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기 없는 집, 낯선 공간
2025년 7월 12일
마치 일기장 속 낡은 페이지를 넘기듯, 나는 오늘 엄마라는 이름의 책을 다시 펼쳐본다. 책의 첫 장은 언제나 그렇듯 그리움으로 시작된다.
텅빈집, 그리고 엄마의 자리
저번 주말, 동생이 홀로 지내는 집의 현관문 비밀번호를 누르는 손끝이 무감각했다. 일이 있어 저 멀리 뉴질랜드, 남태평양의 섬으로 떠난 엄마의 빈자리를 확인해야 한다는 의무감 같은 것이었다. 끼익, 소리를 내며 열린 문틈으로 익숙한 온기 대신 서늘하고 쾨쾨한 공기가 나를 맞았다.
늘 "우리 딸 왔어?"라며 현관까지 마중 나오던 엄마의 목소리가 사라진 공간. 그곳엔 오직 한낮의 햇빛마저 비껴간 듯한 그늘진 어둠과 적막만이 가득했다. 발소리가 유난히 크게 울리는 복도를 지나며 문득 등골이 서늘해졌다. 이건 공포라기보단, 모든 것이 제자리에 있지만 가장 중요한 핵심이 빠져버린 기이함에 가까운 감정이었다. 텅 비어버린 집은 마치 영혼이 떠나버린 육신처럼 스산했다. 낯선 공간이 되어버린 나의 집에 소름이 돋았다.
엄마의 방문을 열자, 그제야 희미하게 남은 엄마의 체취가 밀려왔다. 엄마가 쓰는 화장품 냄새, 섬유유연제 향기, 그리고 엄마 특유의 살냄새가 뒤섞여 마치 엄마가 바로 등 뒤에 서 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그 순간, 단단하게 쌓아 올렸던 무심함의 둑이 무너지며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엄마의 존재감이란 이토록 거대한 것이었나. 집 안을 환하게 밝히던 것은 햇빛이나 조명이 아니었다. 바로 엄마, 당신이었다.
애증의 연대기
나는 엄마와 참 많이도 싸웠다. 우리의 관계는 평범한 모녀라기보다, 서로에게 가장 깊은 상처를 입힐 수 있는 방법을 알면서도 가장 필사적으로 서로를 지켜내는,오래된 전쟁을 함께 치른 전우에 가깝다. 좋은 기억도 많았지만, 엄마로 인해 생긴 가슴 한쪽의 트라우마는 꽤 오랫동안 내 삶을 지배했다. 아물지 않은 생채기는 곪고 터지기를 반복하며 나를 원망과 분노 속에 가뒀다.
오빠만 편애하고 나에겐 늘 구박만 한다고, 해준 것이 무엇이 있냐고 악을 쓰며 엄마를 원망하던 시절이 있었다. 엄마와 평생 보지 않겠다며 두 달간 모든 연락을 끊어버린 적도 있다. 그때 엄마는 무너졌다. 끊임없이 사과하고, 용서를 구하고, 해준 게 없다며 내 손에 200만 원을 쥐여주었다.
솔직히 고백하건대, 그 차가운 지폐의 무게만큼 내 마음속 원망의 무게가 가벼워졌음을 부정할 수 없다. 돈 때문만은 아니었다고 항변하고 싶지만, 엄마의 절박함이 돈이라는 형태로 내게 전달된 순간, 나는 무장해제 당했다. 그 돈은 상처에 대한 보상금이자, 엄마의 진심을 증명하는 물질적 증거처럼 느껴졌다. 얼마 후 100만 원은 돌려주었지만, 그 거래 아닌 거래를 통해 우리는 위태로운 화해를 했다. 엄마의 사과와 나의 용서가 그렇게 얽히고설켜 지금에 이르렀다.
지옥을 함께 건넌 동지
내가 엄마의 상처를 온전히 용서할 수 있었던 이유는, 어쩌면 엄마 역시 내 아버지로부터 시작된 지옥을 온몸으로 버텨낸 피해자이자 생존자라는 사실을 기억하기 때문일 것이다. 알코올에 절어 폭언과 폭력을 일삼던 아버지. 그 광기를 피해 한밤중 우리 형제들을 이끌고 맨발로 도망치던 엄마의 작은 등. 추운 새벽, 잠옷 바람으로 집에서 쫓겨나 덜덜 떨며 서로의 온기에 의지해야 했던 그 밤들.
몇 번이나 스스로 생을 마감하려 했던 엄마의 위태로운뒷모습은, 십 대였던 내 뇌리에 흑백사진처럼 선명하게박혀있다. 그 끔찍한 시간 속에서 엄마는 우리를 지키기 위해, 그리고 스스로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 쳤다. 엄마의 인생 역시 단 한 번도 온전히 빛난 적이 없었다.
그 지옥에서 살아남아 지금 내 곁에 있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엄마는 내게 기적이다. 때로는 나를 할퀴고 상처 입혔을지라도, 엄마가 없었다면 나는 아마 진작에 미쳐버렸거나 부서져 사라졌을 것이다. 엄마는 나의 가장 아픈 트라우마이자, 가장 강력한 구원이다.
우리가 함께 써 내려갈 내일의 언어
문제는 여전히 남아있다. 화가 많고, 그것이 고스란히 말투에 묻어나는 엄마. 늘 무언가에 쫓기는 듯, 날카롭게 날이 선 신경질적인 그 말투는 내게 일종의 방아쇠다. 그 목소리를 듣는 순간, 나는 과거의 상처 입은 아이로 돌아가 즉각적으로 가시를 세우고 전투태세에 돌입한다. "제발 예쁘게 좀 말해줘." 수없이 부탁했지만, 수십 년간 굳어진 엄마의 화법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그리고 나의 반응 역시 그렇다. 우리는 그렇게 같은 자리에서 끝없이 맴돈다.
이제는 안다. 변화는 쌍방의 노력이다. 엄마가 말투를 고치기 위해 애써야 하듯, 나 또한 그 말투에 자동반사적으로 반응하는 나의 예민함을 다스려야 한다. ‘예쁘게 말하기’는 엄마에게만 해당되는 과제가 아니다. 나 역시 퉁명스러운 대꾸 대신 부드러운 침묵으로, 날 선 지적 대신 따뜻한 농담으로 그 위기의 순간을 넘기는 연습을 시작해야 한다. 이것은 나 자신을 위한 일이기도 하다.
엄마, 우리 이제 그만 싸우고, 남은 시간은 그냥 행복하게만 살자. 아프지 말고. 당신이 그토록 원했던 평범하고 소소한 행복을 누리며, 바쁘게 살아가는 당신의 삶을 온 마음으로 응원할게. 아이러니하게도, 당신의 그 신경질적인 말투까지도 사무치게 그리워지는 이 밤에. 어서 돌아와. 엄마의 온기로 이 텅 빈 집을 다시 환하게 밝혀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