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추운 26도. 다양한 예배들..
※ 일러두기 : 이 편지는 1998년에 첫 번째 직장에서 권고사직 당한 후, 1999년 1년간 단기선교로 캄보디아 프놈펜기술학교에서 컴퓨터 교사로 지내던 시절에 썼던 기도편지입니다. 70년 개띠 아재 직딩기 4편과 (https://brunch.co.kr/@givemyself/69)과 5편(https://brunch.co.kr/@givemyself/96) 사이에 들어가는 내용입니다. 당시 캄보디아는 정전이 잦았고 전화선을 통한 모뎀으로 느린 인터넷 연결만이 겨우 가능한 상황이었기 때문에, 이 글은 이메일로 썼습니다. 24편의 편지와 베트남 육로 여행기 9편, 총 33편의 편지글로 이뤄져 있습니다. 1999년 세기말, 30세 청년 박경규가 26년 후 2025년 56세 장년 박경규에게 보내는 편지라고 생각해 봅니다. 당시에는 어쩔 수 없이 텍스트만 넣은 편지였지만, 브런치에는 최대한 열심히 사진을 찾아서 넣어 보려 합니다. 사진은 스캔해서 넣어서 화질이 좀 나쁠 수 있고, '단기 선교사'로 쓴 글이기 때문에, 기독교적인 표현들이 있습니다. 당시에 쓰던 글투, 말투가 좀 오그라들지만, 오타를 제외하고는 가능하면 수정을 하지 않으려 합니다. 시간이 많이 지났기 때문에, 등장하는 실명들도 그냥 두었습니다.(불편하시다고 알려주시면 바로 그분은 익명처리 하겠습니다.)
기도편지(7)
1999.2.5.금
지난밤에는 많이 추워서, 침대 한 귀퉁이에 잘 개켜져 놓여있던 담요를 자다 말고 펼쳐 덮고 덜덜 떨었습니다. 온도는요? 아침에 온도계를 보니, 26도였습니다. 감기에 몸살이 겹쳐 왔습니다. 이 나라에서는 1도의 변화만 되어도 신체적으로 매우 다르게 느껴집니다. 지난번에 방콕 아시안 게임을 할 때, 태국에 이상기온 현상으로 사람들이 파커를 껴입고 다니는 모습들을 보셨겠지요? 그때 즈음에 캄보디아에서도 21도까지 온도가 떨어졌었는데, 이곳에 계셨던 분들은 정말 뼛속을 스며드는 추위를 느꼈다고 말합니다. 잠옷밖에 청바지를 입고, 있는 이불은 다 꺼내 덮었는데도 추워서, 파커라도 있으면 입고 싶었다고 하시더군요.
오늘은 하루 종일 두통과 몸살과 설사로 골탕을 먹었습니다. 약을 먹었는데도 별로 나아지는 기미가 보이지 않습니다.
이번 주 화요일에는 오리엔테이션을 하고, 수요일부터는 정상적인 학교수업을 시작하였습니다. 이곳에서는 일을 평소보다 조금만 많이 해도 몸에 무리가 오고 쉽게 피곤해집니다. 어떤 분의 말씀에 따르면, 이곳에는 꽤 큰 바퀴벌레가 기어 다니는데, 한국의 날쌘 바퀴벌레와는 달리 더위를 먹었는지 엉금엉금 기어 다닌다고 하시더군요. 목요일쯤 되니까, 주말이 마구마구 그리워지고 쉬고만 싶어졌습니다. 아직 타이핑을 가르치고 있기 때문에 별로 하는 일이 없는데도, 아침 7:40분부터 수업이고, 10분의 쉬는 시간이 무색하게 연이어서 교체되는 학생들을 맞이하고 살피느라 괜스레 피곤했던 모양입니다. 드디어, 보통 이곳에 온 지 한 달쯤 되면 증상이 온다던 신고식을 치르게 되었나 봅니다.
학생들은 소개받아 온 곳도 다양하고 나이도 교육 수준도 다양합니다. 캄보디아 외무부에서, 소련에서 6,7년간 유학을 하고 석사학위도 있는 외무부 직원 두 사람을 보내어 왔습니다. 한쪽 눈을 실명하여 의안을 한 듯이 보이는 학생, 다리가 불편한 학생, 아줌마도 2명 정도 있고, 초교파적인 프놈펜 바이블 스쿨의 신학생도 4명을 위탁받아 가르치게 되었습니다. 선교사님들의 소개와, 교회 목사님들의 소개로 온 학생들이 많고, 고아원에서 온 학생들도 많습니다. 이곳에는 천차만별의 NGO(Non-Governmental Organization)와 교파와 교단에서 들어와 이 나라를 섬기고 사역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서경기 목사님은 이러한 조직들의 연합과 효과적인 섬김을 위해서 우리 학교가 작은 역할을 할 수 있길 바라고 계십니다. 오늘은 서경기 목사님과 이런저런 대화를 하면서, 연합에 대한 얘기를 많이 나누었습니다.
연합케 하시는 주, 하나 되게 하시는 주, 하나이신 주를 섬기면서도 우리는 왜 연합하지 못할까요? 자기의 이름이 드러나고, 자기 모임이 드러나길 원하기 때문입니다. 예수의 이름만 드러나고, 자기와 자기 모임은 이름도 빛도 없이 사라지길 원치 않기 때문입니다. 연합치 못하는 세계의 기독교인들 덕택에, 이곳 캄보디아에서도 온갖 교단과 교파가 형성되고 있습니다. 과연 우리의 주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연합치 못한 교회들을 통해서도 놀랍게 일하시는 분이시기는 하지만, 심판의 날에 아마 우리 온 교회는 연합하지 못했던 우리의 죄에 대해서 부끄러워하게 될 것입니다.
지난 주일에는 이성민 선교사님 댁의 교회에서 예배를 드렸습니다. 물론 예배는 크메르어로 진행되었기 때문에 전혀 알아들을 수가 없었습니다. 이 나라에서는 목회자들이 (우리나라와는 달리) 친근합니다. 캄보디아인 목사님이 말씀을 전하셨는데, 통통한 몸집에 며칠 안 깎은 수염, 빨간색 티셔츠를 입고 설교를 하셨습니다. 중간중간에 자연스럽게 사람들에게 물어보기도 하고, 사람들도 스스럼없이 대답합니다. 거룩함보다는 친밀함이, 종교적인 위압감보다는 걸쭉함이 느껴지는 설교입니다. 손목을 보여주며, 손에 못 박히신 예수님에 대해서 설명합니다. 예... 아마도 그럴 것 같습니다. 끔찍한 대학살과 계속되는 외침과 가난과 고통 속에서 살아왔던 이들에게 예수님은 우리와는 또 다른 분으로 만나 주시겠지요.
이곳 예배는 교회마다 조금씩 그 형식이 다른 것 같습니다. 이 교회에서는 간증과 기도시간이 설교 앞에 있었고, 이곳 대부분의 교회에서와 같이 헌금을 드리는 시간이 설교 앞에 있습니다. ICF(International Christian Fellowship)의 예배에는 기도제목을 요청하고 기도하는 시간이 예배 앞부분에 있습니다. 탕백홍 목사님의 New Life Church에서는 어린이, 청년, 장년의 성가대가 연이어 찬양을 합니다. 이렇게 다양한 형식의 예배가 드려집니다. 그렇지만, 모든 예배 속에 그리스도께서 함께 계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싸른”이라는 부부가 지난주에 결혼을 한 모양입니다. 설교 중에 그들을 일으켜 세웁니다. 소개하고 축복하고 그 부부를 영접하며 기도해 줍니다. 수줍어하며 두 부부는 두 손을 공손히 모아 인사를 합니다.
ICF의 예배에서는 6살과 8살이 된 선교사의 두 자녀가 유괴를 당했다고 기도를 요청해 왔습니다. 너무도 안타까운 일입니다. 선교지의 아이들은, 그 자신도 그 부모의 고난에 동참을 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언어와 문화, 교육의 문제, 건강과 안전의 위협등... 선교사들이 가장 어려워하는 문제도 자녀의 문제가 아닌가 싶습니다. 이곳에 많은 선교사님들과 그들의 자녀들 위에 그리스도의 보호하심과 은혜가 늘 부어지길 기도합니다.
몸 상태가 별로 안 좋아서 주저리주저리는 못쓰겠네요. 기도할 제목들이 많고 정말 필요한데, 기도해야 할 제가 잘 기도를 못합니다. 예수님 앞에서 죄송할 뿐입니다. 정말 제 마음이 예수님의 마음과 합해서 제가 기도하는 곳마다 보호와 치료와 사랑이 임했으면 좋겠습니다. 나는 너무 작고 하는 일은 없습니다. 다만 이렇게 찔끔 한숨처럼만 기도합니다.
1999년 2월 5일 금요일에
캄보디아에서
박경규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