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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티즌이라는 이름의 살인마

510 익명 뒤에 숨은 악마

by 평범한 직장인
bca39b72855cf301.jpg 20년 전 네티즌 예측

인터넷 시대가 시작되고 뉴스나 기사에 고정적으로 들어가는 멘트가 생겼습니다. 요새는 조금 덜해진 듯 하지만 "이에 대해 네티즌들은...", "이에 대해 누리꾼들은..."과 같은 내용을 말미에 붙이는 것이 아예 관례가 되어버린 것입니다. 댓글이 기사에 언급되기 시작하면서 민의가 반영되는 듯하지만 수많은 댓글의 대표성을 띄는 댓글을 찾기보다는 기자가 무작위로 선정하여 올리는 느낌이 강하여 그 효과가 얼마나 있는지는 의문입니다.




국민일보 발췌

하지만 효과여부를 떠나서 이것은 큰 변화입니다. 과거 유명 정치인과 셀럽들의 소식을 전달하고 의견을 공유할 수 있는 사람은 기자나 언론인에 한정되어 있었지만, 이제는 모든 가사마다 모든 사람들이 자신의 의견을 낼 수 있게 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네티즌 수사대가 되어 각종 잘못한 사람을 조사하여 다양한 수단으로 처벌을 하기도 합니다. 댓글 문화 초기에 공공장소에서 잘못한 행동을 하는 사람을 찍어서 소위 "XX녀"라고 낙인찍고 뒷조사를 하여 괴롭히는 일이 자주 발생하였습니다. 실제로 이런 영향으로 공인이 아닌 사람도 매장당할 수 있다는 인식이 생겨서 공공장소에서 행위를 더욱 조심하게 되는 계기가 되기도 하였죠.


하지만 사람들의 자발적인 인민재판*은 큰 위험이 있습니다. 잘못된 정보를 기반으로 우르르 달려가서 매질을 하였지만 사실이 아닌 경우로 밝혀지는 경우가 자주 발생합니다. 그 경우 그에 대한 책임을 지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익명의 네티즌들은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고 계속해서 새로운 제물을 찾아다니며 재판을 반복합니다. 실제로 잘못을 했는지 애매한 사람에게도 우선 욕을 박고 봅니다. 특히 모든 생활이 중계되는 연예인에 대해서 과도한 비난이 쏟아집니다. 이로 인해 자살을 한 연예인도 지속적으로 생기고 있습니다. 명백히 그 연예인들의 자살은 익명의 네티즌 때문이라고 할 수 있으며, 악플을 단 모두가 공동의 책임을 가지고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누구도 처벌을 받지는 않으며, 오히려 고인에 대한 망언을 쏟아내는 일도 빈번합니다.


죄송한 한국 유튜버 사과영상 모음 2021 [촌철살인 채널]

게다가 실제로 잘못을 한 사람이 있다 하더라도 이들이 공격하는 잣대가 뚜렷한 것도 아닙니다. 같은 내용으로 물의를 일으킨 연예인들은 항상 복귀에 대해서도 사람에 따라 다른 판결을 내리고, 작품이 뜨면 어느새 악플이 사라지기도 합니다. 구설수에 오른 유튜버들은 6개월 후**면 어김없이 컴백을 함에도 열렬히 지지를 받는 경우도 많이 봅니다. 누군가가 댓글에 대해 논리적으로 따져 물어 대답이 곤란해지는 경우 "그냥 쓴 댓글일 뿐인데 과하게 말꼬리를 잡는다.", "나는 공인이 아니지 않나"라는 식으로 얼버무리며 책임지지 못할 말을 뱉어냅니다. 일기장에나 혼자 써야 할 글들이 인터넷을 타고 돌아다니는데 실제로 사회에 악영향을 끼치고 있는 것이 큰 문제입니다. 잘못을 한 사람의 인권을 무시하며 험한 말을 뱉는 사람들에게 잘못이 없다고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유튜브 알고리즘 실험 [국민일보]

이러한 댓글은 정치인들에게도 영향을 줍니다. 다수의 국민들의 분노와 여론을 실시간으로 체험하는 정치인들이 더욱 바람직한 방향으로 갈 수 있겠다는 기대를 가져볼 수 있지만, 지금 현재까지의 결론은 그렇게 낙관적이지 않아 보입니다. 각자 다른 가치관을 가진 사람들이 각자 다르게 말을 쏟아내게 되다 보니 어떤 행동을 해도 잘못했다는 파와 잘했다는 파가 나누어지기 때문입니다. 정치인이 말도 안 되는 부정을 저질러도 그를 지지하는 사람이 항상 존재하고 있고, 아무리 잘한 평가를 받을 일이라도 비난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렇게 갈려진 의견은 결국 팬덤을 형성하게 되었으며, 자신의 진영과 다른 의견을 더 듣지 않게 돼버렸습니다. 각종 인터넷 커뮤니티는 성향에 맞는 사람들끼리 모여서 자신들의 세계를 강화시키게 되었으며, 유튜브는 그들이 보고 싶어 하는 영상만을 추천해 줍니다. 좋게 말하면 다원주의의 흐름이라고 포장할 수 있겠지만, 다른 사람의 의견을 더 이상 듣지 않는 배타주의가 사실상 맞습니다. 인터넷의 발달이 아이러니하게 소통을 더욱 막는 흐름을 만들어 버린 것입니다. 민주주의에 중요한 원칙인 대화와 타협은 더욱 어려운 사회가 되었으며, 분열된 사회는 키보드 워리어만 양산할 뿐, 더 이상 사회의 불의에 맞서기 힘든 환경이 조성되고 있습니다.




* 인민재판 : 북한의 공개재판 제도이지만, 넷상에서 의미가 변질되어 각종 SNS나 게시판에서 행해지는 불특정다수가 소수를 괴롭히는 행위를 뜻하기도 한다.


**유튜브 6개월 법칙 : 유튜브에서 문제를 일으키거나, 사회적으로 논란이 된 유튜버들이 사죄와 반성을 한다며 자숙을 하지만 그 기간이 유튜브 정책으로 수익창출이 끊기는 시점인 6개월을 못 넘기고 다시 복귀한다는 법칙을 말한다. [출처 : 나무위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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