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울증 소녀가 사랑한 것들 08 | 몽연
불안할 때 쓴 글
밤에 우울해 본 적이 있는가? 조울증을 앓고 있는 소녀는 밤이 오는 게 두렵다. 캄캄한 밤은 나에게 줄 우울을 품고 온다. 밤에 우울해 본 적이 있는 자는 알 것이다. 밤이라는 게 얼마나 강한 존재인지. 하지만 오늘 할 얘기는 불안이다. 밤에 찾아오는 불안. 이건 아마 겪어본 자가 드물 것이다.
밤에 찾아오는 우울과 불안은 차이점이 분명히 존재한다. 우울에 잠식되면 그대로 가라앉지만 불안에 잠식되면 허우적거리게 된다. 너무 허우적거려서 더 이상의 힘도 없을 정도로 파닥거리게 된다. 대게 불안은 파도처럼 시끄럽다. 수심 깊은 고요한 바다가 우울이라면 높은 파도와 함께 힘차게 소리치는 바다는 불안이다. 그런 파도에 잠식된다는 게 얼마나 무서운 일인지.
나는 주로 외출을 하고 온 날 밤, 불안을 만난다. 이유는 아직 모른다. 사람을 만나고 오면, 바깥공기를 쐬고 오면 너무 불안해져서 호흡이 잘 안 된다. 그럼에도 나는 계속 밖으로 나간다. 이 불안에 그대로 잠식되면 그땐 정말 우울해져서 저 깊은 바다에 잠길 것만 같다. 집 밖을 나가는 일이 나에겐 도전이고 발악이다. 우울해지고 싶지 않다는 나의 발악. 파도에 갇혀서 더 깊이 빠지지 않으려고 허우적 대는 그런 거.
허우적 대는 것도 지칠 땐 점점 가라앉게 되고 비로소 우울이 나를 찾아온다.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나는 매우 불안한 상태다. 글이라도 쓰면 달라질까 싶었지만 효과는 없는 것 같다. 그래도 이것마저 나의 노력이다. 불안이 우울이 되지 않도록 안간힘을 쓰는 것이다.
지금 쓰고 있는 모든 말이 앞뒤가 안 맞고 문맥이 이상할 지도 모른다. 하지만 수정을 하고 싶지는 않다. 불안한 상태, 내 상태를 날 것 그대로 느껴보려면 그 시기에 쓴 글을 읽어보는 것이 좋다. 내가 매우 불안할 때 쓴 이 글을 읽으면서 나의 불안을 직접 느껴보기를 바란다. 불안까지는 미처 사랑하지 못한 나의 이야기를.
불안의 객관화
그렇게 며칠이 지난 지금, 위에 쓴 글을 다시 읽어보았다. 생각만큼 어지러운 내용은 아니었지만 문맥이 어색하고 희한하다. 했던 말을 또 하고 생각나는 걸 그대로 옮겨 적은 느낌이다. 나는 가끔 불안할 때 글을 쓰곤 한다. 덕분에 내가 어질러놓은 글을 나중에 다시 읽어볼 때가 많은데 대부분 단어선택이 정확하지 않거나 하고자 하는 말을 찾을 수 없는 글들이다. 그런 글들을 어딘가에 게시하거나 자랑하지 않는다. 수정하고 또 수정해서 완성된 글을 게시한다. 그러니까 오늘, 처음으로 내가 불안할 때 쓴 글을 수정하지 않고 게시하는 것이다.
내가 글을 수정하지 않은 이유는 간단하다. 저번 에피소드처럼 진짜 ‘나’를 보여주기 위해. 그리고 나의 불안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기 위해서다. 우울과 불안이 비슷한 점은 객관화가 잘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나만의 세계에 빠져들어서 주변인의 말이 잘 들리지 않게 된다. 심해지면 ‘내 감정의 깊이를 알기나 할까.’와 같은 생각으로 빠져들 수도 있다. 이럴 땐 내가 나를 객관화할 줄 알아야 한다.
‘남들 다 힘들어.’라는 생각을 하라는 게 아니다. 내가 뭐 때문에 힘든지, 내가 불안한 이유가 뭔지, 나는 보통 어떨 때 우울해지는지 등등. 글을 쓰면 좋은 점은 기록이 남는다는 것이다. ‘이 날은 뭐 때문에 우울했고, 뭐 때문에 불안했네.’처럼 내 감정을 내 눈으로 확인할 수 있어서 좋다. 시간이 지나면,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나면 그 일에 부딪혀볼 수도 있다. 다시 말해 극복한다는 것인데 이건 너무 빨리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충분한 시간을 가진 후에 내 감정을 내가 컨트롤할 수 있게 된다면 도전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더 깊은 바다에 빠져버릴지도 모르기 때문에.
불안을 마주하는 일
앞에서도 말했듯이 불안을 마주하는 일, 그러니까 극복하는 일은 시간을 두고 천천히 시도해야 한다. 나는 이것을 직접 경험한 뒤에야 깨닫게 되었다.
나의 불안은 학교에 존재하는 줄 알았다. 학교만 벗어나면 되는 줄 알았다. 나는 불안의 시작이 문제를 푸는 일에서 시작되었다는 것을 간과하고 있었던 것이다. 자퇴를 하고 다음 해에 검정고시를 봐야 한다는 생각은 늘 있었다. 하지만 검정고시가 1순위는 아니었던 나는 글을 쓰는 일에 더욱 집중하며 지냈다.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고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는 게 너무 좋아서 한동안 글쓰기와 각종 취미생활에 빠져 살았다.
이젠 더 이상 시작할 취미도 없어진 나는 글을 쓰고도 남는 에너지를 어디에 쓸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사실 약을 먹으면서 부작용이 나타난 탓도 있다. 병원에서 과하게 자신감이 생기거나 몸을 가만히 두기가 힘든 느낌의 부작용이 있을 것이라고 했다. 이 느낌을 떨쳐내기 위해서 시작한 것은 공부였다. 천천히 풀어도 좋으니 기억을 되살려보자는 마음이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불안이 다시 시작됐다.
문제를 풀던 도중 갑자기 울음이 나올 것 같았다. 숨을 쉬기가 조금 버거웠다. 틀리면 어쩌지 하는 걱정이 계속 머릿속에 맴돌았다. 방금 있었던 일이라서 글을 쓰고 있는 아직까지 정신이 멍한 느낌이다.
결국 글을 마치지 못하고 손을 뗐다. 때문에 며칠이 지난 후인 지금 글을 마무리하자면 함부로 내가 괜찮아졌다고 생각하면 안 된다는 걸 깨달았다. 진짜 내가 괜찮은지는 나조차도 잘 모르는 일이라는 거. 오히려 내 상태를 정신과 의사 쌤이 더 잘 알고 계실지도 모른다는 거. 따라서 내 상태를 자세히 관찰해야 한다. 의사가 환자를 살피 듯이 내가 나를 잘 살펴야 함부로 괜찮은 척하는 것을 피할 수 있다.
나에게 묻는다. 오늘의 내 상태는 어땠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