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괜찮아요
마음의 병을 앓다 보면 주위로부터 아주 다양한 시선을 받아야 할 때가 있다.
그중에는 나를 더욱 아프게 하는 차별과 편견에 어린 시선도 있지만, 감사하게도 내게는 나를 더욱 아껴주고 걱정해주는 시선들을 느낄 수 있었다.
체중의 변화가 느껴져도 주변에서는 이런 말을 해준다.
"혹시 마음고생 때문에 그런 거니?"
약은 잘 챙겨 먹는지, 병원에서는 완치까지 얼마나 걸리다고 했는지 많은 질문을 받을 때가 있다.
때로는 "나도 요즘 감정 기복이 심하고 마음이 어려운데..."같은 최근의 고민을 꺼내는 사람들도 있다. 나는 그런 이들에게는 주저 없이 병원에 가볼 것을 권유한다. 정말 호르몬의 문제가 사람에게 미치는 영향은 무시할 수 없을 만큼 크면서도, 약물 치료 말고는 마땅한 방법이 떠오르지 않기 때문이다.
상담을 받아볼까 고민하는 이들에게도 주저 말고 상담소를 찾아보라고 말한다. 늦지 않게 빨리 갈수록 좋다고 말한다. 내가 아프다는 것은 누군가 자신의 아픔을 꺼낼 수 있는 터가 된다는 말이다. 그래서 나는 이젠 이 병이 마냥 싫지만은 않다. 내가 있음으로 인해서 누군가 자신의 고민을 이야기할 수 있고 같은 아픔을 공유할 수 있다면 좋은 일이지 않겠는가. 내가 누군가를 더 아끼고 사랑할 수 있기 때문에 나는 이 병을 마냥 저주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전부 나의 소명과 옳은 삶을 위해 쓰일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때로는 아픔을 쉽게 보는 경향이 있다. 마음의 감기일 뿐이라고 말하면서 이겨내라고 말한다. 사실 나는 이 병을 이겨낼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주변에 이겨내고 힘내라고 말하지 않는다. 지금 그 마음을 잘 흘려볼 수 있길 바란다고 말한다.
마음이 아프다는 일은 외과 수술처럼 치료할 수 있다는 건 아닌 것 같다. 오랜 시간 경과를 지켜보면서 나의 방향성에 대해 고심해보고 나누는 것이 치료할 수 있는 길이라고 생각한다.
이겨내려고 한다면 오히려 마음이 다치고 부러질 수 있다. 이긴다는 것은 져야 하는 상대가 있다는 것이고 때로는 내가 패배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런 이분법적인 논리만으로는 다 설명할 수 없을 만큼 마음이란 것은 복잡하기 때문에 이긴다 진다 두 가지로만 나누는 것은 매우 어렵다고 본다.
그렇기 때문에 마음의 병은 어디론가 떠나보낼 때까지 기다리고 버티는 것이다. 잘 견뎌낼 수 있길 바란다고 말한다. 그리고 곧 좋아지길 바란다고 말한다. 진심으로 그렇게 바란다고...
항상 진심이 전해질수는 없지만, 너무 진부한 위로는 되지 않기를 나는 나와 같이 우울증이나 조울증 그리고 공황을 앓고 있는 이들에게 이 말들을 전한다.
정말로. 나를 걱정해주는 주변인들에게 꼭 해주고 싶은 말이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괜찮아요. 이렇게 당신을 만났으니까."
이 말을 꼭 해주고 싶었다. 그대와 함께 있기 때문이다. 내가 더 이상 혼자가 아님을 깨달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외로움에 사무치며 곪아가는 마음의 병은 더 이상 혼자 살아가는 것이 아님을 깨닫게 될 때에 비로소 빛을 볼 수 있는 것이라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만남으로 사랑을 고백한다. 어려운 마음을 이끌고 밖에 나가 누군가를 대면한다는 것은 사랑이 없으면 불가능한 일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게 만남은 사랑이며 기적이다. 울어도 혼자 우는 것이 아니고, 웃어도 그것이 공허한 울림이 아니기 때문일까. 우울증 환자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사랑의 만남이 아닐까 싶다.
그러나 나는 만남에 의존하지 않는다. 내가 혼자 있게 될 시간이 더 많기 때문에 나는 홀로 서는 것을 더 신경 써야 한다.
인간은 사람 사이를 나타내는 말이다. 사회적 존재, 곧 관계를 맺어가는 존재로서의 사람을 말한다. 그것이 인간이다. 때문에 인간은 완전히 혼자 있다면 더 이상 인간으로서 존재하기가 어렵다. 인간을 진정 인간 되게 하는 것은 전인적인 만남이다. 사람의 모든 면을 내어 놓고 마주 볼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나와 나 사이의 관계를 어떻게 정의하느냐는 것인데, 그동안 가장 나를 가치 없게 여기고 나를 상처 입힌 것은 바로 나였기 때문에 내게 그것은 쉬운 작업이 아니었다.
나를 용서하고 나를 용납하는 것. 그것이 타자를 용납하기에 앞서 자기 존중감이란 중요한 정서를 키우기 위한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함께 서기 위해서 홀로 서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자신과의 건강한 관계를 성립한 이후에야 타자와도 온전한 관계를 정립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어느덧 이 짧은 글도 끝을 맺어야 할 때가 왔다. 이제 우리는 다음 글에서 만나게 될 것이다. 그전에 당신에게 꼭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 당신은 사랑받아 마땅한 사람이라는 것이다. 아무리 마음이 아프고 병이 들었다고 해서 사랑을 받아선 안될 사람은 없고 가치 없는 사람은 없다.
마음이 아플수록 잊지 말하야하는 것은 자신의 존재와 가치가 훼손되게 둬선 안된다는 것이며, 자신으로부터 그리고 세상으로부터 자기를 지킬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기적으로 살라는 말이 아니다. 이타적으로 살면서도 충분히 자신을 아껴줄 수 있다. 중요한 건 내가 나를 어떻게 생각하느냐이다.
열등하거나 실패작이 아니라 그저 조금 아플 뿐이라고, 누구나 그럴 수 있고 자신은 지금 그저 힘든 시기를 지나고 있을 뿐이라고 생각하며 지금 그 마음의 아픔을 잘 흘려보낼 수 있었다면 좋겠다.
다음 글에서 만날 때까지 건강하고 행복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