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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광규김 Jan 18. 2022

당황스러운 대답

 "그래 부모님은?"


지역 아동 센터 교사로 봉사활동을 하던 때의 이야기다.

시린 눈이 속절없이 펑펑 내리던 그날 새로운 아이가 찾아왔다.

마침 원장님께서는 자리를 비우신 상태였기 때문에 내가 아이의 접수를 받고 응대를 해줘야 했다.


처음 만난 아이를 사무실로 데리고 들어와 자리에 앉혔다. 컴퓨터를 켜고서 양식을 찾아 문서를 열었다. 


이름, 나이, 다니는 학교 등 기본적인 호구 조사가 끝나고서 나는 시간도 때우고 아이에 대해 좀 더 알아갈 겸 몇 가지 질문을 더 했다. 


“여기는 어떻게 알고 찾아왔니?”


“성식이가 학교 끝나면 여기에 간다고 말해서 저도 와봤어요.”


“성식이랑 친구였니? 그럼 같은 반이야?”


아이는 물끄러미 나를 쳐다보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아는 친구가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적어도 낯선 공간과 집단 속에서 적응을 못하고 튕겨져 나가는 불상사가 일어날 확률이 줄었기 때문이다.  성식이는 초등학교 2학년인 다문화 가정의 아이였다. 늘 밝고 시끄러웠지만 말은 잘 듣는 그런 아이였다. 


“여기 오는 거 부모님은 알고 계시니?”


아이는 다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어딘가 편치 않은듯한 표정이었다. 

나는 순간 중요한 것을 잊고 있었다는 것을 떠올렸다. 아이의 부모님의 연락처를 받지 못한 것이다! 아이의 전화번호는 있었으나 부모님에 대한 정보를 내가 물어보지 않았던 것이다. 아무래도 양식을 바꿔야겠다. 보호자의 연락처를 좀 더 잘 보이는 곳에 큰 글씨로 둬야겠다고 생각했다.


아무튼 아이를 등록시키기 위해서는 보호자의 동의가 필요했고 그러기 위해서는 부모님 연락처까지 필요했기 때문에 아이에게 물어봤다.


“엄마 전화번호가 어떻게 되셔?”


아이는 주저하더니 말했다.


“옛날 엄마요 아니면 새엄마요?"


잠시 할 말을 잃고서 나는 아이와 눈을 마주 봤다. 불안해하고 있었다. 아마 둘 중 하나 이상은 관계가 그리 좋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같이 살고 있는 건 누구셔?”


“… 아빠만요.”


아무래도 대화가 좀 더 어두운 분위기로 빠져들 것만 같았다. 하지만 어른인 나는 최대한 감정을 겉으로 드러내지 않으려 애쓸 수 있었다. 아이는 거의 울 것 같은 얼굴로 있었다. 그것이 아이다. 당장 떠오르는 감정에 솔직할 수 있는 존재란 것이다. 그리고 그게 바로 아이들만이 가질 수 있는 그 시절만의 특권이라 할 수 있었다. 


“그럼 우선 아빠 연락처만 알려줄래? 선생님이 오늘 전화드려서 선우가 여기 왔다고 말씀드릴게.”


“네”


어른은 적절하게 화제를 돌릴 수 있는 존재여야 했다. 그리고 지금 어른이란 이 아이의 상처를 후비는 행위 따위는 해선 안된다는 걸 자각한 사람 이어야 했다. 사물함을 지정해주고 교재를 건네주며 나는 많은 생각을 했다. 앞으로 이곳 아이들 속에 섞여 함께 공부하고 밥을 먹으며 시간을 보낼 이 친구를 위해 오늘 밤은 긴 기도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아이가 자기의 얘기를 해줄 수 있을 만큼 가까워질 수 있기를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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