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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없는 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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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늘이 Mar 11. 2023

인생일기 3.

헤어지기 싫어.

교수님 진료를 받고, 눈물을 펑펑 쏟았다. 예상이 딱 들어맞았으니까. 심란한 마음에 ‘이런 말은 안 할 거야.’라고 생각했던 말을 뱉고 나왔다. “교수님만 믿을게요.” 이 얼마나 진부한 대사인가. 교수님은 환자에게 자주 듣던 말일 것이고, 환자는 작은 희망이라도 붙잡고 싶은 대사. ‘뭘 그런 말을 해. 어차피 매일 듣는 말 일 텐데. 큰 의미도 없을 걸.’이라고 생각했는데 나도 모르게 입에서 나왔다. 참 바보 같았다.  

   

그 당시 나는 머리가 상당히 길었다. 늘 하고 싶었던 히피펌. 마음먹고 도전한 스타일이었는데, 병원에 입원하면 감당 안 될 것 같아 미용실로 향했다. 비싼 돈을 주고 파마한 지 얼마 안 된 머리를 자른다고 하니, 미용실 원장님은 뭔가 알겠다는 듯한 눈치였다. 머리가 너무 아까웠지만 단발로 자르고 거울을 보며 ‘상큼하니 좋네.'라고 억지로 마인드컨트롤 했다.

나는 항암치료를 하면 모든 환자들이 머리카락이 빠지는 걸로 잘못 알고 있었다. 교수님께서는 항암을 해도 머리카락이 빠지지 않는다고 했는데 정말 그렇겠지? 진짜 그랬으면 좋겠다.  

    

수술날까지 바쁘게 지냈다. 일상을 유지하며 사람들의 걱정과 위로를 주고받았다. 그 와중에 지인이 전복을 선물해 주셨다. 그분이 나한테 우스갯소리로  “이거 해먹을 줄은 알아? 모르지?”라고 했는데, 진짜 해본 적이 없어서 애매했다. 레시피를 검색하던 와중, 아들이 나서서 ‘전복 크림 스파게티’를 만들어 주겠다고 했다.


숟가락으로 전복을 파내고 칫솔로 빡빡 닦은 다음, 스파게티에 넣어서 완성. 진짜 너무너무 맛있었다. 아들이 맛있게 만들어준 스파게티에 마음이 찡했다. 이때 아이들은 나의 병명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내가 음식을 먹을 때마다 “엄마, 이거 먹어도 돼?”라고 물었다. “응, 괜찮아. 수술하면 못 먹으니까 엄마 병원 가기 전에는 먹고 싶은 거 다 먹을 거야.” 하며 술과 커피, 자극적인 음식을 제외하고는 평소처럼 맛있게 먹었다. 수술하면 한참 못 먹을 텐데, 지금이라도 먹어둬야지 하면서.     



너무 감사하게도 직장동료들이 위로금과 책, 상장, 편지 등을 선물해 주셨다. 한 직장에서 오래 근무했기 때문에 한 템포 쉬어가라는 의미로 생각하라고 말했다. 그래, 나도 이곳에서 15년 일했으니, 좀 쉬라는 건가? 아마도, 내 인생의 절반 지점쯤 되니까 한 번 돌아보라는 의미인가 보지? 내 역할을 열심히 했으니까, 동료들이 함께 슬퍼해 주고 눈물 흘려주는 거겠지? 내가 좋아하는 의미 부여하기를 했다. 집에서는 심란한 마음을 애써 추스르며 핸드폰 앨범 사진을 보았다. 그러다 보면 시간이 금방 가니까. 앨범 속 나는 정말 환하게 웃고 있었다. 너무 밝아서 눈물이 났다.


‘너 이때는 좋았지? 속은 썩어가는지도 모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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