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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필요한 연 May 19. 2021

오리들 때문에 이렇게 울면, 나랑 헤어질 땐 어쩌려구요



/오리들이 사는 밤섬, 김승일


오리 보트 선착장에서 관리인 아저씨가 주의를 준다. 너무 멀리 가지 마세요. 돌아오기 힘드니까요.

  아저씨, 우리에 대해서 뭘 안다고 사서 걱정을 하시는 거죠? 페달 밟는 일이 힘들다는 건 우리도 이미 알고 있어요. 우리는 최대한 멀리 갈 거야. 돌아오기 힘들어도 괜찮습니다. 옛날에도 멀리 가봤거든요. 그때도 어떻게든 돌아왔어요.

  한강 뚝섬유원지에서 우리는 오리한테 밥을 주려고 강냉이도 한 아름 샀단 말이다. 오리 보트 위에서 밥을 뿌리면 오리들이 졸졸 따라올 거야. 우리가 탄 보트가 엄마 오리가 된단 뜻이지.

  그러나 아무리 돌아다녀도 오리는 한 마리도 보이질 않고, 우리는 페달에서 두 발을 뗀 채 한강 위를 지루하게 떠다닌다. 보트를 반납하기까지는 아직 삼십 분도 더 남았기에. 우리는 서로의 어깨를 빌려 삼십 분만 자려고 했던 것인데.

  찌뿌듯한 몸을 가누고 보니 한 떼의 오리들이 꽥꽥거리며 보트를 포위하고 있는 것이다. 일어나 봐, 여기 오리가 있어. 나는 너를 흔들어 깨우고. 저게 무슨 섬이죠? 저 섬에서 오리들이 날아오네요. 너는 아직 꿈을 꾸고 있는 듯하다.

  저기 저 다리는 서강대교군. 그러면 이 섬은 밤섬이겠네. 어떻게 여기까지 흘러왔는지 그것은 도무지 알 수 없지만, 지금 당장 뚝섬으로 돌아간대도 연체료를 내는 건 똑같으니까. 강냉이나 좀 뿌려볼래요? 엄마 오리가 될 수 있는 기회잖아요.

  오리들은 엉덩이를 씰룩거리며 정신없이 강냉이를 건져 먹는다. 이것 봐, 정말로 따라오잖아. 커다란 봉투 안에는 아직 강냉이가 많이 남았고, 우리들의 자식들은 자꾸 불어나.

  저건 청둥오리, 저건 비오리, 논병아리, 왜가리, 쟤는 갈매기. 종류도 점점 다양해진다. 이윽고 강냉이가 다 떨어져서, 아쉽지만 다음에 또 같이 놀자. 나는 손을 흔드는데.

  너희들은 아직도 엄마, 엄마 한다. 많이 먹었잖아, 이제 집에 가. 그러나 새들은 멈추지 않고. 바로 코앞까지 다가와서는, 아무것도 없는 수면에다가 하염없이 부리를 넣었다 뺀다.

  먹이를 더 달라는 거니? 너희는 구슬프게 울고 있지만 그게 정말 슬프다는 뜻인지, 우리로선 딱히 알 수가 없어. 여기서 헤어지면 영영 이별인 것을 어쩌면 새들도 눈치챈 걸까?

  웬만하면 뒤돌아보지 말아요. 쟤들이 우리를 따라오는 건 할 일이 없어서 그런 거니까. 죄책감을 느낄 필요는 없어. 그러나 너는 자꾸 뒤돌아본다.

  유난히 마음이 약하다는 게 자랑이라도 되는 것처럼. 너는 아주 몸을 돌리고 손바닥으로 눈을 가린다. 오리들 때문에 이렇게 울면, 나랑 헤어질 땐 어쩌려구요.

  선착장에 도착하면...... 우리는 각자의 가정으로 돌아가. 다시는 만나지 않기로 했다. 그것이 우리의 약속. 헤어지지 말자고 쫓아오는 새들 때문에 당신은 약속을 떠올린 것이 틀림없어. 그러나 이제 그만, 나 때문에 우는 건 그만두세요.

  하지만 너는 더 꺽꺽 울면서. 당신 참 매정한 사람이군요? 비록 잠시였지만 그래도 우리 새끼였는데. 나는 쟤들을 보고 있으면 집에 있는 내 자식들 생각이 나요. 그런데 당신은 안 그런가 봐? 쉬지 않고 쏘아붙인다.

  어쩌면 저 오리들도 어엿한 부모들이고, 강냉이에 혼이 팔린 부모들이고, 밤섬에 새끼들을 팽개치고 온 자격 없는 부모들이란, 그런 생각은 안 해봤나요?

  나는 묵묵히 페달을 밟고. 밤섬에서 뚝섬까지 거슬러 간다. 내가 보기엔 부모들 같은, 다양한  떼들을 꼬리에 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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