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기 위한 여유 부리기
[다 부질없는 순간이 온다]
때로는 시간과 머리를 비워야지 새로운 영감이 들어올 자리가 생긴다. 난관에 봉착했을 때는 차라리 여유를 가질 필요가 있다. 먼 길을 가야 하는데 얼마 가지도 못해 넘어졌다면 길이 잘못되었다 해서 포기할 텐가? 결국 가야만 하는 길이라면 넘어진 김에 쉬었다 갈 수 있다.
이게 내가 말하고자 하는 ‘살기 위한 여유 부리기’다.
나는 그랬다. 그저 바쁘게 달리기만 하면 좋아질 줄 아는 어린아이였다. 초심을 지킨답시고 처음 달리던 그 열정 그대로 계속하면 되리라 생각했었다. 하지만 열심히 하는 건 몸과 마음이 동나버리면 정말 아무런 의미 없는 것이었다. 더 이상 아무것도 할 수 없고, 필요조차 없는 그런 순간이 온다.
마음의 병을 얻고서야 나는 요양을 택하고 고향으로 내려왔다. 그동안은 휴학 같은 쉼을 택할 기회조차 없었지만 운 좋게 얻은 휴식의 시간이었다. 나는 쉬기로 했다. 내게 그것이 필요했으니까. 그리고 그래야만 내가 살 수 있을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억지 여유]
카페를 찾아갔다. 노트북과 핸드폰 없이. 그저 커피를 사서 향을 음미했다. 예쁘게 차린 공간 안에 가득했던 여유를 힘껏 들이쉬고 싶었다. 아니 힘 껏이란 말도 빼야 한다. 하나라도 좋으니, 하루라도 좋으니 열심히 할 필요 없이 쉬라는 그 말을 그대로 지키고 싶었다.
정말로 지쳐버리면 잘되거나 열심히 하거나 모든 게 아무런 소용이 없어지는 순간이 온다, 그리고 4년간 쉼 없이 달렸던 내게 그런 날이 찾아오고야 말았다.
흔히들 초심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초심을 지키고 초심으로 돌아가자고 말한다. 과거에 대한 환상과 미화 때문일까. 초심을 가질 수 있었던 상황과 자신의 상태는 전혀 고려하지 않은 채 이미 닳고 닳은 마음에 강박을 불어넣는다고 하여 바뀌는 게 뭐가 있을까.
나는 병을 겪고 있다. 아주 깊고 낮은 곳부터 끓어 올라왔던 아픈 향기로 가득 찬 가슴을 앓았다. 우울증. 조울증. 흔히 말하는 양극성 기분 장애. 그것이 내가 얻은 병명이었다. 잠시라도 가만있으면 우울함이 올라왔고 모든 것을 잊어버리고 싶어서 자신을 학대했다. 그리고 스스로에게 포학을 저지른 대가는 마음의 병으로 돌아왔다.
나는 초심을 지키지 못했다. 애초에 초심을 품었던 순간조차 어긋난 마음으로 시작했던 게 아닐까 싶다. 열심을 다할 수 없었다. 다해왔지만, 어느 순간부터 그럴 수가 없었다. 아무것도 필요가 없었고 손에 잡히지 않을 것만 같았다.
안 좋은 기분은 쉽게 떨쳐낼 수 없다. 그리고 그것을 자력으로 떨칠 수 없을 때 ‘병’이라고 부른다. 병리적인 심리현상. 정신의 역동은 사람을 서서히 때로는 급격하게 잡아먹어 죽이려 든다. 심장이 조여오며 가슴이 내려앉듯 불편하고 아팠다. 하루 종일 지쳐버린 나의 쓸모에 대해 회의적인 마음을 가졌다. 나는 초시를 잃었고, 그걸 되찾지 못하면 실패자요 죄인이 죌 것만 같았으니까.
하지만 그렇지 않았다. 전혀 그런 게 아니었다. 오히려 열심히 살았기 때문에 병에 걸릴 수 있었다. 오히려 쉬지 않았기 때문에 더 잘못 살았다 말할 수 있는 것이었다.
‘살기 위한 여유 부리기’ 그런 나를 위한 말이었다.
나는 살기 위해 여유를 부렸다. 그래야 했다. 여유를 되찾아야 했다. 더 이상 쉼이란 단어에 불안과 초조와 죄책감이 섞여 들어가지 않도록 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