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변찮음에도 용기는 필요하다

남들 눈보다 내 눈에 내가 짜치는지 아닌지가 더 중요하다.

by 기역

이제 3년 6개월이다.

주 5일간 서울로 일하러 가는 삶을 그만둔 지.

감사하게도 나를 고용해 주었으나, 후반부엔 제발 헤어지고 싶었던 회사를 나온 지.


시간 맞춰 억지로 몸을 밀어 넣고 가족보다 더 자주 봐야만 하는 사람들을 만나

집에 돌아오면 오늘은 누가 꼴 보기 싫었는지 매일같이 생각했다.

생각만으로는 부족해서 말로도 했다.

주말만을 기다리며 평일을 빠르게 삭제해 나가는 생활이었다.

거슬리지 않는 날이 거의 없었다.

'원래 그런 거지 뭐. 다들 그냥 견디는 거지. 누가 하고 싶어서 하나? 어쩔 수 없이 다 참는 거야.'

라고들 말했다. 맞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사회생활, 회사생활...

그걸 못 견디는 건 부적응일 수도 있다.

회사를 나가서 회사 다닐 때보다 많은 돈을 벌고 있는 거 맞지?라고 물어온다면 전혀 아니다.

그때도 못 번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훨씬 못 벌고, 안 번다.

돈은 1/10로 줄었을지라도 마음만은 편하다. 숨이 쉬어진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잘 모르는 사람들에겐 내 이야기를 하기가 싫었다.

회사를 안 다니고 내가 하는 일이 뭔지 말하는 게.

돈 없는 걸 들키는 기분이라 떳떳하지가 못해져서 숨기고 싶어졌다.

그 이유가 무엇인지 나도 정체를 알려고 들지 않은 채 그냥 숨고 싶었다.

그래서 한동안은 사람들을 잘 만나지 않았다.


돈을 안 벌고 못 벌고 있다는 건 내 선택이었음에도 말하긴 싫었다.

가만 생각해 보니 변변찮은 현재의 내 상태를 인정 못해서였던 것 같다.

내가 지금 딱히 증명할 게 없다는 것이 나를 괴롭혔다.

내가 직장생활로 내 시간과 돈을 바꾸지 않는 것은 내겐 자유였지만,

다른 사람들 앞에서 날 작아지게 했다.


왜일까? 짜치게 보이는 게 싫어서다.

되게 대단한 사람처럼 보이고 싶은 건 아닌데 돈이 없으면 사람 우스워지는 거 금방이니까.

이 나이에 파트타임으로 일하면서 그림 그리고 글 쓰는 사람?

짜치게 보일 게 뻔해.

내가 짜친다고 해도 막상 남들한테 짜치게 보이고 싶지만은 않았던 거다.

사람들은 내게 짜친다고 하지 않았지만 그런 생각을 할 기회조차 주기 싫었던 거다.

그리고 설령 남들이 그렇게 보든 말든 내가 신경 쓰지 않을 수 있는 자존감이 없어서다.

멋지다고 해주는 사람도 있었지만 그런 말 듣는 것도 싫었다. 내 생각엔 안 멋지니까.

이렇게 지금은 미약한 상태라는 걸 사실 별로 알려주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약점이라고 생각하니까.


미처 몰랐지만 변변찮음도 용기가 필요하다.

타인의 눈에 어떻게 보일지 관심 두지 않을 수 있는 용기.

아니 그전에 사실은 내가 나를 긍정하는 용기가 필요하다.

내가 짜친다고 해도 나를 사랑할 용기.

아무리 짜쳐도 나는 날 못 걸러. 나는 날 못 버려.

그리고 난 짜치지 않아. 짜치게 살고 있지도 않고.

돈 때문에 스스로를 짜치게 생각하지 마.

그리고 스스로가 짜치게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게 열심히 해.

지금 나에겐 용기와 끈기가 필요하다.


그리고 이 글도 용기가 필요했다.

내가 이렇게나 못나고 바보 같은 생각을 하고 있던 사람인 걸 드러낼 용기.

인생을 좀 알 듯 싶다가도 아직도 한참 멀었다 싶은 나를 어김없이 발견한다.


*아모르파티(Amor Fati)로 가는 스물일곱 번째 마음가짐

나의 변변찮음을 구박하지 말고 끌어안자. 그리고 남들 눈보다 내 눈에 짜치지 않을 사람이 되는 것이 더 중요하다.


저의 글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D


글쓴이 : 기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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