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중일기- '명예 OO' 거부합니다

내일 모레 몇살. 그건 내일 모레고 지금은 아닌데...

by 기역
진상이 서른 여섯이야, 좀 있으면 마흔이야.

-드라마 '또 오해영' 중-


30대 중후반부터는 명예 마흔 취급을 받는 걸 흔히 볼 수 있다.

태어나자마자 넌 0살이 아닌 1살이라고 하더니,

왜 나이를 빨리 먹으라고 하는 걸까.

날 때부터 한국에 쭉 살아왔지만, 여전히 한국에 이해못할 게 많다.


산수를 배웠으니까 30대 중반과 40이 나이차가 별로 없다는 건 안다.

그렇게 치면 30대 중반은 30대 초반과도 별로 차이가 없다.

그렇지만 왜 마흔을 미리 체험하라고 등떠미는 걸까.

난 그러고 싶지 않은데, 난 그러기 싫은데?

곧 마흔이지만 마흔은 아닙니다.


근데 이건 마흔만 그런 게 아니다.

나이대의 중후반이 되면 넌 내일모레 몇살이라는 말을 한다.

20대 중후반도 명예 서른의 압박을 받는다.

앞자리가 바뀌기 몇년(아마도 4~5년 이하) 남은 사람에게 카운트다운하듯이 사람들은 이말을 한다.


내일 모레 서른,

내일 모레 마흔,

내일 모레 쉰...

30살,40살, 50살이 얼마 남지 않은 나이이니 그에 걸맞도록 준비를 하라는 의미일 것이다.


하지만 빨리 더 크라고 닦달한다고 내가 성장하는 것은 아니다.

나는 20살의 나보다, 30살의 나보다 정신적으로 조금 나아졌지만,

여전히 헐, 대박, 짱이다 같은 유행어들을 놓지 못한다.

내가 기억하기로는 내가 고 3때부터 기분을 표현할때 앞에 '개'를 붙여서 굉장히라는 의미로 쓰기 시작했다.

근데 솔직히 지금도 쓴다.


@grim_giyeok 자화상


나는 35, 36, 37, 38을 명예 마흔으로 지내고 싶지가 않다.

사람들은 내게 명예 마흔이라고 말할지 몰라도 나는 그게 내키지 않는다.


명예 마흔은 실제로 명예롭지 않다.

'내일 모레 몇살이면서', '내일 모레 몇 살 씩이나 되서' 등 용례가 그렇다.

너는 생물학적으로 지금보다 몇살 더 나이든 거나 다름 없는데,

너의 현실은 그 나이에 걸맞냐고 물을 때 보통 저 말을 끌고 오기 때문이다.

'내일 모레 몇살'을 좋게 쓰는 것을 보지 못했다.

스스로가 쓸 땐 자학의 의미로,

남이 쓸 땐 욕의 의미, 조롱의 의미로 많이 쓰는 것 같다.

애초에 한 사람을 내려칠 요량으로 나이를 올려치는 경향이 보인다.

마흔이 다가오고 있지만 지금 마흔은 아니다.

마흔 살에 먹을 욕까지 미리 당겨서 먹고 싶지 않다.

내 마흔을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

별 일 없으면 세상에 남아있겠지만 사람의 운명을 누가 장담할 수 있을까.


마흔의 압박을 느끼지 않는 게 내게도 숙제다.

마흔 전에 끝내야할 것 같은 일들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 식대로 가는 길이 남들과 다르다고 해서 슬퍼하거나 자괴감을 느끼지 않기 위해서

나는 애쓰고 있다. 글을 쓰는 이유도 그래서다.


사람들 눈에 비칠 나를 생각하기 보다는,

내 눈에 내가 한심하지 않고 부끄럽지 않게

그렇게 나는 하루를 살아간다.



그린이-기역/글쓴이-기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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