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행히 수술은 잘 됐다. 하지만 너무 아프고 정신이 없어서 카톡은커녕 전화도 받을 수 없었다. 내가 연락이 안 되니 남편이 간호사실로 전화를 했었다. 아픈 와중에도 선잠이 들었던 건지 통화 소리를 얼핏 들었던 것 같다. 내가 있던 병실이 간호사실과 가까웠기 때문이다. 잠결에 들은 거라 확실치 않아 나중에 물어보니 맞다고 했다. 오죽 아팠으면 진동도 귀찮아서 무음으로 바꿨을까. 그런 적이 없었는데.
수술 때 무슨 일이 있었던걸까? 그나마 멍이 많이 빠진 상태
공포의 수술날이 지나고 다음 날부터는 아주 조금씩 안정되었다. 하지만 몸의 중심인 배가 아프니 일어나는 것도 눕는 것도 너무 힘들었다. 일어날 때는 간호사의 도움으로 침대 발치의 동그란 손잡이를 잡고 낑낑거리며 일어났다. 누울 때도 조심조심. 화장실도 도움을 받아서 갔다. 아이고, 그런데 그 와중에 생리까지 해서 그 번거로움은... 말로 다 못한다...
새벽 5~6시 사이에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아래층으로 내려가서 엑스레이를 찍었다. 매일 그렇게 했는데, 첫날은 침대에서 일어나지도 못해서 그대로 실려서 내려갔다. 다음날은 휠체어를 탔고, 그다음은 겨우 일어나서 링거 거치대를 끌고 내려갔다. 그 시간에 함께 내려가는 환자들이 있었는데 서로의 링거와 몸에 달린 주머니들을 보며 ‘어디 수술했을까? 피곤해 보여.’ 하며 묘한 동질감을 느낀 것 같다.
잠자는 것도 너무 힘들었다. 병실의 등이 밝을뿐더러, 중간중간에 간호사가 들어와서 혈압과 열 체크를 하고, 링거도 체크했다. 당연한 과정이지만 예민한 상황이라 더 그랬다. 살짝 잠이 들었다 싶다가 깨면 2시, 3시, 4시... 집에서는 잠들면 아침까지 푹 자는데 여기선 잠을 설쳤다. 혹시나 링거줄이 꼬일까 봐 팔의 위치를 의식하며 잠들었다.
아침에 일어나면 허리가 너무 아팠다. 침대도 익숙지 않은 데다가 배와 허리가 함께 아프니 이건 뭐, 정말 힘들었다. 오죽했으면 낫지도 않았는데 집 가고 싶을 정도. 화장실의 거울에 비춰보는 내 모습은 비참했다. 소변줄에 핏주머니를 주렁주렁 달고, 꼴은 말도 아니었다. 그냥 사람 자체가 엉망이었다. 거울도 보기 싫고, 씻는 것도 화장실 가는 것도 너무 불편했다.
수술이 끝났으니 먹어야 했다. 처음엔 아주 작은 컵에 물을 조금 담아줬는데, 그걸 조금씩 나눠서 마셔야 했다. 아니, 먹는다기보다는 입술에 물을 묻히고 핥아먹는 수준. 입술을 만져보고 깜짝 놀랐다. 입술이 텄는데, 마치 밥풀 같은 허연 껍질이 덕지덕지 붙어있었다. 이런 적 처음이야. 물도 겨우 먹으니 이렇게 되는구나.
다음 단계의 미음을 먹고 죽 등을 먹으면서 차츰 나아졌다. 물론 그것도 양은 아주 적다. 물도 씹어서 조금씩 삼키니 마치 내가 이유식을 시작하는 아기가 된 느낌이었다. 퇴행한 느낌. 그나마 아기들은 죽은 다양하게 먹잖아. 병원에서는 흰 죽만 준다.
오전, 오후에는 교수님이 회진을 하셨다. 미리 문자가 오기 때문에 시간에 맞춰 침대에 앉아 기다렸다. 오셔서 내 상태를 체크하고, 궁금한 것에 대해 이야기도 해주시는데 교수님의 토닥거림이 큰 힘이 되었다.
정신을 차리고 수술이 잘 되었다고 지인들에게 연락을 했는데 말도 잘 못하고, 울고… 병문안을 오겠다고 했지만 현실적으로 불가능했다. (코로나는 정말 대단한 녀석이다.) 병문안이 가능했다면 오신 분들에게 징징거리고 싶었는데, 생각해 보면 그런 모습을 보이기 창피할 것 같다. 고마운 마음만 가슴에 품기로 했다.
먹지를 못하니 살이 쭉쭉 빠졌다. 처음 병원에 와서 잰 몸무게보다 6~7킬로가 빠졌다. 평소엔 전혀 상상할 수 없는 감량. 위가 없으니 식도에 무리가 가지 않도록 적은 양을 여러 번 나눠 씹어 삼켰고, 먹은 것도 없는데 금방 배가 불렀다. 수술 후부터 한두 달은 배고픔을 느낀 적이 없다.
미음이나 죽 세 숟갈에 물 두세 모금만 더 마시면 배가 가득 차고 움직이면 토할 것 같았다. 그래서 먹은 후에는 눕거나 돌아다니지 않고, 등받이에 기대서 한참을 앉아있었다. 남편은 계속 운동을 하라고 했는데, 그 말도 거슬렸다. 내 상황을 봐라, 그게 쉬운지. 그래도 힘을 짜내서 복도를 돌고, 움직이니 조금씩 나아졌다. 그렇게 시간의 흐름은 회복을 부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