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암 센터의 교수님과 영양사 선생님께서 환자들을 위한 교육을 해주셨다. 위 수술이 무엇이고, 수술 후에는 어떻게 관리해야 하는지 강의하시는데, 나를 수술해 주신 교수님께서 교육해 주셔서 더 믿음이 갔다.
그리고 영양사 선생님의 영양교육. 앞으로의 삶을 영위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고 생각됐다. 처음에는 체중도 많이 줄고 음식을 먹는 것이 힘들지만, 시간이 지나면 몸무게도 회복되고, 먹는 것도 나아진다고 했다.
나눠주신 영양 관련 책자를 보는데 머릿속에 하나도 들어오지 않았다. 내가 제대로 챙겨 먹을 수 있을까 걱정이 됐다. 먹는 것이 제일 중요한데 집에서는 식사 준비를 제대로 하기 힘들 것 같아 요양병원에 입원하기로 했다.
요양병원 입원 얘기가 나왔을 때 너무 짜증이 났다. 내가 나이가 아주 많은 환자도 아니고 왜 요양병원에 가냐고 신경질을 냈는데, 어쩔 수 없었다. 병원에 가보니 나이보다는 환자의 특성에 따라 입원하는 이유가 달랐다. 차라리 입원이 나을 것 같았다.
퇴원을 위해 병실을 정리하고 개인 물품을 챙겼다. 나는 환자인데 병실에 들어올 때도, 나갈 때도 혼자 다하네.라고 생각하니 이 놈의 코로나! 가 절로 나왔다. 물론 간호간병 통합병동이지만 환자들은 보호자가 올라와서 챙겨주는 걸 원할 수도 있으니까.
엘리베이터 앞에서 남편을 기다렸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남편을 보자 눈물이 났다. 나 원래 잘 안 우는데. 병원에서 잘 생활하고 수술도 잘 됐는데, 가족과 떨어져 있었다는 서운함과 동시에 반가움을 느꼈나 보다. 나중에 남편에게 이 얘기를 하니 “그래도 나밖에 없지?” 하며 닭살 멘트를 했다. 그래 인정하지 뭐.
퇴원을 하고 요양병원에 가기 전 집에서 이틀을 머물렀다. 몸에 힘이 없어서 계단 올라가다 자빠질 뻔.. 조심조심. 아들이 전기매트를 켜둬서 바닥이 따뜻했고, 이불과 끼고 잘 인형까지 챙겨놓았다. 그래서 금방 잠들 줄 알았는데, 전혀 아니었다. 딸과 아들이 투닥거리며 싸우는 소리, 시어머니께서 죽을 끓여놓고 내가 언제 먹을지 아이들에게 반복적으로 묻는 것도 다 스트레스였다.
나는 병원에서 못 잔 잠을 푹 자고 싶었는데, 이것저것 신경 쓰여서 결국 집에 간 지 두 시간 만에 나오고 싶었다. 결국 아이들을 불러놓고 얘기했다. 내가 우는 모습을 보여주기 싫어서 불도 켜지 않고. 대학과 고등학교에 진학하게 될 아이들이 내 병을 알고 부담을 느낄까 봐 ‘엄마 괜찮으니까 걱정하지 마, 그리고 너희들 필요한 거 엄마가 다 해줄게’라고 했는데, 오늘 상황을 보니 화가 나고, 아이들도 심각성은 알아야 할 것 같았다.
엄마도 아프고, 아빠가 엄마 챙기느라 힘든데 너희들은 철없이 징징거리고 싸우기만 하고. 지금 가족들이 다 같이 잘해야 하는 시기인데 엄마 너무 속상하다며 울면서 얘기했다. 그냥 서러웠다. 물론 내가 병원에 있는 동안 아이들이 기숙사 들어갈 준비도 다 해놓고, 잘 지낸 것도 안다. 그 점은 고맙기도 하고. 하지만 병원에서 퇴원하고 돌아온 날부터 본모습들은 스트레스로 다가왔다. 그렇게 스트레스 가득한 하루를 보내고 다음 날은 요양병원에 들어갈 준비를 했다.
병원과 집에 있으면서도 직장 생각이 계속 났다. 내가 할 일을 마무리하고 나오긴 했지만, 바쁜 일정을 소화할 동료들의 모습이 눈에 선했다. 그래서 업무 관련해서 생각난 내용을 카톡에 올렸는데, 아픈 사람이 뭘 그런 걸 신경 쓰냐고 했다. 하지만 그게 안되더라, 어떤 상황인지 너무 잘 아니까 미안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퇴사했기 때문에 눈에 훤히 보이는 그 일들을 안 하는 게 좋기도 했다.(여러분 죄송, 하지만 진심이야..)
코로나 감염예방을 위해 격리된 1인실. 대충 짐을 던져놓았다.
코로나 검사를 하고 요양병원으로 들어왔다. 코로나 감염 예방 차원에서 1인실에서 3박 4일 동안 격리되었다. 1인실이라 좋았다. 혼자니까 편할 것 같았는데 지내고 보니 그것도 아니었다. 요양병원 특성상 사람들이 많이 돌아다니지 않고 조용하다. 1인실에서는 텔레비전도 늦게까지 볼 수 있고, 개인 욕실 사용 및 식사가 잘 나오는 것도 좋았지만, 혼자 있으니까 잡생각도 들고, 고립된 느낌이 들었다. 낯을 가리지만 얼른 격리가 끝나고 사람들이 있는 6인실로 가고 싶을 정도.
텔레비전은 독차지지만 재밌는 것도 안하고 심심했다
조용한 방에 있으면서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나 고민했다. 일 년을 쉬게 되었지만, 내년에는 어떻게 될까? 내가 병을 잘 다스리며 살 수 있을까? 그 외에도 자잘한 고민들이 머릿속을 떠다녔다. 올해는 하고 싶은 것이 많아서 다이어리에 꼼꼼하게 적어뒀는데, 그것들이 일순간 다 무너진 것 같아 너무 속상했다. 아프다고 못 하는 건 아니지만, 그 상황에선 모든 것이 다 힘들게만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