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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을 가르치고 싶다고요? 당신들이 뭔데요?

Chapter1. 우당탕탕, 또시작? 또, 시작!

by 장병조

※이번 편 길어요! 아주!


경기도에서 멘티를 모집하며 있었던 일들에 대한 이야기다. 앞선 에피소드에서 보았듯, 지방에서는 ‘정말 좋은 의도를 담은 프로그램이네요! 할 수만 있다면 아이들에게 좋은 경험이 될 것 같아요.’라는 느낌의 거절을 받았다. 프로그램을 시행할 여력이 없어 방꾸쟁이들을 받아주기 어려웠던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경기도의 거절은 사뭇 달랐다. 경기도의 거절은 ‘아이들을 가르치고 싶다고요? 당신들이 뭔데요?’라고 말하는 듯한 느낌이었다. 그들에게는 방꾸쟁이들의 최종학력이 뭔지, 전공이 뭔지, 그들이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지, 권위 있는 사람인지가 가장 중요해 보였다. 아마도 그런 것들에 대한 증명이 신뢰의 척도로 작용하고, 더 많이 배운 사람이 아이들에게 더 큰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속상했다. 유명하지 않고 권위를 보여주는 학력이나 이력, 연구가 없다는 이유로, 때로는 어려 보인다는 이유로 거절당하는 느낌이라 속상했다. 우리는 아이들에게 분명히 도움을 줄 수 있는데, 그런 건 중요하지 않았다. 메일로 소개 자료를 보내라고 해서 보내면 답장해주는 곳은 물론이고, 메일을 읽는 곳조차 많지 않았다. 직장에서 일해본 경험이 있었기에 그들의 삶이 얼마나 바쁜지, 얼마나 많은 콜드 메일과 제안서를 받는지 알기에 이해는 했지만, 막상 ‘안읽씹’과 ‘읽씹’을 반복해서 당하는 처지가 되어 보니 마음이 쓰라렸다. 열심히 준비했는데 말이다.


쉬우리라 생각하진 않았지만,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장벽이 높았다. ‘좋은 의도로 가치 있는 일을 하기 위해서는 일단 알려진 사람, 잘 나가는 사람이 되어야만 하는구나.’라고 생각하게 되는 시기였다.


다행히 이 시기가 상처뿐인 시간으로만 가득했던 것은 아니었다. 도서관 2곳에서는 친절한 거절을 경험했는데, 그곳에서 느낀 따듯함 덕분에 상처받은 마음을 금방 회복할 수 있었다.


처음으로 친절한 거절을 보여준 곳은 느티나무재단에서 운영하는 느티나무도서관이었다. 용인시 수지구에 위치한 느티나무도서관은 처음으로 방꾸쟁이들의 소개 자료를 읽어주었다. 또, 프로그램에 대해 상세히 묻고, 도서관 측에서 장소를 제공해줄 수 있는지, 아이들을 모집해줄 수 있는지 논의 후 알려주었다. 결과적으로 느티나무 도서관 또한 거절 의사를 밝혔지만, ‘열린 게시판’에서 자유롭게 멘티 모집이 가능함을 알려줌으로써 방꾸쟁이들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밀어주었다. ‘누구나 꿈꿀 권리를 누리는 세상. 도서관으로 더 나은 세상을 만들고 싶습니다’라는 미션을 가진 도서관답게 방꾸쟁이들의 꿈꿀 권리까지 보장해준 따뜻한 곳이었다.


이야기가 나온 김에 도서관에 대해 조금 설명하면, 느티나무도서관은 ‘가르치지 않아서 더 큰 배움터’인 곳이다. 방문해보면, 시민들이 독서 활동뿐만 아니라 커뮤니티 활동, 메이커스 활동 등에 참여할 수 있도록 공간이 조성되어 있다. 이는 도서관을 방문한 사람들에게 호기심을 유발하고, 그들이 자발적으로 배움에 뛰어들도록 하기에 충분해 보였다. 도서관의 열린 게시판에서 시민들 간 자유로운 소통이 이뤄지고 있었다는 점도 꽤 인상 깊었다. 특히 모임에 대한 홍보가 활발했는데, 그 종류가 다양했다. 독서 모임뿐만 아니라 보드게임 체험, 원데이 클래스, 강연 등을 주제로 모임이 이뤄지고 있었다. 이런 모습을 보고 느티나무도서관이 ‘만남과 소통, 경험을 통해 스스로 배우는 것을 중요시하는 도서관’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용인시에 거주하고 있는 시민과 도서관에 관심이 많은 경기도민이라면 느티나무도서관에 방문해보기를 추천하고 싶다.

CH1_사진5_느티나무도서관.jpg 느티나무도서관 전경 / 처음 경험해보는 ‘친절한 거절’, 느티나무도서관!

느티나무 도서관의 친철한 거절에 힙입어 성남시에 있는 청소년 도서관 한 곳에 방문했다. 친절한 거절을 보여준 두 번째 도서관은 ‘라이브러리 티티섬’이다. 티티섬을 간단히 소개하자면, 도서문화재단씨앗에서 운영하는 청소년 중심의 공공 도서관이다. 티티섬에서는 10대를 2개 그룹으로 구분하는데, 트윈(12~16세)과 틴(17~19세)이다. 도서문화재단씨앗에서는 티티섬이라는 공간을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트윈과 틴으로 구성된 ‘TNT Architect(티앜)’ 그룹과 4개월 동안의 워크숍·인터뷰를 진행하였고, 그 과정에서 청소년의 목소리를 적극적으로 반영할 수 있었다고 한다. 티티섬에 방문해보면 기획·설계 과정에서뿐만 아니라 실제 현장 운영에 있어서도 10대 청소년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수용한 듯한 느낌을 받을 수 있다.


티티섬 방문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한국에서 흔히 보기 어려운 ‘성 중립 화장실’이 있다는 점과 청소년이 편하게 머무를 수 있도록 만든 ‘청소년만 이용할 수 있는 공간’이 있다는 점이었다. 티티섬이 마련해준 청소년만의 공간은 아이들에게 안정감과 자유로움, 그들만의 공간이라는 주인의식을 심어주기에 충분해 보였다. 흔히 ‘도서관’이라는 글자를 ‘딱딱하고 정적인 분위기’를 연상시키곤 하는데, 티티섬의 청소년 공간은 방꾸쟁이들이 상상했던 일반적인 도서관 분위기와 전혀 달랐다. 다양한 체험 활동이 이루어지고, 뛰어노는 아이들이 있는 ‘유연하고 동적인 분위기’의 공간이었다. 그런 티티섬의 공간들은 청소년들이 낡아버린 사회적 관념과 구시대적 상상력을 깨버리고 자기들만의 미래를 꿈꾸기에 최적화돼 보였다.


본론으로 돌아와, 모두에게 열린 공간인 티티섬은 방꾸쟁이들 또한 환하게 맞이해주었다. ‘영자’라고 불리는 티티섬 직원들은 방꾸쟁이들의 멘토링 프로그램 소개를 경청해주었고, 디지털화된 자료가 있다면 메일로 보내달라는 이야기를 해주었다. 방꾸녀는 이런 티티섬의 반응을 ‘긍정적 검토’의 시그널로 받아들이고 혼자 김칫국을 마시기도 했다. 어떤 멘토링을 하면 좋을지, 아이들에게 버킷리스트를 인터뷰한다면 어떤 답변을 들어볼 수 있을지 기대했다. 흔히 말하는 ‘행복회로 풀가동’의 상태였다.


티티섬에서 안내해준 주소로 메일을 보내두었는데, 고맙게도 빠르게 답장이 왔다. 그러나 핵심 내용은 티티섬에서 방꾸쟁이들이 멘티를 모집하거나 멘토링을 제공할 수 없다는 것이었고, 방꾸녀는 실망했다. 하지만 한 번 거절당했다고 포기하는 것은 방꾸녀의 성격상 용납할 수 없는 일이기에 그녀는 다시 메일을 써 티티섬으로 날려보냈다. 하지만 결과는 바뀌지 않았다. 거절이었다. 그럼에도 티티섬에게는 참으로 고마웠다. 왜냐하면 거절 의사를 표현해준 몇 안 되는 곳이었기 때문이다.


언젠가부터 방꾸쟁이들은 자신들의 제안을 승낙해주는 것을 바라기보다 ‘거절이라도 해주면 좋겠다.’라는 생각을 갖고 있었던 것 같다. 그만큼 사람들은 방꾸쟁이들이 누군지, 뭘 하는지, 그러든지 말든지 관심이 없었다. 그들에게 방꾸쟁이들은 그냥 지나쳐가는 스팸 메일 같은 존재였던 것 같다.


티티섬은 거절 의사를 밝혀준 것 외에도 방꾸쟁이들에게 ‘열정’을 불어넣어 주었다는 점에서 고마운 존재로 자리 잡았다. 티티섬이라는 멋진 공간을 둘러보고 나니 방꾸쟁이들은 비슷한 공간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에 마음이 불타올랐다. 자유로움과 꿈이 마구 엉켜 있는 공간에 신선한 충격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두 사람은 ‘나중에 우리도 꼭 청소년이 마음껏 꿈꿀 수 있는 공간을 만들자’라고 다짐했다. 방꾸녀는 방꾸남에게 “우리는 건물 말고 진짜 섬을 하나 사면 안 돼? 그 섬 전체를 청소년이 직접 가꾸고 즐겁게 이용할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드는 거지. 생각만 해도 설레!”라고 말하며 잠시 방문한 티티섬에서 자신의 꿈을 찾았음을 표현했다.


티티섬은 학교 주변 생활권에 위치해 충분히 활성화되어있다. 그러나 티티섬과 같은 공간이 모든 학교 주변에 있지는 않다. 방꾸쟁이들은 티티섬과 같은 공간이 지역마다 최소한 하나씩은 자리를 잡아갔으면 좋겠다고 느꼈다. 방과 후에 스마트폰과 둘이 노는 것이 아닌 여러 또래와 함께 놀며 사회성을 기를 수 있는 곳 티티섬, 책을 만나 상상력을 기를 수 있는 티티섬, 아이들이 입시라는 호수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게 아니라 꿈이라는 바다에 빠져 유유히 헤엄칠 수 있도록 도와주는 티티섬은 우리 사회에 꼭 필요한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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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입장 팔찌와 함께 동심의 세계로! / (우)동네 한가운데 아이들이 놀 수 있는 도서관이 생겼어요!

방꾸쟁이들은 ‘모두에게 거절당하는 경험’이 살면서 처음이었다. (많은 숫자는 아니었지만) 거절당할 것을 알면서도 문을 두드리는 경험, 거절당했지만 꺾이지 않고 다음 문을 찾아 두드리는 경험은 ‘아프지만 가치 있는 경험’으로써 그들의 몸과 마음에 새겨졌다. 방꾸쟁이들이 성장하는 데 좋은 양분이 되었다. 특히 이번 거절의 경험은 ‘목표했던 결과에 도달하지 못하더라도 충분히 가치 있는 결과를 얻을 수 있다.’라는 것을 깨닫게 해주었다.


비록 기관과 협력한 멘티 모집에는 실패했지만, 그 과정에서 누군가에게는 기획에 대한 피드백을 받고, 새로운 장소에 방문해서 영감을 얻기도 했다. 또, 가볍게 넘어지는 방법을 배웠다. 처음에는 거절당하면 마음이 무거워지고 힘도 빠졌지만, 나중에는 ‘여어~ 또 거절이군! 괜찮아. 다른 데 가서 물어보지 뭐’라는 가벼운 마음가짐으로 다음 장소로 향할 수 있게 됐다. 물론, 거절당하는 일은 여전히 마음을 아프게 한다. 하지만 아픔에 대한 내성이 조금은 생긴 듯하다.


이 모든 일이 혼자가 아니기에 가능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방꾸녀, 방꾸남 그들은 혼자였다면 일찍이 포기해버렸을지도 모른다. 몇만 걸음을 걷고 몇 번씩 거절당하는 매일을 반복하는 것에 지쳐 쓰러졌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두 사람이기 때문에, 어느 한 사람이 넘어지면 손을 잡아주는 다른 한 사람이 있기에, 같이 넘어지고 함께 아파하는 사람이 있기에 지금까지 올 수 있었다. 방꾸쟁이들은 거절 받는 경험 속에서 ‘우리’라는 공동체를 얻었고, 나란히 걷는 방법을 배우고 있었다.


■ 다음 이야기(2025.01.12.일 업로드 예정)

□ Chapter1. 우당탕탕, 또시작? 또, 시작!


"기관은 이제 그만, 개인에게 우리를 알려보자!"

→ 전단지, 당근마켓으로 방꾸쟁이들의 프로젝트를 홍보하다! 과연 방꾸쟁이들은 희망하던 대로 멘티를 모집할 수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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