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고픈 일을 하는 아들로부터
어머니 나의 어머니
돈은 좀 벌지 못해도
어느 날 아버지께서 공부를 하는 내 방에 들어오셔서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돈은 좀 못 벌어도 좋으니 너는 네가 하고 싶은 일을 하거라."
한평생 가족을 위해 헌신하시며 하고 싶은 일을 하지 못하고 생계를 지켜오신 아버지의 말씀이 내게 와닿았을 때는 그로부터 시간이 지나 내가 어른이 되었을 때의 일이었다. 그날의 나는 그 말을 잘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자신이 하려고 하는 일이 주변의 응원을 받는 일은 축복이다. 진심 어린 응원이 만들어내는 좋은 영향은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선한 힘을 발휘한다.
그러나 그러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당장 자리 잡고 한 사람분의 역할을 하며, 주변에 손을 벌리지 않을 경제적 독립을 얻은 뒤에도 충분히 그런 일을 할 수 있다는 말을 듣기 쉽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작 그럴 때가 되면 지금껏 지켜왔던 것들이 족쇄가 되어 자신의 자아를 찾는 여정을 막을 수 있다. 우리의 가슴은 그렇게 꿈을 품은 어린이인 채로 오랜 시간 잠들어 깨어날 수 없게 된다.
필연적으로
내가 하는 일은 그렇게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오히려 돈을 벌려고 해서는 안될 일이다.
그렇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가난을 등에 지고 살아야 할 확률이 높다. 어느 날 어머니께서 말씀하셨다. 네가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도 좋지만 엄마는 어느 정도 안정이 된 후에 그런 일을 했으면 한다는 것이다. 안정이 된다면 나는 그 안정을 지키려고 하는 마음이 두려워졌다. 그것은 결코 쉽게 떨쳐낼 수 있는 유혹이 아니며, 가벼운 책임감도 아니기 때문이다.
어려운 이들을 돕고, 위로가 필요한 자리를 섬기는 것. 추상적이지만 그것이 내가 하고 싶은 일이었기 때문에 나는 가장 낮은 곳으로 향해야 했고 그곳에서 나의 소명을 받아들여야 했다.
그렇기 때문에 부모님께는 죄송하지만 나는 입신양명의 길을 어느 정도 포기한 아들이 되었다. 세 자식이 전부 자신 앞가림을 하고 잘 독립을 했으면 하는 것이 부모로서의 당연한 바람이었지만 나는 그중에서도 그리 자랑할만한 것은 못 되는 아들이 되어야 했던 것이다.
사랑하는 일을 한다는 것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나의 주변에서는 나를 응원해줬다. 남들이 쉽게 할 수 없는 길이니만큼 나의 길이 고귀하게 보였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내가 거룩하지 못함을 알기 때문에 끊임없이 낮아져야 하는 마음으로 이 길을 걸어갔다.
어머니께 가장 해드리고 싶은 말이 있다면, 못난 아들이지만 걱정은 하지 마시라는 말씀을 드리고 싶었다. 비록 벌이는 조금 만족스럽지 못할지 모르겠으나 나는 행복했다.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있어서 행복했고, 내가 사랑하는 이들과 함께할 수 있어서 행복했다. 오히려 싫어도 내가 벌이를 위한 일을 했다면 나는 더욱 불행했을 것이고 마음의 병은 더욱 깊어졌을지 모른다.
내가 원하는 것은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이었다. 입신양명이나 부자가 되는 것이 아니라 돈은 내게 필요한 만큼만 있으면 됐다. 어려서부터 책을 사는 것 외에는 욕심을 부려본 적이 없기 때문일까 가족들도 그런 내 바람을 어느 정도 이해해주는 듯했다.
나는 내가 사랑하는 것을 쫓으며 살았다. 이 모든 것은 그동안 나를 지켜오신 모든 분들의 헌신과 사랑이 있어서라는 것을 알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그 사랑을 조금이나마 세상에 갚으며 살아가고 싶다.
배고픈 일을 하는 아들로부터
저는 행복합니다. 제가 원하는 일을 하며 잘 살고 있으니 저에 대한 걱정을 조금은 덜으셨으면 합니다. 언젠가 그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부모로서 자식을 걱정하는 건 당연한 일이라고. 제가 남들에게 자랑이 되긴 어렵지만 언젠가 당신의 자랑이자 사랑으로 살고 싶습니다. 또한 사랑합니다.
당신에게
당신도 그런 마음이 언젠가는 있었으리라 생각한다. 세상엔 돈을 버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사람이 있지만, 어딘가에는 그런 것들을 필요로 하지 않은 사람도 있다는 걸 알아줬으면 싶다. 오늘은 나의 길고도 장황한 편지를 썼다. 내가 어떤 존재가 될지는 나의 선택이 좌우한다. 그리고 나는 타인에게 사랑을 나눠줬던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다.
언젠가 나도 환난을 당해 아파하고 주저앉아 눈물을 흘릴지도 모른다. 그러나 내가 이 길을 왔음에 후회는 없기를 그럼으로써 사랑하는 것을 멈추는 죄를 범하지 않기를 간절한 마음으로 바라고 또 구한다. 그리고 당신도 행복하기를. 당신의 일을 하며 당신의 행복을 찾아가길 바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