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석 목사는 <고백의 언어들>에서 인간은 한계를 마주하면서 자신을 찾아가는 존재로 그린다.
그 인간은 한계 너머에서 찾아오신 하나님을 만나며 진정한 자신을 발견한다.
한계 안에서 늘 새로운 신의 아름다움에 경탄한다.
그렇다면 새롭게 느끼는 것은, 낯설게 느끼는 것은 도리어 신이 부여한 축복과 같다.
한계 밖에서 찾아오는 사건은 신적이며, 신적인 일히심은 늘 새롭다.
따라서 노자의 상선은 지극히 당연한 것이겠지만,
기독교적 상선은 지극히 새로운 것에 있겠다.
이 새로움을 만끽하는 인간의 반응이 경탄이라면,
경탄은 독일 종교학자 루돌프 오토가 말한 “누미노제”(Das Numinöse)를 들어 얘기할 수 있다.
우리가 모든 경험 앞에 ‘외경’을 둔다면,
모든 시간은 그 자체로 아름답다.
동서를 막론하고 아름다움은 선함과 동일시 되는데,
이것으로 미루어 본다면 우리는 진리를 탐구하기보다 아름다움에 목말라 있는 셈이다.
어느새 경탄을 잃어버린 시대에서,
옳고 그름이란 진리와 효율이란 명목보다
중요한 것은 한순간에 멈춰설 수 있는 누미노제이다.
이 거룩한 아름다움을 체험할 때에
인간은 비로소 “아모르 파티”(Amor Fati),
줄곧 제 것이 아니었던 필연성을 사랑할 수 있다.
그러므로 운명적인 한계는 나로하여금 아름다움을 보게한다.
이를 아름답게 여길 수 있기를 나는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