둥지는 풍경을 해치지 않습니다.
처마에 잇대놓은 까치집은 가옥을 더욱 생생하게 합니다.
집이란 누군가 깃들어 살아가야만 자연스럽습니다. 그리고 인간적입니다.
무릇 터전은 그곳에 삶을 두고 애쓰는 땀방울이 심겨야 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차라리 허물어 모두에게 열어야겠지요.
바람이라도 불어서 홀씨 하나 들어와 자리를 잡아주면,
언젠가 거목으로 자랄 친구들도 모여들여 살아갈 테니까요.
먼 곳에서 찾아온 철새가 보기만 해도 숨 막히는 담벼락 앞에서 한숨을 쉬지 않도록
우리네가 살아가는 곳은 살맛 나는 동네였으면 좋겠습니다.
자연스럽고 인간적인 그런 곳. 무위와 인위가 서로를 해치지 않으면서 어우러지는 그런 곳.
이렇게 돌아보면 토지를 영구히 팔지 말라 하신 창조주의 말씀이 새롭게 들립니다.
땅을 소유한 사람은 그곳에 세 들어온 이들이 어떻게 사는지 전혀 관심이 없기 때문이지요.
천지가 불인하고, 성인이 불인하다 말할 것이 못됩니다.
땅을 영구히 가져간 사람의 심성에 사랑이 없을 따름입니다.
인애(仁愛)가 숨 쉬는 자리는 받아들여 동거하는 자리입니다.
무감정한 존엄함이란 하나 없이,
돌베개에 머리 뉘며 별을 바라보시던 사람의 아들이 바로 그런 터전이겠지요.
어쩌면 별자리를 보고, 신들의 이야기를 하던 아이들에게 꾸짖지 않고,
처음에 광명체가 내려다보던 한 동산의 멋진 이야기를 해줬는지도 모릅니다.
시간이 지나고 지나서,
눈부신 밤하늘 가득한 창조주의 약속을 가슴에 담던 민족의 아버지를 말해줬는지도 모릅니다.
어쨌거나 사람의 아들은 담벼락에서 잠들던 이들을 내쫓지는 않았을 테니까요.
인자(人子)는 가는 곳마다 인자(仁慈)를 전해주셨는지도 모릅니다.
먼 옛날 우리 조상 선배들은 이 예수를 가리켜, 지극한 도이며, 만물이 따를 군자라 비유했습니다.
하면, 인자(人子)는 인애(仁愛)로써 인자(仁者)가 돼라 하신 스승이 되십니다.
따라서 인자(人子)의 제자는 인자(仁者)가 되어야 합니다.
사랑을 가르친 스승님의 순박함을 우리가 본받기를 바랍니다.
가장 순박한 인간은 선하며 순진합니다.
또한 그는 어진 사람이라 쉬이 어리석은 유혹에 넘어가지 않습니다.
스승은 지혜를 가르칠진대 우리의 순박한 스승은 진리를 가져다 주신 까닭입니다.
아! 사랑을 힘써 배운 사람은 어찌 그리 아름다울까요?
구덩이와 험준한 산을 평탄케 하신 그 업적이 얼마나 위대한지요.
장엄한 사랑이 소탈한 옷을 입고,
길을 걸으며 자신을 따르라 했으니 사람이 애써 화려할 필요가 없습니다.
순수한 선함은 그 자체로 유염 합니다.
이는 세상을 자신의 색깔로 온통 물들이기 때문입니다.
세상에 침투하는 한 마음은 다름이 아니라 선함입니다.
따라서 선함으로 온통 물든 그 세상은 아름답습니다.
우리는 그곳을 하나님 나라라 고백합니다.
*더욱 시적인 언어로 풀이한 것은 멤버십 자료로 넣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