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이 어디에 있을까요?
가난한 시인을 보았다. 서울 도심 한복판에 있는 학원가의 서점에서 일했을 때의 이야기다.
검은색 낡은 가방을 멘 아저씨께서 문구류를 정리하던 내게 도움을 구하셨다. 가까이 다가가니 추레한 냄새가 올라왔다. 겉보기와 같은 코를 뭉근히 찌르는 곰팡내였다. 하지만 상관없었다. 겉모습은 볼품없어도 그 마음에 어떤 금언을 품고 있을지는 아무도 모르기 때문이었다. 코너를 안내해드리고 돌아서니 서점 주임님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 일주일에 한 번꼴로 진상 고객을 볼 때의 표정이었다.
아저씨는 지나가는 직원분을 붙잡고 어떤 책 한 권을 찾으시는 듯했다. 그러고는 그날 출타 중이었던 점장님을 찾으셨다. 어쩔 수 없이 응대 중이던 주임님의 표정이 점점 더 안 좋아졌다. 그러고는 손사래를 치시며 그럴 수 없다는 말만 연신 반복하셨다.
그 아저씨는 시인이었다. 자신의 책이 시집 코너에 없다는 걸 확인하시고는 책을 꺼내듯이며 진열해줄 수 없냐고 물어보셨단다. 초췌한 모습만큼이나 처량했다. 상품의 입고는 본사에서 관리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아저씨의 글을 받아줄 수 없었다. 더군다나 스스로 발품 팔아가며 매달리는 글은 아저씨의 태도만큼이나 불쌍하기까지 했다. 나는 그날 한 작가의 간절함에서 말로 할 수 없는 통탄함을 느꼈다.
이상과 현실은 다르다.
그리고 그 둘 간의 괴리가 커질수록 사람은 우울해진다.
절망과는 다른 마음의 병이다. 꿈을 꾸는 건 자유다. 누구나 꿈을 꿀 수 있다. 하지만 사람들이 그 꿈에 관심을 갖느냐는 다른 문제다. 누구에게나 자신의 꿈은 소중하겠지만 매력적인 꿈을 꾸는 사람은 다르다. 그리고 매력적으로 꿈을 꾸는 사람도 다르다.
자신의 책을 사달라고 구걸하는 시인의 모습에서 나는 스스로를 보았다. 나도 언젠가는 저런 날이 올지도 모른다. 오히려 저분 같은 용기도 없이 나는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는 비웃지도 못했고, 무시하지도 못했다. 매대 한편 월간 베스트셀러에 들지 못한 여러 국내 문학책과 함께 침묵하고 있었다. 그곳에서 나는 꿈을 꾸는 가난한 스스로와 현실을 바꾸지 못하는 무기력함을 느끼며 우울감에 눌려있어야 했다.
꿈을 꾸면서 빈곤할 수 있는 것도 축복이다. 2천 년 전 성자는 마음이 가난한 자에게 복이 있다 하였다. 그들의 마음은 가난했기 때문에 마음을 채울 수 있는 소망을 향해 달렸다. 신발이 닳고 옷이 해져도 그들은 복이 있었다. 적어도 달려갈 목표가 명확했기 때문이다. 글을 쓰고 싶은 사람은 많지만 글로 돈을 벌 수 있는 사람은 적으며, 글로만 살 수 있는 사람은 정말 극소수다. 글로 성공한 사람?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이름이 되는 것엔 이유가 있다.
하지만 귀에 박히도록 들은 말이 있을 것이다. 현실은 언제나 냉혹하다. 사람들은 타인에게 크게 관심이 없다. 타인은 당신이 꾸는 꿈에는 별 관심이 없으며, 그런 것에 지갑을 열어줄 생각은 더욱 없다. 그래서 요즘은 각종 마케팅 방법이 떠오르고, 홍보에 대한 투자를 아까워하지 않는 이유이다.
글을 쓰고 싶은 사람은 글을 사랑하는 사람이다.
남의 글을 사랑해본 적이 없다면 그리고 자신의 글을 사랑하지 않는다면 있을 수 없는 일이겠다. 하지만 가난 중에도 펜을 놓지 않을 만큼 글을 사랑했던 그 시인의 뒷얘기는 아무도 모른다. 모르기 때문에 일말의 희망이나마 가질 수 있겠지만, 내 마음엔 시인의 모습은 그렇게 처량하고 별 볼 일 없는 사람으로 남을 것이다. 사랑하는 문제로 살아가는 문제가 결정된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이것이 현실이니 어쩔 텐가?
당연한 말이 있다. 운동을 많이 하면 체력이 늘고, 공부를 많이 하면 성적이 는다. 하지만 일을 많이 한다고 돈이 늘어나진 않는다. 일을 잘하게 될지는 몰라도 돈보다 업무량만 더 쌓일 수 있다. 너무 당연한 말이지만 돈은 돈이 부른다. 그 시인이 심혈을 기울여 글을 썼을지는 몰라도 그 시집이 돈과 명성을 가져다줄리는 없다. 그것은 보장할 수 없는 일이다.
유명을 얻고 싶으면 명성을 위해,
돈을 벌고 싶으면 수익을 올리기 위한 전략을 짜야한다.
노력하는 모든 사람이 다 성공하는 건 아니지만, 성공한 사람 중에 노력하지 않은 사람은 없다. 노력은 성공의 필요조건이 아니다. 충분조건이다. 오히려 성공의 대부분은 운에 의해 지배당한다. 세상은 평등하지 않으며, 더 좋은 조건으로 시작하는 것부터 운이다. 그 시인이 시작할 수 있는 조건이 더 좋았다면, 생계에 급급하지 않고, 업계에 인맥이 더 있었더라면... 그리고 악조건을 전복시킬 만큼의 재능이 그에게 있었더라면... 이쯤 되면 오히려 마음을 비우는 게 편하다.
나는 사역자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이 있기도 했고, 전공 공부 자체가 좋아서 대학에 진학했다. 다른 이름 있는 학교가 아니라 이 분야만큼은 우리나라에서 제일 좋은 곳을 찾아갔다. 아르바이트를 하고 사역을 하는 시간이 아니면 도서관이나 카페에 앉아 책과 논문을 찾아 읽으며 공부했다. 성적은 딱 전액 받는 장학금을 유지할 수 있는 만큼만 유지했고, 수업 외에 스스로 공부하는 시간이 대부분이었다.
흔히 말하는 성덕이었다. 내가 덕질하는 분야를 전공했고, 내가 덕질하는 분야를 업으로 삼을 수 있는 일이었다. 돈을 벌고 싶다면 다른 길을 갔겠지만 이 길을 결정한 그 순간부터 나는 순교자의 길을 동경했다. 그만큼 사랑을 해서 이기도 있겠지만, 이런 식으로는 그리 오래 살 수 없겠다는 걸 느끼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전공과 취미와 적성이 일치했다. 그러다 보니 하는 작업과 일에 심혈을 기울였고, 꾸준히 공부하다 보니 나만의 특색과 전문성이 쌓여갔다. 이름을 날리며 일을 하진 못해도 나를 찾아주고 기억해지는 이들이 점점 생겼으며, 인간관계에 지독하게 서툰 나에게도 함께 일하고자 하는 이들이 생겨났다. 이 일을 생업으로 삼는 사람들이 갖춰야 할 궤도에서 벗어나지 않으면서 나만의 일을 한다. 즉 생계를 완전히 놓지 말아야 한다.
왜 너여야 하는지. 왜 너의 글이어야 하는지. 그 이유를 만들어줘라.
하지만 나는 나의 전문성을 찾으려 했다. 똑같은 교수님 아래에서 같은 서적과 논문으로 수업을 듣더라도 학기말에 제출하는 리포트와 소논문은 각자 다르다. 어떻게 받아들이고 소화하는지는 전적으로 개인의 역량과 행운에 달려있다. 더 새로운 관점으로 바라볼 기회를 얻을 수 없다면 탁월한 관점을 기르기 위해 피와 땀을 흘려야 한다. 그것들을 흘릴 만큼 토가 나올 만큼 노력을 해야 할 것이다. 만약 당신에게 그런 재능이 없다면.
예전부터 사람들은 내 장점을 말할 때 깊은 사유와 새로운 관점을 말하곤 했다. 재능이 평균치보다 높다는 건 같은 투자로 더 많은 이율을 올릴 수 있다는 소리다. 재능과 장점이 없는 사람은 없다. 사람들이 당신의 글을 찾게 만들고 싶다면, 그 이유를 당신이 만들어줘야 한다.
내가 늦게서야 나의 장점을 극대화해야겠다는 생각을 한건 아이러니하게도 인생을 완전히 포기하기 직전이었다. 내가 사랑하고 좋아했던 것들이 있지만 나는 많은 이유로 그것들을 할 수 없었다. 노래가 그중에 하나였다.
죽으려고 고민한 순간 후회가 나를 붙잡았다.
사람도 추억도 아닌 억울함이었다.
그 정도 각오로 시작했다. 이것만 하면 후회가 없겠다는 생각으로, 이것이 채우지 못한 내 삶의 빈자리란 생각으로 매달릴 각오로 시작했다. 가난을 각오하고 시작했다. 가난이 서러웠고, 가난이 한으로 남았던 인생에서 그것을 무릅쓰고 시작할 수 있었던 이유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내가 이미 경험을 해봤기 때문이며, 두 번째로는 그렇기 때문에 그 일에 대한 내 사랑이 더 큼을 알 수 있었기 때문이다.
결실을 맺지 않아도 과정에서 나는 행복했다.
당신은 어떨까? 무엇이 당신의 설움으로 남을까? 나는 행복하기 위해 많은 이들이 불행이라 말하는 것들을 감내했다. 결실을 맺지 않아도 나는 과정에서부터 행복했다. 하고 있다는 자체만으로 만족할 수 있는 일들이 있다는 말이다. 행복하고 싶다면 불행해도 괜찮은 일을 해보라. 나의 삶을 빌어 조심스럽게 권하고 싶은 말이다.
그래도 살고 싶다면, 가난했던 시인의 순수함을 잃지 않되 그렇게 되지 않을 영리함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