넌 좋은 사람이니까 #2

우울증 이야기

by 광규김

조금 천천히 가더라도 우리가 계속 걸어갈 수 있는 이유는 완전히 혼자서 가는 길은 없기 때문이다. 언제나 무언가의 도움을 받고 살며 또 어느 순간에선가 누군가에게 도움을 주며 살았다. 그게 사람 사는 삶이 아닐까?


여기 내가 받았던 도움들이 있다. 어쩌면 나라는 하나의 인격도 이런 자잘한 사랑이 엮이고 모여서 만들어진 존재가 아닐까 싶다. 그래서 그런 걸까. 나누고 싶고 건네주고 싶다. 또 어딘가에서 살아갈 이들을 위해서 말이다. 항상 읽던 책들보다 내 삶에 있어 더 많은 영감을 줬던 문장들을 오늘 이곳에서 나누고자 한다.


[번아웃과 방황]

“잘 걸어갈 거야 넌 좋은 사람이니까.”


대학교 4학년 마지막 학기가 끝나갈 무렵 번아웃이 온 나는 요양과 대학원 입시를 두고 크게 고민을 했었다. 어딘가 조언을 구하려고 해 봐도 비슷한 상황의 사람들이 잘 보이지 않았다. 그때 생각해보면 나는 말없이 스스로를 원망하고 있던 것 같다. 뭐하고 살았길래 선뜻 물어볼 사람이 이렇게 없니. 나는 평소에 사람들과 연락을 자주 주고받는 성격이 아니었다. 나는 표정과 얼굴을 대면하고 나누지 못한 이야기를 풀어가는 아날로그 한 방식을 좋아했다. 온라인 상에서는 가끔 안부를 묻거나 아끼는 사람들을 챙겨주는 등 크게 연연하며 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때는 그런 나에게 참 서운했다.


사실 사는 게 그렇지 않을까. 사람이 기댈 곳은 자기 자신밖에 없다. 하지만 운 좋게도 간혹 만난다. 자신의 어깨애 기대어 쉴 수 있게 해주는 사람들을 말이다. 내게도 그런 이들이 있었다. 문득 예전에 같이 일을 한 적이 있던 학교 선배들에게 연락을 했다. ‘잘 걸어갈 거야 너는 좋은 사람이니까.’ 충격적일 만큼 위로가 됐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내 질문에 대한 대답이었다. ‘너를 위한 일을 해라.’, ‘더 마음이 가는 길을 택해라’이런 문장들은 내게 용기를 줬다. 하지만 잘 걸어갈 거야. 그 말은 내게 또 다른 빛을 보여줬다. 기분이 무척이나 좋았다. 왠지 모를 자신감이 생겼다. 이미 지쳐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주제에 미래를 생각하기 시작했다. 지금 내가 닥친 이 우울증과 번아웃을 어떻게 풀어나갈지 머릿속에 계획이 차근차근 떠오르기 시작했다.


‘나는 좋은 사람이니까. 잘 걸어갈 수 있으니까.’


사람 말을 좀처럼 믿기 힘든 세상에서 나는 믿어버리고 싶었다. 두 눈을 질끈 감고서 이 문장에 뛰어들길 바랬다. 내가 이 어휘의 집합이 되고 되고 저 말이 나를 설명해주길 바랬으니까.


[어렵게 나의 병을 알렸을 때 ]

그리고 1년이 지났다. 최근에 와서까지도 연락을 잘하지 않고 살았다. 그런데 어디선가 내가 치료를 받고 있다는 말을 들으셨는지 무슨 일이냐는 연락이 왔다. 조금씩 나의 마음을 풀었고, 그 선배도 자신의 이야기를 풀었다. 그러곤 말씀하셨다.


“형은 네가 죽으면 진짜 슬플 거 같아. 그리고 있잖아. 널 처음 봤을 때부터 참 좋았다. 목소리도 좋고, 생각도 깊고, 너 탁월해. 감정적인 것도 탁월하지만 신학적인 글 보면 정말 탁월하니까 계속 한번 파봐. 요즘에도 글 쓰니? 넌 참 좋은 애야. 재능 있으니까 계속 한번 파봐.”


정말 건질게 많은 말들이었다. 자주 만나지도 못했고, 어느새 소원해진 사이라고 생각해도, 어디선가 서로를 생각하는 관계가 있다. 항상 마음에 품지 못하더라도 그 순간 와닿은 인연은 마음에 품을 수 있는 사람들도 있다. 그렇게 자신의 자리에서 사람들에게 자신의 사랑을 풀어주는 이들이 있다. 감사하게도 인복이 많은 나는 이런 이들을 직접 경험하며 배울 수 있었다. 멀리 있는 이들을 마음으로 더욱 아끼는 방법을 배울 수 있었다.


어렵게 나의 병을 알렸을 때 오히려 나를 인정해주는 말을 들었다. 나는 분명 나의 결함과 부족함을 드러냈는데 그 부분을 채워주는 사랑이 있었다. 내가 겸손히 나 홀로 살아갈 수 없음을 고백하는 이유는 나를 살게 했던 사랑이 분명히 존재했기 때문이다.


인격은 수많은 기억으로 채워진 존재다. 나를 알고 내가 아는 이들로 나의 내면은 가득 차 있다. 그들을 잃었을 때 슬픔은 나의 일부를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나를 붙잡은 저 말이 언젠가 당신의 마음에도 위로가 되며 스스로를 포기하려는 당신을 잡아줄 손들 중 하나가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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