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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0살 일기 14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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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평범한 직장인 Jul 27. 2024

우주와 나

나와 우주

그러고 보니 아직 하지 않은 이야기가 있다. 시기가 한참 지났지만 태명에 대해 언급을 해보고 싶다. 아기가 생기고 태명을 뭘로 할지에 대해 한 5초쯤 고민하다 "우주"라고 답을 했다. 그렇게 우리 아기는 10개월간 우주로 불리었다.




어린 시절 나는 어려서 많이 모른다고 생각했다. "넌 아직도 모르고 있는 일이 더 많다고" (서태지와 아이들, 너에게)라는 가사처럼 내가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직 내가 모르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알고 싶었다. 그래서 어린 시절 책을 좋아했던 것 같다. 답이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책의 표지에는 항상 모든 진리가 나와있는 듯했고, 나는 언제나 기대감에 가득 차서 페이지를 넘기기 시작했다. 그런데 어떤 책에도 나오지는 않았다. 내가 알고 싶은 "우리는 어디에서 왔는가? 우리는 누구인가?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에 대해서 말이다.


저렇게 쓰니까 어마어마하게 대단한 생각을 한 것 같은데 그렇지 않다. 정말 어린 시절 심심해서 생각한 거다. 이후에는 바빠졌다. 입시를 준비해야 했고, 대학에 들어가서는 놀기에 바빴다. 때가 지나 취업을 하고 회사 생활이 안정되기 시작하자 "흐르는 강물을 거꾸로 거슬러 올라가는 연어들처럼" (강산에, 연어 어쩌고) 어릴 적 하던 생각을 하게 되었다. 답을 찾기 위해 처음에는 철학에, 요즘에는 과학에 집중하고 있다. 그리고 "내가 진짜로 원하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는 우주와 나에 대해 알고 싶었다.




나의 분신과 같은 녀석이기에 우주라고 태명을 짓게 되었다. 우주를 알아야 나도 알 수 있다. 그래도 우주는 좀 쉽다. 실제로는 쉽지 않고, 내가 모르는 내용이 대부분이지만, 그래도 설명할 이론이 있다. 그 이론이 아직은 완전하지 않을지라도 언젠가 완전해질 수도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아직까지 어떤 이론도 나는 설명하지 못한다. 아니, 설명은 하고 싶지만 쉽게 납득이 가지 않는다. 어마어마하게 많은 우연이 겹치면 이런 존재가 생길 수 있다는 것은 이해가 가지만, 모르겠다. 우리가 기적이라고 불리는 일이 셀 수 없을 만큼 반복될 수 있을 정도로 많은 반응이 일어나 생겼다고 설명하지만, 왜 이런 존재가, 이렇게 움직이고, 왜 이런 생각을 하는지는 전혀 모르겠다. 하지만 일단 과학에서는 당장 마음에 드는 설명이 있다. 우주와의 만남은 기적과 같은 일이라는 것 말이다.




아기를 키우다 보니 참 사람이 다를 게 없다는 생각이 든다. 매일 아침 출근 셔틀 타는 곳 앞에서 예수를 믿으라고 중얼거리는 아저씨도, 지하철 임산부석에 얌체같이 앉아있는 아주머니도, 눈부시게 예쁜 연예인도, 세계 정복의 야망을 가지고 온갖 비열한 짓을 다하는 것 같은 정치인도, 젊은 나이에 어마어마한 부를 이룬 기업가도 다 비슷한 아기였을 거라는 생각이 드니 감정이 얕아진다. 특히 취미로 우주라는 거대한 분야에 빠져있는 나로서는 먼지보다도 작은 존재들의 세세한 내용에 대한 감정이 더 얕아지는 느낌이다. 하지만 그 얕아지는 감정이 나쁘지만은 않다. 오히려 세상이 아름답게 느껴진다. 기적적으로 탄생한 이 모든 사람들이 사는 세상이 말이다.


* 폴 고갱의 그림 제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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