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야말로 어깨를 펼 시간입니다.
인생도처유상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유홍준
자기 연민과 자기 비하 클럽이 있다면 나는 그곳의 오래된 멤버일 거다.
그로 인한 열등감과 자격지심의 독소가 몸에 퍼진 지 한참 됐으니 말이다.
'인사이드 아웃' 같은 영화를 보면서 내 어린 시절이 가여워서 가끔 운다.
약하고 사회성이 또래보다 부족해서 힘들었던 어린 날의 기억,
어려서, 뭘 몰라서 그 누구도 단죄하지 못하고 나만 혼자 끌어안고 있을 안 좋은 기억들이다.
내게 그런 기억들을 준 사람들은 기억을 하지 못할 것이다.
학창 시절에는 일정 등수까지 내려가지만 않으면 그렇게 속상하지는 않았다.
(지금도 가끔 고3 올라가는 꿈을 꾸는 걸 봐서는 스트레스가 내 생각 이상이었던 것 같기는 하다.)
그때는 친구들과 못 섞이는 게 가장 큰 걱정거리였고, 중학교 때 같은 반이었던 애를 고등학교에서 다시 만나는 게 걱정이었다.
고 3 때는 미대입시를 해보겠다고 공부를 놔버렸다.
막상 미술학원에 가보니 내가 그림을 학원 애들보다 못 그려서 자격지심을 느꼈다.
서울에 있는 3곳의 미대에서 낙방 후 재수를 했다.
재수를 한 수능 시험을 망쳤지만(망쳤다고 생각했지만 지금은 그게 실력일 거라 생각한다.)
삼수를 하고 싶은 마음이 추호도 없어서 결국 서울에 있는 여대 중 한 곳에 어렵사리 입학했다.
처음엔 거기라도 가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던 것도 잠시, 우리나라에서 가장 유명한 여대가 아닌 서울 끝에 있는 여대를 다니는 게 내 자격지심이 되었다.
졸업 후엔 내 선택으로 작은 디자인 에이전시에서 일을 했는데 그야말로 심한 박봉이 또 내 자격지심이 됐다.
항상 등 떠밀려 선택한 적 없이 내가 선택을 했으면서도 그 선택으로 인한 안 좋은 면만을 생각하며 열등감에 휩싸였다.
생각해 보면 항상 친구들을 의식하며 스스로 불행을 자초하는 거였다.
친구들은 유명 여대를 다니는데 난 뭐지.
친구들은 대기업을 들어가서 초봉 얼마라는데 난 어떡하지.
욕심이었다. 하고 싶은 것도 하면서 좋은 것도 다 가지고 싶은 욕심.
나의 현실이 친구들과 나의 역량의 차이이며, 고민 끝에 내린 내 선택의 결과인 걸 받아들이지 못하는 데서 오는 불행이었다.
나보다 늘 조금이라도 배울 게 있고 공부를 더 잘하는 친구들과 어울렸던 내게 친구들과의 비교는 내 마음을 힘들게 들볶을 뿐이었다.
생각해 보니 학교 다닐 땐 친구들과 못 어울릴까 봐 걱정이었던 내가 어느새 친구들을 앞지르기는커녕 뒤쳐진단 생각에 불행해졌었다는 게 서글프다.
따져보면 살면서 내가 가장 뛰어났던 적은 딱히 별로 없었다.
학교를 다닐 때도 반에서 1등을 해본 적도 없다.
나보다 나은 모습을 보여주는 사람들을 보는 게 왜 내게 슬픔을 주는 걸까.
누군가를 앞서는 것에서 나의 효용가치를 느꼈기 때문이 아닐까.
내가 뭐라도 앞서고 있다는 착각이 내게 뒤쳐짐의 절망을 주는 게 아니었을까.
뒤쳐짐 역시 사실 나의 조급함과 불안이 만들어낸 실체 없는 감정일 것이다.
요즘 나는 그림을 안 그린다.
나보다 잘 그리는 사람이 쌔고 쌨고 내 그림은 인기가 없구나 라는 생각이 들어서다.
누군가를 앞지르려고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건 아니었는데 요즘은 부쩍 그림이 어렵게 느껴진다.
처음 시작은 그렇지 않았는데 내가 경주하듯 경쟁하듯 그림을 대하게 된 걸까.
오늘에서 내일로 이어지는 게 당연한 게 아닐 수도 있음을 알게 된 지금,
이제 하루하루를 후회나 괴로움으로 채우고 싶지 않다.
키가 작은 것도 아닌데 언제까지 어깨를 수그리고 살 건지 나에게 물었다.
나는 이렇게 살다가는 끝내 어깨를 펴지 못한 채 노인이 될 거 같았다.
인생도처 유상수.
내 주변인들이 나보다 상수(上手)인 거다. 내가 제일 잘 나가... 지 않아도 좋다.
뒤쳐진다는 생각은 언제 어디를 가더라도 느낄 수 있다.
*아모르파티(Amor Fati)로 가는 열네 번째 마음가짐
인생도처유상수다. 내가 제일 잘 나가야 하나? 애초에 그런 적 없었다. 근거도 실체도 없는 믿음 때문에 괴로워할 필요가 없다. 어깨를 펴자.
저의 글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D
글쓴이/그린이 : 기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