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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늘강가 Oct 01. 2023

17. 불분명한 경계

#1 겨울, 스며드는 감정의 온기


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 눈의 고장이었다. 밤의 밑바닥이 하얘졌다. 신호소에 기차가 멈춰 섰다.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소설『설국』의 첫 문장이 생각나는 풍경이 펼쳐진다. 비록 눈은 아닐지라도 이곳에는 매년 이맘때면 매화가 흐드러지게 피어난다. 유유히 흐르는 낙동강과 이를 마주한 마을 사이로 기차가 지나는 순간이면 여기저기서 카메라 셔터음이 들려오며 어딘지 자꾸만 나의 마음 한 구석을 건들고 마는 것이다.





얼마 전의 일이다. 그의 악의 없는 한마디에 내 마음속 깊이 숨어있던 열등감 비슷한 감정의 찌꺼기들이 터져 나와 그만 혼자 숨어서 울어버리고 말았다. 감정의 크기와 속도가 다르다는 것은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았던 생활 방식이나 가정환경 같은 것들을 계속 의식하게 만들었다. 생각의 차이로 인해 부담으로 얼룩져 흐릿해진 마음은 관계 자체마저 부정하기에 이르렀다. 그런 부정적인 생각은 섣부른 행동을 가져온다. 그리고 섣부른 행동은 지금처럼 아쉬움을 부른다. 순매원의 매화는 이제 겨우 막 피기 시작하고 있었다.





끝과 시작의 경계가 불분명한 계절이지만, 나도 모르는 새 점점 그 색채가 분명 해지는 순간이 온다. 

그때야 비로소 한 계절을 온전히 느낄 수가 있는 것이다.





발길을 옮겨 양산 통도사로 향했다. 조금 더 진한 색채와 계절을 마주했다. 나의 마음 역시, 끝도 시작도 아닌 불분명한 경계 사이에서 맴돌고 있다. 그가 전한 마음이 내게는 부담이라 잠시 혼란에 빠졌지만, 시간을 갖고 가만히 들여다보면 내 마음의 색채가 점차 선명해질 것이다. 결정은 그때해도 늦지 않는다. 이미 나는 선택에 따른 결과는 결국 각자의 몫이라는 걸 충분히 겪어봤다. 나의 생각이 너무 크고 무거워 겨우 찾은 내 마음의 평화와 안정에는 시간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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