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두 F&B
丞相祠堂何處尋 승상의 사당을 어디 가 찾으리오
錦官城外柏森森 금관성 밖 잣나무 빽빽한 숲 속에 있지요
映階碧草自春色 버텅에 비친 푸른 풀은 봄빛이 되었고
隔葉黃鸝空好音 잎을 사이한 꾀꼬리는 속절없이 좋은 소리로다
三顧頻煩天下計 세 번 돌아봄을 번거롭게 한 것은 천하를 위한 계책이었고
兩朝開濟老臣心 두 왕조를 열고 구제하렴은 늙은 신하의 충성심이었죠
出師未捷身先死 군사를 내어 이기지 못하고 몸이 먼저 죽으니
長使英雄淚滿襟 길이 영웅들로 하여금 눈물이 옷깃을 젖게 합니다.
<杜諺·六. 蜀相>
출처 : 김갑기. (2004). 모현 모티브- 찬기파랑가와 촉상을 중심으로. 한국사상과 문화, 25, 7-32.
촉상, 즉 촉나라의 승상이었던 제갈량은 뛰어난 영웅이었지만 비극적인 인물이었다. 두보 역시 고초가 많은 삶을 살았다. 그는 그래서 제갈량을 남달리 흠모했다고 한다. 제갈량에 대한 시를 열세 편이나 남겼다.
출처 : 이건용, "[이건용의 내 인생의 책](1) 두시언해·두시언해비주 - 내 음악세계 바탕 된 '두보의 시'", 경향신문, 2014.06.22, https://www.google.com/amp/s/www.khan.co.kr/article/201406222151385/amp
먼저 짚어볼 부분은 만두의 시작과 유래다. 한국인과 중국인, 일본인 대부분은 만두가 삼국지에 나오는 촉나라 승상 제갈공명이 발명한 것으로 알고 있다. 제갈공명이 남만을 정벌하고 돌아올 때 남만 포로의 목숨을 구하려고 하늘까지 속여가며 만든 음식이라는 것이다.
근거는 정식 명칭이 '삼국지통속연의'인 소설 삼국지에 나오는 내용이 그 바탕이다. 대부분 아는 내용일 것이니 간략하게 요약하면 폭풍우를 잠재우기 위해 49명의 사람 머리를 강물에 던져 제사를 지내야 했는데 무고한 사람을 희생시킬 수 없어 대신 밀가루를 사람 머리 모양으로 반죽해 바쳤더니 강물이 잔잔해졌다는 것이다. 만두를 둥글게 빚는 이유이고, 만두라는 이름 또한 제물로 바쳐질 뻔했던 남만<南蠻>인의 머리에서 유래해 만두<饅頭>가 됐다는 것이다.
만두가 생겨난 유래인데 과연 사실일까? 나관중이 쓴 삼국지는 소설일 뿐이다. 소설이나 드라마는 허구일 뿐 역사적인 사실과 반드시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제갈공명의 만두 발명설 역시 삼국지 저자인 나관중의 창작일 뿐인데, 물론 나름 근거는 있다. 삼국지가 쓰여지기 약 200년 전의 송나라 때 고승이 쓴 '사물기원'이라는 책에 근거가 나온다.
패관소설에 만두는 삼국 촉나라의 제갈공명이 남쪽 오랑캐의 머리를 대신해 만들었다는 내용이 있다고 적혀 있다. 패관소설은 민간에 떠도는 이야기를 모아서 엮은 책이다. 송나라 때 민간에서 구전으로 떠도는 이야기를 나관중이 끌어다 삼국지에 썼던 것인데 마치 역사적 사실인 것처럼 기정사실화됐다.
만두를 처음 만든 인물은 제갈공명이 아니다, 그렇다면 만두는 누가 언제 만들었을까? 원조 할머니도 아니고 만두 같은 음식을 누가 처음 개발해서 세상에 퍼뜨렸다고 보긴 어려울 것이다. 다만 중국에서 만두라는 이름의 음식이 처음 나온 것은 3세기 무렵이다.
삼국시대가 끝난 후 들어선 진나라 때 속석이라는 사람이 쓴 '병부<餠賦>'에 만두라는 음식 이름이 처음 보인다. 병부는 떡의 노래라는 뜻으로 여기에 음양이 교차하는 시절 만두를 차려놓고 연회를 열었다고 했다.
“봄의 시작은 음양이 교차하는 시절이다. 추운 기운은 벌써 사라졌고 따뜻해졌지만 아직 덥지는 않다. 이런 계절에 맞춰 잔치를 열고 만두를 빚는다.”
해석을 덧붙이자면 음의 기운인 겨울이 가고 양의 기운인 봄이 시작되는 날인 설날에 만두로 하늘에 제사를 지낸 후 음복으로 나눠 먹었다는 뜻이다. 언제부터 설날 만두를 빚었는지, 또 만두가 얼마나 귀한 음식이었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
이 무렵 만두 관련 역사 기록이 진서<晉書> ‘하증전’에도 나온다. 진나라 사람 하증은 엄청난 부자로 음식 사치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찐떡(蒸餠)을 먹을 때 윗부분이 열십(十)자로 갈라지지 않으면 아예 입에 대지 않았다고 한다.
여기서 찐떡이라고 옮긴 증병은 쌀가루가 아닌 밀가루를 찐 것으로 윗부분이 열십자로 갈라졌다는 것은 발효가 제대로 된 밀가루 떡이라는 의미다. 다시 말해 소를 넣지 않고 찐 만두, 이른바 중국식 만터우다. 참고로 하증은 삼국시대의 제갈공명이나 병부에서 만두를 노래했던 속석과 같은 시대 사람이다.
결론적으로 만두를 제갈공명이 발명하지는 않았지만 제갈공명이 살았던 3세기 무렵에 만두가 집중적으로 발달하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출처 : 윤남노, "만두의 역사…그 진실과 오해와 허풍", 한국외식신문, 2021.03.19, https://www.kfoodtimes.com/news/articleView.html?idxno=15287
촉상, 즉 촉나라의 승상이었던 제갈량은 뛰어난 영웅이었지만 비극적인 인물이었다. 패관소설에 만두는 삼국 촉나라의 제갈공명이 남쪽 오랑캐의 머리를 대신해 만들었다는 내용이 있다고 적혀 있다. 패관소설은 민간에 떠도는 이야기를 모아서 엮은 책이다. 송나라 때 민간에서 구전으로 떠도는 이야기를 나관중이 끌어다 삼국지에 썼던 것인데 마치 역사적 사실인 것처럼 기정사실화됐다.
네번째 격자틀 인식 모형, 영화2 11화 적벽대전 1부 거대한 전쟁의 시작 편에서 중국에서 삼국지연의를 바탕으로 헤리티지 미디어아트 갤러리를 하고자 한다고 적었다.
중국에서 삼국지연의를 바탕으로 헤리티지 미디어아트 갤러리와 만두 F&B를 하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