있는 정, 없는 정 꾹꾹 눌러 담아 예쁘게 포장해 선물하는 것. 내 마음을 선물하는 것이 내가 사랑하는 방법이다.



홀로서기


  선생님 한 분이 혼자가 되는 게 무섭지 않냐고 물어보셨다. 나는 학교를 벗어날 생각만 했지 혼자가 된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던 것 같다. 그 말을 듣고 생각했다. 그러네, 나 이제 혼자네. 지금은 혼자라는 느낌이 많이 들진 않지만 당시엔 공허함이 많이 느껴졌던 것 같다.


  자퇴를 하고 쉬어도 된다는 생각을 하기까지 시간이 걸렸다. 사실 지금도 아직 먼 것 같은 느낌이다. 쉬어도 된다고 꾸준히 생각하고 있지만 강박처럼 열심히 일해야 한다는 생각이 한쪽에 항상 자리 잡고 있다. 지금은 ‘글’이라는 일을 하고 있지만 자퇴를 한 직후에는 마땅한 계획이 없었다. 학교를 다니지 못해서 자퇴를 한 거였고 도망 나오듯이 급하게 나왔기 때문에 향후계획이라는 게 존재할리가 없었다.


  자퇴를 한다고 말하면 가장 많이 듣는 말이 있다.

1. 정시 준비해?

2. 검정고시 볼 거야?

3. 부럽다.

이 세 개 모두 최악의 말이다. 다른 이에겐 몰라도 나에겐 그랬다. 정시는커녕 공부를 하는 게 불안한 나는 검정고시도 필수 대상이 아니었으며 부럽다는 말은 정말이지 나를 화나게 하는 버튼이 될 정도로 어이가 없는 말이었다. 내 불안을 느껴보지 못한 자들의 생각 없는 말이 이렇게나 날카로울 줄이야.


역시 혼자가 되는 일은 쉬운 게 아니었다. 미래가 슬슬 걱정되기 시작해면서 밖으로 나가는 날이 많아졌다. 카페라도 가자는 마음이었다. 그러면서 카페에서 할 것들을 찾다가 글을 쓰는 일이 떠올랐다. 어렸을 때부터 글을 쓰는 걸 좋아했고 교내 대회에 나가 상을 받으면 그렇게 기쁠 수가 없었다.


  그런데 왜 생각을 못했을까. 좋아하는 일을 업으로 삼는 게 힘든 길을 걷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걸 안다. 하지만 나는 눈치 보지 않기로 했다. 지금 내가 글을 쓰고 싶으면 쓰는 거고 아니면 말고. 하고 싶은 것을 마음껏 하면서 살아본 적이 없다. 책임을 져야 하는 나이가 되기 전에 많은 걸 시도해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불법적인 행위는 당연히 아니었다.


  지금은 글을 쓰는 일이 즐겁고 재밌다. 가끔 의무처럼 느껴질 때도 있지만 그럴 때마다 주문처럼 외운다. “글 쓰고 싶다.” 혹은 상상한다. 내가 작가가 되어있는 모습, 내가 쓴 글이 책이 되는 모습들을 떠올리면 동기부여가 된다. (나름 작가가 된 지금, 글을 쓰는 일이 제일 좋을 정도.)


  홀로 외로운 길을 걸어가야 하는 게 무섭기도 하다. 하지만 원하는 길을 직접 선택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는 것을 항상 생각하자.

이제 홀로서기에 발을 들인 내가 홀로서기를 고민하는 자들에게 건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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