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원해 있는 동안 시간을 떼우려고 책과 아이패드를 가져왔지만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입원할 때 요양병원 원장님이 휴가 온 기분으로 푹 쉬라고 하셨는데, 아무래도 그게 큰 작용을 한 것 같다. 원래 휴가 오면 아무것도 안 하는 거니까. 환자가 뭘 그리 하려고 해, 그냥 쉬지. 그래 그러자.
위절제식의 올바른 식습관 기억하란다..
종일 텔레비전만 보다가, 새로운 것을 알게 되었다. 텔레비전 프로그램과 광고에서는 쉴 새 없이 먹는 내용들이 나왔다. 어쩜 저렇게 쉬지 않고 먹을까? 나는 제대로 먹지도 못하는데, 입맛만 다셨다.
그들 개인의 사정을 잘 알지는 못하지만, 저렇게 먹는데 큰 이상은 없어 보이는데 나는 왜 그런 거야, 폭식도 하지 않는데 왜 아픈 거지? 라고 생각했다. 그래봤자 이미 일어난 일, 어쩌겠어, 하며 짧은 절망도 하고.
그 와중에 ‘나는 자연인이다’ 프로그램을 보게 되었는데, 심지어 거기에서도 맛깔스러운 음식이 나왔다. 자연인들은 별거 아닌 재료들로 너무나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 먹더라. 아 부러워.
그리고 보험 광고도 엄청 많았다. 프로그램 사이사이에 낀 광고들 중에서는 보험 광고가 으뜸이었다. 암에 걸리는 사람이 얼마나 많으면 저런 광고를 할까? 보기만 해도 보험 가입을 하게끔 만드는 상술. 그 상술이 와닿아서 슬펐다.
코로나 염려 때문에 1인실 식사는 일회용 용기에 담아나왔다
1인실은 반찬이 잘 나왔다. 6인실은 보통 국과 동치미 국물을 빼고 세 종류쯤 나오는데, 1인실은 종류도 많고 다양했다. 죽에 누룽지에, 반찬은 아주 잘게 다져서. 하지만 얼마 못 먹었다. 반찬이 아까웠다. 맛있어 보였는데. 숟가락으로 막 퍼먹고 싶었지만 먹을수도 없고 식욕도 전혀 없었다. 살기 위해 먹는 시늉이라도...
죽처럼 뭉게져 나온 반찬들. 나는야 이유식 먹는 다큰 아기.
1인실은 다른 사람 눈치를 볼 필요 없이 늦게까지 전화 통화를 할 수 있다. 엄마 아빠와 매일 통화를 했다. 오전에는 아빠, 저녁에는 엄마랑. 이 점은 정말 좋았다. 그리고 직장동료들과 지인들과도 통화를 했는데, 많이 나아진 내 목소리에 안심이 된다고 했다.
그 와중에 내가 아픈 것을 알리지 않은 지인이 있었는데, 갑작스러운 사실에 놀라 울고, 나도 덩달아 눈물이 나왔다. 사실, 내시경 받으러 가기 얼마 전에 만났었는데, 다음에 같이 밥 먹자, 커피 마시자 얘기를 나눴던 터라 더 놀랐던 거다. 남편과도 잘 알고 아이들끼리도 친해서, 챙길 거 있으면 얘기하라는 말에 너무 고마웠다.
친구들과는 카톡만 주고받았다. 통화를 하면 눈물이 많이 날 것 같아서다. 한 친구가 열심히 운전을 마스터하고 있으니 힘내고 얼른 회복해서 꼭 같이 놀러 가자고 했다. 놀러가려면 옷부터 사야겠네?를 시작해서 짧지만 굵은 대화가 오갔다.
함께 일했던 동료 중 한 명은 나를 단단하고 어른스러운 사람이라며 잘 이겨낼 거라고 했다. 처음 들어보는 평가에 조금 창피했다. 집에서는 슬퍼서 울지만 밖에서는 평정심을 유지하려는 모습을 본 것 좋게 본 것 같았다. 그래 잘 할 거야, 할 수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