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만나는 이야기
“아들. 돈 좀 못벌어도 상관 없으니까. 너는 너가 하고 싶은 일을해라. 너가 행복한 일을해.”
방황이 잦던 십대 때 아빠께서 해주셨던 말씀이다.
덕분에 많은 부분에서 타협해야하지만 내 행복엔 그러지 않으리라 결심하게된 말이기도 하다.
계획대로 살수는 없는 법이다. 정말 운이 좋거나, 정말 계획을 잘 짰거나…. 하지만 나는 그런 계획을 짤 능력까진 없다. 그래서청소년기의 어렴풋이 결심했는지도 모른다. 계획이 아니라 신념을 따라 살기로. 어차피 타협할게 많은게 사람 사는거라면 나는 신념에 따라 더 유동적으로 세상에 부딛히며 살아가는게 어떨까 고민했다.
그날에 어째서 내게 그런 말씀을 해주신지는 이해하지 못했었다. 하지만 부모의 마음은 자식의 행복을 빌어준다 하지 않던가. 아빠께서는 이미 알고 계셨는지도 모른다. 내가 무엇에 행복하고 무엇에 더 불행한지를….
물론 나도 돈이 있으면 행복하다. 돈이 틀렸다는게 아니다. 적어도 나는 돈이 모든 행복을 살 수는 없지만, 대부분의 불행은 막아줄 수 있다고 믿는다. 하지만 삶이란게 그렇지 않던가. 무엇을 얻으려면 다른 무언가를 포기해야만 한다.
아빠의 말을 곱씹어보면 그런게 아닐까 싶었다. 당신이 금전을 위해 포기해야 했던 또 다른 가치가 있다. 그리고 나는 그것을 쫓을 때 더 행복한 사람이지 않을까. 혹은 남들보다 행복을 위한 금전적 조건이 달랐을지도 모른다. 사람마다 차이가 있지 아니한가.
성형광고가 미의 기준을 일통할까 걱정이 되듯, 나는 천편일률적인 행복의 기준이 외적 허영심을 충족시키며 범람하는 SNS를 통해 이뤄질까 경계해왔다. 남들이 보여주려고 하는 행복해 보이는 모습, 그런 조건들. 사실 그게 없어도 행복한데, 꼭 없으면 불행한 사람인듯 스스로 작게 느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당신은 어떨까. 여태 이런 말을 해줄 사람이 없어 오래 방황을 했을까. 그랬다면 나도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더이상 스스로 불행을 초래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 말이다.
“당신이 더 자주 행복할 수 있는 일을 했으면 한다. 그리고 그 일을 위해 포기한 다른 행복이 덜 후회로 남을 일을 찾아서 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