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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 파업을 보고 떠오른 생각

일상으로의 초대

by 평범한 직장인
일상으로의 초대는 그때그때 생각을 적어보는 글입니다. 특별한 체계도 없고 형식도 없고 발행 주기도 없습니다. 분량도 제멋대로이고 다소 완성도가 떨어질 수 있지만, 정돈되지 않았더라도 날것의 저를 표현해 보고 싶은 마음에 시작해봅니다.

전공의들의 파업이 진정되는 와중에 의사 국가고시의 공정성에 대한 의문까지 제기되고 있습니다. 떠도는 소문이 사실인지는 저로서는 알 길이 없습니다. 하지만 의사 라이선스 문제를 보다 보니 미국 기술사 라이선스 보유자로서 예전부터 생각하던 한국 라이선스 제도의 문제점이 다시 떠오르게 되었습니다.




기술사 취득 과정에서 느낀 미국 라이선스와 한국 라이선스에는 크게 두 가지 차이점이 있었습니다. 우선 한국 라이선스 시험은 정말 더럽게 어렵습니다. 한국 기술사는 정해진 전체 내용을 암기하여 몇 개 안 되는 문제를 보고 줄줄이 써 내려가야 하는 반면, 미국 기술사의 경우 광범위한 범위에 오픈 북 형식으로 문제를 보고 빠르게 해당 공식을 찾는 것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습니다. 한국 기술사는 암기력이 정말 좋지 않은 저에게는 최악의 형식일 뿐만 아니라 합격률 역시 매우 낮은 매우 어려운 시험입니다. 상대적으로 쉬운 미국 기술사를 많이 떨어지는 사람을 보면 한국 방식에 익숙해져 모든 지식을 습득하려 하다가 망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제가 미국 기술사를 볼 때는 문제를 푼다기보다 찾아서 공식에 대입한다는 느낌으로 시험을 봐서 합격했습니다.


두 번째 차이로는 한국 기술사는 한번 취득하면 평생 자격이 유지되지만, 미국은 어떤 라이선스나 자격증도 갱신을 해야 한다는 점이 있습니다. 미국 기술사를 주에 등록한 후에는 2년 단위로 갱신을 해야 합니다. 가지고 있는 또 다른 국제 자격증도 역시 3년 마나 갱신을 해야 합니다. 갱신을 위해서는 그간 활동을 했다는 내용을 적어야 하고, 또 다른 자격증은 일정 교육을 이수해야 합니다. 약간의 돈도 부담해야 합니다. 갱신 자체가 어렵지는 않고 설사 허위로 작성했다 해도 Audit에 걸리지만 않으면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Audit은 랜덤 하게 몇몇 사람에게만 진행하는 것으로 알고 있고, 지금까지 Audit을 받아본 적은 한 번도 없었습니다.


대신 부정이 적발되면 상당한 페널티가 적용됩니다. 제가 기술사 시험을 볼 때 학력 인증 절차가 매우 까다로웠는데, 들어보니 한국 응시생들이 단체로 부정을 저지른 후 더 복잡해졌다고 합니다. Audit을 많이 하지 않는 만큼 한 건이 걸리면 전부가 문제라고 가정하고 광범위하게 조사를 하게 되고, 해당 부정을 방지하기 위해 긴 시간 논의하여 시스템을 바꿔버립니다. 부정에 대한 책임 역시 평생 자격 취득 금지가 될 정도로 강력합니다. 낮은 비율을 체크하는데 걸렸다는 것은 엄청나게 많은 부정이 있을 수 있다는 의미가 되고, 걸린 사람 역시 재수 없게 걸린 것이 아니고 그간 많은 부정을 저질렀을 수도 있으리라는 시각으로 판단하는 것 같습니다. 걸릴 확률이 낮은 만큼 큰 리스크를 가져가게 하는 방식으로 부정을 막는 형태입니다.




확실히 우리나라의 대부분의 제도는 어렵게 통과를 하면 모든 것이 끝나는 느낌입니다. 대학 역시 입학은 어렵지만 졸업은 쉽고, 사법시험에 합격하면 평생 취소되지 않는 여러 좋은 자격증을 한꺼번에 소지할 수 있습니다. 웬만한 사건으로도 자격이 정지되는 일은 드물고, 시험 부정이 의심되더라도 확증이 없으면 흐지부지 넘어가게 됩니다. 특히 의심되는 사람이 힘이 있을 경우에는 더하고요. 그러고 보면 한번 합격하면 평생 유지되는 우리나라 제도는 기득권을 공고히 하는데 기여하는 방식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어느 나라 제도가 더 좋은가는 이견이 있을 수 있습니다. 미국의 제도가 좋은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허점도 많아 보입니다. 소수의 Audit 역시 부정을 완전하게 막을 수는 없으며, 힘의 논리가 완전히 배제된 채로 공정한지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도입할만한 좋은 제도들이 보이는데 특히 자격 박탈에 대한 규정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기술사를 가진 사람이 감리 부정을 저지를 경우 부실 공사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사람의 목숨을 다루는 의사 라이선스를 가진 사람은 아무리 어려운 시험을 통과했다 해도 크게 문제가 있을 경우에는 더 이상 치료를 못하게 하는 것이 맞는 것 같습니다. 한국의 라이선스는 어려운 만큼 권위를 인정받고 있는데, 더 제대로 된 권위를 가져가려면 사후 자격 관리도 필요해 보입니다.


이번 전공의들의 국가고시 거부 사태는 명백히 제도에 대한 도전이라고 보입니다. 특히 전권을 위임한 단체와 합의를 완료했음에도 거부를 하는 행위는 민주주의 절차를 무시하는 심각한 문제라고 생각하며, 이런 행위를 했음에도 그들의 역할 때문에 봐주려는 상황이 된 것은 제도와 절차의 문제도 한몫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들이 이런 행동을 했음에도 적절한 제재 수단이 없으니 말입니다. 이런 상황을 겪은 후에는 단체 시험 거부 행위를 할 경우 평생 시험 응시를 제한하는 등의 제도를 만들면 이런 상황은 막을 수 있을 것입니다. 이번 사태는 다소 희생이 따르더라도 타협이 없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다른 모든 시험을 보는 학생들이 시험 거부를 하다가 자격을 획득하지 못하게 되면 의사와 다른 대우를 한다고 들고일어날 테니 말입니다. 그리고 소문으로 도는 그들의 부정행위가 혹시라도 사실로 드러날 경우, 정말 큰 대가를 치르는 한이 있더라도 바로잡았으면 좋겠습니다. 어쩔 수 없이 타협을 하게 되더라도 이런 유사한 사태가 발생할 수 없도록 제도를 보완하는 것만큼은 꼭 이루어졌으면 좋겠습니다.




예전 민주화 투쟁 이후에 대학생들의 거센 투쟁을 보는 것은 처음인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런 투쟁을 시작한 사람들이 우리 사회에 기득권으로 인식되는 의사라는 점은 참 아이러니합니다. 진정한 귀족 노조의 탄생일까요? 하지만 우리나라의 운동권이 몰락하게 된 가장 큰 요인아 사람들의 지지를 받지 못하였기 때문이라는 점은 알아두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과정이 그간 너무 썩어서 손쓰지 못했던 사회의 환부를 치료하기 위한 고통이길 바랍니다.


어린 시절 우화나 동화를 보면 많은 시련을 겪다가 해소되고 결국 행복하게 잘 살았다는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 결론에 익숙해져서인지 우리는 대입 시험, 취직 시험, 국가고시, 사법 시험과 같은 큰 시련을 통과하고 나면 모든 것이 끝났다는 느낌을 받기 쉽습니다. 정작 생각보다 계속 밀려오는 시련과 현실에 불만을 가지게 되죠. 어떻게 보면 진정한 삶은 해피엔딩 이후가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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