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름에서 유발되는 알레르기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다.'
이건 돈이 왔다 갔다 하는 모든 곳에 통용되는 아주 당연한 속성이다.
그리고 덕질의 속성이기도 하다. 나 역시 그렇게 덕질을 해왔다.
실망감을 준 연예인을 떠나는 팬들이 있는 건 당연하다.
전에 내가 좋아하는 배우가 잘못을 저질렀지만 기다리고 있다는 공감 사기 어려운 글을 올린 적이 있다.
당연하게도 이제 그의 팬 페이지는 전처럼 많은 사람들이 드나들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아직 사람들이 남아 있는데, 문득 우린 왜 여기 모여서 누가 시키지도 않은 힘든 덕질을 사서 하고 있을까 생각이 들어서 짠했다.
떡밥 없어지면 서서히 발길 끊는 게 덕후이기 마련인데, 있지도 않은 떡밥 앞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활발히 활동하는 멋진 연예인이 세상에 많고도 많은데 왜 우린...
그런 생각을 하다가 여전히 공개되어 있는 그의 인스타그램을 구경했다.
그동안 지워진 것들도 있겠지만 장장 12년 치에 달하는 900여 개의 게시물이었다.
솔직히 그가 쓴 모든 글들을 아직 모두 정독하진 못했지만, 사진과 영상들 위주로 그의 시간들을 앨범 보듯 들여다봤다.
술과 담배, 붉어진 얼굴, 고양이들...
흥청망청 사는 것처럼 보이는 순간들도 있지만, 누구보다 요즘 말로 뇌에 힘을 빡 주고 사는 사람이라 생각했다.
어울리는 사람들도 많고 사람들에게 애정을 드러내길 주저 않는 모습이 특히 많이 보였다.
성별을 떠나 사람을 참 사랑하고 잘 표현하는 사람이구나.
그리고 솔직하다. 이렇게까지 솔직하지 않아도 좋지 않을까 싶게 솔직했다.
사람에 대한 리스펙도 분명하고 그 어떤 남자 배우와 견주어도 색깔이 뚜렷한 배우다.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다.'
달면 팔로우, 쓰면 언팔로우.
그동안 왜 내가 그의 인스타 팔로잉과 언팔로우를 반복했는지 알 것 같았다.
나는 그를 알기가 두려웠던 것 같다. 환상을 박살 내줘서. 조금 버거웠었다.
물론 내가 그를 조금 들여봤기로서니 그를 다 알게 될 수 없지만.
스스럼없이 자기를 공개하는 사람이 내게 유발하는 일종의 알레르기도 있었다.
옳다, 그르다를 떠나서 자유를 추구하고, 사랑을 지상 최대의 가치로 여기는 듯한 그의 모습은 나와 완전 정반대의 지점에 있는 사람이나 다름없었다.
유행가를 비켜간 그의 플레이리스트와 일반적인 아름다움에서 비켜선 전시 작품들,
그리고 예상 밖의 그의 많은 사진들...
그는 내가 그에게서 기대하지 않은 걸 내미는 연예인이었다.
내가 기대한 건 소년미와 퇴폐미가 공존하는 그의 잘생긴 얼굴을 유감없이 드러내는 일명 '느좋 사진들'인데 그는 내 기준에서 그런 걸 박하게 주는 편이었다.
으레 톱 연예인들이 그러하듯이 일하는 멋진 모습, 자연스럽지만 멋진 일상 사진을 바랐다.
그는 그런 걸 가면이라 부르는지 모르겠지만, 난 그에게서 정확히 그런 걸 원했다.
(물론 그런 사진들도 당연히 꽤 많긴 했다.)
드라마 속에서, 영화 속에서 봤던 모습의 연장선으로 그를 보고 싶었던 것 같다.
요컨대 그는 생생한 4D인데 나는 그를 입체감 없는 2D로 보고 싶어 했던 거였다.
눈앞에서 실존하는 그를 직접 봐놓고도 2D의 모습을 바랐다.
새 피드가 올라오지 않은 지 오래된 그의 인스타를 보다 보니
비로소 역할이 아닌 그라는 사람이 보였다.
관종도 어그로도 꾸며내기도 아니었다.
그냥 이건 '그'의 단편들이구나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내가 보였다. 사람에 대한 믿음도 사랑도 부족한 내가 생각나 버렸다.
그동안 나와 다른 종류의 사람들을 회피해 와서 그들을 통해서도 나를 들여다볼 수 있다는 걸 몰랐다.
나와 다름에 대한 미지의 불안과 알레르기를 느껴왔던 게 편협했다고 생각했다.
지금도 그를 알 수 없는 건 여전히 똑같지만, 이젠 그를 버겁게 느끼지 않는다.
그의 공백기를 기다리며 달든 쓰든 삼키고 있다.(이제 단 것은 남아있지 않지만)
이젠 그가 4D라는 사실을, 배우이면서 사람인 그를 그냥 자연스럽게 생각할 수 있다.
그래서 넌 무슨 얘기가 듣고 싶어서 이런 글을 썼는데?라고 하면 딱히 할 말이 없다.
이런 글을 누가 봐줄까? 도 싶다.
그냥 내게 찾아온 생각을 표현하는 것이라는 말 밖에 할 수 없다.
언제 휘발될지 모르는 생각이지만 지금은 그런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지금 그의 잘못을 감싸는 거야?라고 하면 답은 아니요다.
그냥 기다리게 된다. 유아인을.
엄홍식도, 유아인도 건강하기를. 그리고 다시 돌아오기를...
이런 마음이 드는 건 지금 나에겐 불가항력이다.
*아모르파티(Amor Fati)로 가는 스물아홉 번째 마음가짐
나와 굉장히 다른 사람이 내 거울이 되어주는 뜻밖의 경우가 있다. 편협하면 볼 수 있는 게 적어진다.
저의 글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D
글쓴이 : 기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