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을 대하는 마음가짐을 바꾸기로 했다.
쓰레기를 쓰겠어!
라고 결심하니 써지긴 써진다.
매일 다짐해야겠다.
쓰레기를 쓰겠어!
이경미,〈잘돼가? 무엇이든〉 중에서
'좋아요'는 왜 내게 긴장감을 줄까.
좋아요는 곧 사람들의 반응과 관심의 척도다.
인스타그램을 하다 보면 좋아요를 생각보다 많이 받을 때도 있고 적게 받을 때도 있다.
오랜만에 인스타에 게시물을 올렸는데 좋아요 수가 저조했다. 마음이 좋지 않았다.
네가 한 거 봤는데 별로야, 그냥 그래라고 말하는 느낌이 들어서였다.
나와 내 그림을 동일시하고 있었던 것이다.
창작과 배설은 닮았다.
내게 있는 걸 내보낸다는 면에서는 같다.
배설물은 내보내는 순간 나와 조금도 접점이 없다고 생각하게 된다.
배설의 결과물은 아무런 가치를 가지지 않지만, 배설이란 행위 자체는 중요한 행위다.
창작과 표현도 내게 있는 것을 밀어내고 정리하는 행위이다.
창작은 승화시킨다는 의미에서 '상승'의 이미지인 반면, 배설은 하강의 이미지라는 차이가 있다.
내가 만들어내는 것과 내 배설물의 공통점이라니 절대로 달갑지 않고 생각하고 싶지 않다.
그렇지만 희한하게도 그런 생각을 하자 조금은 편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내 그림과 글을 누가 좋아해 주지 않았다고 해서 슬프지 않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싼 똥이 나인가? 그렇지 않다.
내가 만들어내는 것들 또한 나라고 할 수는 없다.
나의 '전부 같은 일부'가 될 수 있을 뿐이다.
필요 이상의 애착을 갖는 게 나로 하여금 창작을 어렵게 만든다.
창작은 배설보다는 출산에 더 많이 빗대어 표현된다.
나 역시 창작이 출산에 더 가까운 행위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지금 내 수준에서는 창작이 출산이 아니라 배설에 가까워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빈도수에서도 그렇다. 훨씬 더 잦아야 한다.
대단치 않은 것들을 만들겠다는 결심이 창작에 오히려 용기를 주는 것 같다.
영화 '미쓰 홍당무'를 만든 이경미 감독도 쓰레기를 쓰겠다 생각하니 글을 쓸 수 있었다고 한다.
힘을 빼는 것.
뭔가를 만들어내면서 살고 싶은 사람이라면 자신의 창작물을 자신과 동일시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내 그림과 내 글을 나와 동일시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지나버린 것을 붙잡고 늘어지며 안타까워하지 말고 새로운 것을 계속 만들어내야 한다.
*아모르파티(Amor Fati)로 가는 열여섯 번째 마음가짐
힘을 빼자. 내 창작물은 내가 아니다. 창작물을 나와 동일시하지 말고 그냥 계속 만들자.
저의 글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D
글쓴이/그린이 : 기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