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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삶은 축복 Aug 21. 2023

치유의 시작, 블로그

봄이 아빠가 떠난 지 1년이 아직 안되었을 무렵, 또다시 병원에 입원하게 되었다. 벌써 두 번째 입원이었다. 턱관절 장애로 1주일에 두 번씩 턱관절치과에 다니고, 이렇게 관절이 안 좋다 보니 이전에 벌써 여러 번 삐었던 왼쪽 발목을 또 삐어서  정형외과 한의원을 여러 번 번갈아가며 다녔다. 또, 소화기 장애로 내과에 다니기를 여러 번,,,


결국 높은 염증수치와 심한 두드러기로 입원하고야 말았다. 항생제를 맞을수록 심해졌던 두드러기가 항생제를 줄이자 그제야 조금씩 통증과 가려움이 잦아들기 시작했다.


병원에 누워있는 시간이 길어서 유튜브를 보기 시작했다. 눈에 들어온 건, 예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참 존경스러운 여성, 김미경강사님의 영상이었다. 더 젊은 시절에도 김미경 강사님 책이 동기부여가 됐었는데, 유튜브도 마음속 깊이 와닿았다.


봄이 아빠를 보내고 피부에 와닿은 현실들 중 하나는 경제적인 문제였다. 맞벌이를 했고 나보다 봄이 아빠가 많이 벌었다. 그런데 직장을 새로 구해 옮겨오면서 정규직인 내 직장은 계약직이 되었고, 내 월급은 이전보다 줄어들어서 수입이 반이상 줄어든 상태였다. 게다가 자꾸 아파서 결근하고 입원하다 보니,  병가가 아닌 무급휴가 처리가 되어 월급은 더 적어지기 일쑤였다.


코로나가 시작되었던 그 해, 김미경 강사님도 처음에 강의의뢰가 거의 제로 상태가 되면서, 직원들 월급을 주지 못할 정도로 어려움에 처하셨다가 바로 또 순발력을 발휘해서 미래를 만들어가고 계셨다. 이제 오프라인의 길이 막힌 이런 세상에서 블로그, 유튜브 등의 SNS나 온라인 스토어가 돈이 될 수 있음을 강조했다.


그리고 생각했다. 내가 이 아이를 혼자 키우기 위해 수입을 좀 더 늘릴 수 있는 일이 뭘까,,, 아직 4살 난 이 아이를 데리고 유튜브를 혼자 찍긴 무리일 것 같았다. 한 명은 찍고 한 명은 아이랑 놀이를 하거나 해야 하는데 혼자 북 치고 장구치고 모습을 다 담기는 어렵겠다고 생각했다. 더구나 다른 유튜버들을 보면 다 엄마아빠가 아이와 함께 행복한 모습인데, 상대적인 박탈감을 느낄 것 같았다.  


또한, 스마트 스토어를 하려면 그때만 해도 정보가 전무했던 난 아이를 둘러업고 동대문 시장에 발품이라도 팔아야 물건을 떼올 수 있는 줄 알았다. 지금이야 온라인 소싱처가 넘쳐나서 진입장벽이 너무 낮아졌지만 말이다.


내가 가장 잘할 수 있을 것만 같은 것이 블로그였다. 내가 가장 많이 시간을 보내고 잘하고 있는 것은 퇴근하면 아이랑 최선을 다해 놀아주는 것이었다. 이제 다들 스마트폰으로 정보검색도 하고, 유튜브도 보는 세상이 되어서 화질 좋은 카메라로 찍지 않아도 되었다. 아이랑 놀면서 틈틈이 사진을 찍어두고, 잠이 오지 않는 새벽에 글을 쓰기 시작했다.


아이아빠 이야기는 마음에 담아둔 채, 사용하던 아이용품을 리뷰하고 아이와 놀아주는 모습, 그리고 아이와 함께 가는 곳에 대한 이야기를 써나갔다. 2주일쯤 지났을까,,, 블로그가 전혀 검색이 되지 않는 저품질현상에 빠졌다. 내 글에 잘 공감해 주던 블로그를 오래 해서 방문자도 많던 이웃 블로거에게 도움을 청했다. 다행히도 친절하게 알려주었고, 조급해하지 않고 기다리면서 꾸준히 블로그를 해나갔다.


새벽 한 두시면 어차피 깨어서 집안정리를 하며 시간을 때우다 날을 새고 출근했던 나는 이제 그 시간에 글을 썼다. 자기 계발을 위해 일부러 네시 다섯 시에도 일어나는 사람들이 있었고, 그들은 그걸 미라클 모닝이라고 불렀다. 나는 본의 아니게 강제 미라클 모닝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남들보다 빨리 그날 떠오른 검색어를 골라서 글을 썼고 , 글의 조회수가 조금씩 늘어갔다. 소위 상위노출을 잘 만들었다. 감히 강의를 찾아서 듣고 시작할 여유가 없었기에, 일일이 손품을 팔아서 다른 블로그들 참고하며 부딪혀가며 글을 썼다.


한 달쯤 지나자 저품질도 해결됐을 뿐 아니라, 갑자기 협찬제안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값비싼 협찬은 아니어도 소소하게 들어왔고, 그렇게 블로그를 시작한 지 한 달 만에 협찬을 받은 한 달 수익이 40-50만 원 정도 되었다. 지금이야 체험단이 너무 흔하고, 오히려 홍보성 글들도 많다. 하지만 당시에는 체험단 하면 그래도 상위블로그들이나 할 수 있는 귀한 것이었다. 그중에는 우리에게 꼭 필요했던 10만 원 상당의 아이 심리상담프로그램도 있었다.


3살 아이에게 갑자기 사라진 아빠를 1년 가까이 멀리 일하러 갔다고 말했지만, 더 이상 속일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왜냐하면 요즘 세상은 영상통화도 가능하고 이런 사실을 4살 아이도 멀리간 아빠얼굴을 볼 수 없다는 게 이상하다는 걸 생활 속에서 깨닫기 때문이다. 그렇게 상담을 통해 아이에게 아빠가 별이 되었다는 사실을 역할놀이를 통해 알려줄 수 있었다.


 두 번째 달에는 당시 12월이라 제주 노지귤이 많이 팔릴 때여서 귤을 팔아 200만 원 정도의 매출을 만들었고, 블로그 운영 두 달 만에 네이버 상위 1% 블로그가 되었다.


그런데 주변을 보니, 사람들이 원하는 경험을 공유하며 블로그를 브랜딩 하고 수익을 창출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직장생활만이 유일한 수익원이라고 믿고 살았던 내게는 충격이었지만, 남들 앞에 서서 강의를 해 본 적도 없었지만 무슨 자신감인지 왠지 할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아니 꼭 하고 싶었다. 직장에 다니지 않으면서도 아이와 더 많은 시간을 보내면서 수익을 더 클 것으로 기대됐기 때문이다. 당시는 코로나 시국에 오프라인은 모두 제한되고, 온라인으로 돈을 버는 사람들이 많은 시절이었다.


이젠 나보다 글을 더 잘 쓰는 인공지능이 대세다.  챗 GPT가 질문만 하면 내가 몇 시간이 걸릴 일도 단 몇 초 만에 써주는 세상이 되었지만, 이렇게 글쓰기를 하며 가슴속 응어리들을 쏟아내며 얻어지는 치유의 힘은 AI가 대신해 줄 수는 없다.


그래서 난 죽을 때까지 글쓰기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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