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래오 Jun 07. 2020

성공한 사람들의 조언

잘 모르면 그냥 응원해줘요.

 아직 해가 뜨기 전인데도 공기는 꽤 따뜻했다. 아직 내 목소리는 어린 티를 벗지 못했지만 아버지는 종종 나에게 중대한 임무를 맡기곤 한다. 오늘도 혹시 모를 '임무'가 있을지 몰라 앞뒤로 흔들며 가볍게 목을 풀어준다. 긴장했는지 괜스레 바닥 사이사이를 쪼아댔다.


"아들! 우리 인생에서 가장 고귀하고 위대한 일을 시작하자꾸나."


 아버지는 단지 하루 한번 목청껏 소리 지르는 일을 엄청난 일인 거 마냥 말을 한다. 뭐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특별한 존재만 하는 일도 아니었다.


"꼬끼오~~~~~~~"


 아버지의 기대감에 찬 눈빛을 거부하기 힘들어 최대한 큰 목소리를 내긴 냈다. 다행히도 아버지는 내 목소리에 만족한 모양이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날 자랑스러워하겠지만 그걸 듣는 사람들은 그저 시끄러운 소음 정도로만 생각했을 것이다. 잘은 모르지만 사람들은 아침에 일어날 때 시계나 핸드폰이라는 것을 보고 일어나기 때문에 내 목소리가 사람들의 인생에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않는단 걸 알고 있었다.


"우리 아들 덕분에 오들도 세상의 하루가 무사히 시작되었구나. 수고했다."


겨우 이런 일로 칭찬받는 것조차 부끄러울 정도였다. 하지만 아버지는 나 역시 자신과 비슷한 삶을 살기 원했다. 하루에 한 번 크게 소리치고, 그 이후로는 의미 없이 바닥이나 쪼아 대거나 구석에서 잠을 자는 인생을 살길 원했다. 그래야 오래산다나 뭐라나. 하지만 나는 태어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이런 인생이 벌써 지루해져 버렸다.


"엄마. 우리는 왜 맨날 땅에만 붙어서 머리를 박고 바닥만 쪼아대고 있는 거예요?"

"아들아 다들 각자 정해진 자리가 있는 거란다. 남들이 보기엔 하루 종일 바닥만 쪼아대고 있는 것 같지만 우리는 가장 먼저 세상의 아침을 알리는 존재잖니?"


어머니는 닭들의 인생을 그럴싸하게 포장해서 말했지만 내가 생각하기엔 그저 시간만 낭비하는 인생이었다. 게다가 아침에 소리를 지르는 닭은 무리들 중 정해진 수탉 한 마리뿐이고, 나머지는 아침부터 바닥을 쪼아대는 일을 할 뿐이었다.


"그러면 엄마. 우리도 새인 가요?"

"그렇지. 우리도 엄연히 새란다."

"그럼 왜 날지 못하는 거죠?"

"날 필요가 없기 때문이지."


 어머니는 여전히 당당하게 있어 보이는 말투로 대답을 했지만 그런 어머니의 대답이 전부 맞는 말이라고 생각하진 않았다. 나 역시 다른 새들처럼 깃털도 있고, 날개도 있다. 하지만 왜 나는 땅에만 머리를 박고 있어야 하는 건지 이해할 수 없었다. 낮에는 수많은 종류의 새나 곤충들이 자유롭게 날아다니고, 밤이면 별과 달이 자리 잡고 앉은 하늘에 가고 싶었다. 나는 그런 것들과 친해지고 싶었다. 의미 없이 바닥을 쪼아대는 일은 그만하고 싶었다.


"너는 하늘을 날아보고 싶단 생각 안 해봤어?"

"내가? 우리는 닭이야. 날 수는 없어. 기껏해야 좀 멀리 아니면 높이 점프하는 정도지. 그건 어쩔 수 없는 거야."

"아니. 우리도 다른 새들처럼 날개도 있고, 깃털도 있는데 연습하면 날 수 있지 않을까?"

"세상은 다 정해진 자리가 있는 거야. 우리가 비록 새라고는 하지만 하늘에서보다 땅에서 더 훌륭하게 살 수 있으니깐 날지 못하게 태어난 거야."

"그래도 나는 하늘을 날아보고 싶어. 낮에는 저기 강 위를 날고, 밤에는 달과 별 근처까지 날아가 보고 싶어."


나의 유일한 친구 검은 닭 역시 그럴싸한 말로 닭의 인생을 포장했지만 나는 공감할 수 없었다. 아니 공감하고 싶지 않았다. 그저 아무것도 도전하지 않고 사는 자기를 위로하기 위한 말 같았다. 그때 멀리서 시원한 바람이 불어와 얼굴을 스쳤다. 마음먹은 곳이면 어디든 갈 수 있는 바람의 자유가 부러워졌다. 할 수만 있다면 불어오는 이 바람의 등뒤에 올라 타서라도 최대한 멀리 날아가 보고 싶었다. 나는 그때 결심했다. 반드시 날아가리라고. 그저 하늘에서 바라보는 나의 집이 궁금했고, 매일매일 바닥만 쪼아대는 일상이 너무 초라해 보여서 벗어나지 못하면 답답해서 죽을 지경이었기 때문이다.


"아버지, 어머니 저는 오늘부터 하늘을 나는 연습을 할 생각입니다. "

"그게 무슨 소리니!"

"아니 도대체 왜 노력해도 안 되는 일을 하려고 하는 거니?"


 아버지와 어머니는 기겁을 하며 나를 설득하려 했다. 처음엔 아침을 알리기 위해 소리치는 일이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이라며 그 일을 계속한다면 모든 닭들이 나를 부러워할 거라며 설득했다. 그래도 내가 굽히지 않자 엄마 아빠 자신들도 어릴 때 다 해봤지만 할 수 없었다고 공감해줬다. 하지만 결국엔 왜 되지도 않는 일에 시간을 낭비하냐며 화를 내기까지 했다.


"하루 종일 바닥이나 쳐다보고 있는 일은 시간낭비가 아닌가요?"

"그.... 그건. "

"우린 그저 닭일 뿐이야. 뭔가 엄청한 일을 도전하지 않아도, 주는 사료를 먹고 알이나 낳아주면 충분히 제 역할을 하는 거라고."

"저는 그러고 싶지 않아요."

"그래. 그럼 하고 싶은 대로 해봐. 어차피 하늘을 나는 건 네가 닭인 이상 절대 불가능한 것이니깐."


 어머니는 한숨을 쉬었고, 아버지는 머리끝까지 화가 나서 씩씩 거리며 자리를 떴다. 나는 함께 지내는 다른 닭들에게 전부 의견을 물어보았다. 우리가 노력한다면 날 수 있을까? 하지만 모두 대답은 똑같았다. 닭은 절대로 날 수 없다. 쓸데없는 생각 하지 말아라. 그들의 부모님도 또 그들의 부모님도 전부 하늘을 날아본 닭은 없었다. 왜 아무도 날개가 있으면서 날아볼 생각을 하지 않은 걸까?


'그렇다면 닭들이 아니라 다른 새들에게 물어봐야겠군.'


 나는 작전을 바꿨다. 닭들에게 물어봐봤자 전부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라며 무시하거나 말릴게 뻔했다. 설령 응원해주겠다는 닭이 있더라도 직접 날아본 적이 없으니 조언을 구할 수 없었다. 그래서 나는 우리 닭장에 자주 놀러 오는 까치 아저씨에게 물어보기로 했다. 그는 쓸데없는 말이 많은 편이지만 그가 들려주는 말은 대부분이 내가 겪어보지 못한 일이라 재미가 있었다. 오늘도 어김없이 비슷한 시간에 닭장의 위에 내려앉았다.


"아저씨 안녕하세요. 저 궁금한 게 하나 있어요."

"웬일이니? 얼마든지 물어보렴."

"높이 나는 방법을 알려주세요."


 나는 단도직입적으로 아저씨에게 질문했다. 제발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아라. 닭은 날 수 없다는 이런 뻔한 말이 돌아오지 않기를 바랐다.


"너는 한 번도 날아본 적이 없니?"


까치 아저씨의 대답은 예상외였다. 그의 대답은 내가 새인데 왜 날아본 적이 없냐는 의미가 담긴 대답이었다. 나는 까치 아저씨의 말 한마디에 조금 희망이 생긴 느낌이었다.


"네 한 번도 날아본 적이 없어요."

"그래? 날개를 한번 위아래로 움직여볼래? 이렇게"


 아저씨는 자신이 직접 날갯짓을 시범 보이며 10cm 정도 살짝 날아올랐다. 나도 아저씨를 따라서 힘차게 날갯짓을 했지만 무거운 몸은 아저씨처럼 가볍게 떠오르지 않았다. 내가 날갯짓을 하는 모습을 본 아저씨는 눈을 감고 한참을 고민하다가 뭔가 떠오른듯 갑자기 번쩍 눈을 떴다.


"알겠다! 왜 날지 못하는지."

"뭐 때문인가요?"

"너무 뚱뚱해서 그래! 날개 크기에 비해 몸무게가 너무 많이 나가서 그래. 다이어트를 해봐!"


 대답을 듣고 생각해보니 닭들의 엉덩이는 다른 새들에 비해 유난히 컸다. 나는 내가 뚱뚱하다고 생각해본 적이 한 번도 없었지만 그 말을 듣고 다른 새들과 비교해보니 확실히 몸집이 컸다. 아무리 날개가 있다한들 몸이 무거우면 날 수 없을 것이다.


"맞아! 좋은 조언 감사합니다. 아저씨."


 까치는 다시 한번 시범을 보이며 가뿐히 닭 장위로 날아올랐다. 나는 그의 뒷모습에서 하늘을 나는 내 모습을 상상했다. 그 날 이후로 나는 지옥의 다이어트를 시작했다. 한시도 가만히 있지 않고 운동을 했다. 밥도 제대로 먹지 않고 운동을 했기에 그걸 본 어머니와 아버지의 잔소리는 더욱 심해졌다. 하지만 나는 개의치 않았고 살을 뺐다.


"아저씨 다이어트를 했어요."

"오 그래. 굉장히 살을 많이 뺐구나. 이제 날 수 있을 거야. 다시 한번 날갯짓을 해보렴 이렇게."


나는 들뜬 마음을 가다듬고 힘차게 날갯짓을 했다.


"흠......"


 눈을 질끈 감고 열심히 날갯짓을 했지만 날아오르기보다 조금 높이 뛰었다고 하는 게 더 맞는 표현이었다. 저번보다 확실히 가벼워진 것은 맞지만 하늘을 날기에는 여전히 부족했다.


"더 살을 빼야 할까요?"


 까치 아저씨는 다시 한번 깊은 고민에 빠졌다. 내가 까치 아저씨에게 조언을 구한 뒤로 아저씨는 나에게 한 번도 '닭이기 때문에 날 수 없다'고 말하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아저씨가 하는 말을 전적으로 믿고 싶었다. 진지하게 문제를 파악하고 분석해서 조언을 해주었기 때문에 항상 나를 수긍하게 만들었다.


"날개의 근육이 부족해서 그런 것 같구나. 좀 더 힘차게 오랫동안 날갯짓을 해야 하는데 너의 날갯짓에는 힘이 없어. 그 정도로는 날지 못해."


 맞아. 나는 살면서 한 번도 운동이라는 것을 해본 적이 없었다. 게다가 근력운동이라면 더더욱 없었다. 나는 까치 아저씨의 말을 듣고, 날개의 힘을 기르기 위해 근력운동을 시작했다. 양 날개 위에 돌을 올리고 올렸다 내렸다를 반복했다. 점점 더 무거운 돌로 바꿔가며 날개에 근육을 만들었다. 덕분에 나는 날렵한 몸과 우람한 근육이 있는 날개를 가지게 되었다.


"이게 도대체 무슨 꼴이니! 몸은 삐쩍 말라서 날개에만 이렇게 살이 붙다니."

"살이 아니라 근육이에요. 저는 날갯짓을 더욱 힘차게 하기 위해 근력운동을 한 것뿐이에요."

"아이고 아들아. 도대체 왜 쓸데없는 짓에 이렇게 시간을 낭비하는 거니."


 어머니는 볼 때마다 한 마디씩 잔소리를 했고, 아버지는 이제 나를 쳐다보지도 않았다. 내가 하는 모든 행동을 탐탁지 않아했다. 어느 날은 까치 아저씨에게 짜증을 내는 모습을 보기도 했다.


"왜 쓸데없이 우리 아들에게 희망을 주는 거요? 닭들이 날 수 없다는 건 당신도 잘 알잖소. 다음에 우리 아들이 말을 거면 절대 불가능하다고 한마디만 하시오."

"날개가 있고, 당신들은 새인데 왜 안된다고 말하는 거요?"

"우리는 닭입니다. 당신처럼 까치가 아니란 말이요!"

"그런 건 이유가 되지 않소. 새라면 모두 날 수 있을 것이오."


 까치 아저씨에게 짜증을 냈지만 오히려 더욱 화가 난 쪽은 아버지였다. 결국 또다시 씩씩거리며 돌아왔다. 나에게 화풀이를 하러 걸어오던 발걸음은 다행히도 멈추고 좀 더 세게 바닥을 쪼아대는 걸로 대신했다.


"아저씨 저는 이제 준비가 되었어요. 다시 한번 나는 방법을 알려주시겠어요?"

"같이 저 산 위로 올라가는구나. 하늘에서 보는 만큼은 아니지만 이 땅이 얼마나 넓은지 그리고 아름다운지 날기전에 산 꼭대기에서 먼저 느껴보자꾸나. 높은 곳에서 이 곳을 바라보면 분명 더 높이 날고 싶어질 테니 꼭 성공할 거야."


 나는 아저씨의 말에 심장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높은 하늘을 난다면 이것보다 더 심장이 뛰겠지. 하늘을 날기 전에 왜 한 번도 저 산 위로 올라가 볼 생각을 안 했을까? 아니 지붕 위에라도 올라가 봤더라면 좀 더 하늘에 가까워졌을 거고 높은 곳에서 보는 풍경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느낄 수 있었을 것이다. 맨날 바닥에만 붙어 높은 하늘을 선망했던 나 자신이 너무 멍청해 보였다. 높은 하늘을 조금이라도 맛봤다면 지금보다 더 절실히 준비할 수 있었을 텐데.


"좋아요! 어서 올라가요."


아저씨는 나를 위해 자신도 날지 않고, 산꼭대기까지 걸어서 올라가 주었다. 꼭대기까지 걸어 올라가는 것이 쉽지 않았지만 내려올 땐 다리가 아닌 날개를 이용해서 내려올 거라는 상상을 하며 끝까지 힘을 낼 수 있었다.


"자! 이제 준비한 날갯짓을 마음껏 해보렴."


 나는 꼭대기에서 산 밑을 한번 바라본 뒤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봤다. 산에는 나무가 빼곡했고, 커다란 바위들도 보였다. 반면에 하늘에는 방해할만한 요소가 아무것도 없었다. 내가 갈 곳은 아무런 방해꾼도 없고 훨씬 넓은 하늘이었다. 그리곤 뒤로 물러서서 날개를 펼쳤다. 나는 이 날을 위해 누구보다 오랜 시간 준비해왔다. 나는 내가 노력한 시간에 대해 확신이 있었기 때문에 주저 없이 발을 내디뎠다. 어머니와 아버지를 비롯해 모든 닭들이 날 수 없다고 했지만 까치 아저씨만은 날 수 있다고 말했다. 나는 진짜로 하늘을 날아본 적 있는 그의 말을 믿기로 결심했고, 지금 날개를 활짝 펴고 하늘을 날고 있다. 저씨처럼 자유롭게 나는것이 아니라 그저 천천히 떨어지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그것은 아무 상관없었다.




























작가의 이전글 재외공관 요리사의 고민 - 무슬림들을 위한 메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