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을 하고 싶었으나 그러지 못하는 내게 있어. 늦은 나이까지 남아버린 애매한 재능과 열정을 저주라 생각했었다.
나의 착각이었다. 누군가에겐 내가 가진 재능과 조건은 평생에 걸쳐 얻지 못할 만큼 귀중한 것일지도 모른다는 걸 철이 들어갈수록 깨달았다.
그 분야를 잘하지 못하는 것도 괴로운 일이지만, 내겐 좋아하고 잘하는데도 할 수 없는 분야가 있다는 게 어린 시절 가장 큰 한이었다. 세상은 그런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저마다의 길을 잘 찾아서 떠났고 나는 내 적성과 소명을 찾아 진로를 정했음에도 불구하고 아쉬워했다.
누가 보면 배부른 소리일지도 모른다. 적성도 특기도 취향도 어느 것 하나 제대로 찾지 못한 채 방황하고 있는 이들도 분명히 존재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오늘 조금 다른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쓰지 못하는 재능은 저주라고 생각했다. 나의 괴로움에서 비롯된 말이었다. 애매한 재능을 구실로 진로를 정해 시간을 허비하는 이들도 있다. 평생을 노력해도 원하는 경지를 이루지 못한 채 진정한 천재들 사이에서 존재감도 들춰 보이지 못한 채 세상 속에서 조용히 사라져 가는 이들도 있다. 애매한 재능도 쓰지 못하는 재능도 그때의 내게는 불행의 씨앗이라 생각되었다.
그러나 내가 경험한 세상과 인생은 달랐다. 내가 좋아하는 일에 내가 솔직하지 못했던 것이었다. 그리고 한이라 생각했던 만큼 소중하게 다루지 못했다. 소중히 여겼음은 곧 내 시간을 비롯한 많은 것을 투자해서라도 지키며 투쟁할 엄두를 내지 못했던 것이다.
나는 변명 뒤로 숨어서 겁쟁이처럼 하소연만 내지를 뿐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결코 내 인생을 긍정적인 방향으로 바꿔주지 못했다. 이윽고 한은 가슴에 남은 가시로 박혔고, 내 우울증을 가속하는 계기가 되고야 말았다.
나는 이 제목에 혹해서 글을 읽은 이들에게 묻고 싶다. 쓰지 못하는 재능이라고 할 만큼 재능을 위해 무엇을 했는가? 단순히 노래를 부르고 말고의 문제가 아니라 노래를 부를 수 있도록 만드는 것부터가 재능을 위한 투쟁이었다. 그러한 각오 없이 애매하게 일을 시작했다간 여전히 이도 저도 아닌 어중이떠중이 신세를 면치 못할 것이다.
누군가를 탓하려고 하는 게 아니다. 여전히 가난은 실존하고, 존재하는 사회악으로서 많은 인격을 짓밟고 유린한다. 이는 변하지 않는 현실이다. 그러나 그럴만한 사유라고 생각한 장애물이 사실 그렇게 크지 않다는 걸 꺠달을수도 있다. 내가 그랬다. 음악을 할 수 없다는 형편에 한이 맺혔고 원망을 했지만 사실 내가 할 수 있는 기회가 없었을까?
스스로 만들지 못한 길에 남 탓을 하며 주저앉기엔 당신도 그리고 당신이 가진 재능도 세상엔 너무나 아쉽고 아까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