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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려원 Sep 06. 2023

가을 즈음엔

국화꽃과 피아노


1)

아버지의 화단에는 때마다 다른 꽃들이 찾아와서 쉬어 갔다. 봄에는 매화나무 한그루가 찾아왔고 봄과 여름 사이에는 장미가 피어 오고 가을에는 국화꽃이 찾아왔다. 국화는 한데 어우러져 있는 것도 있었지만 서로 간격이 벌어져 있는 것들도 있었다. 아버지는 사이가 벌어진 꽃들을 한 군데로 모아 몸을 묶어주고 서로 부둥키며 살라고 꽃들에게 말해 주곤 했다. 아버지의 화단에서 꽃들은 사랑을 받았고 꽃들에게 사랑을 주던 아버지는 사계절 모두 소녀의 꽃으로 피어 있었다. 소녀에게 아버지는 매화꽃나무가 되기도 했고 장미꽃이 되기도 했고 국화꽃이 되기도 했다. 계절마다 소녀에게 아버지는 늘 꽃으로 피어 있었고 가을이 모두 지고 겨울이 와도 그 속에 국화 향기는 가지 않고 오래도록 남아 있었다.


2)

어느 가을날 꽃가게 앞을 지나며 색깔이 예쁜 국화꽃 한 다발을 샀다. 화병에 물을 담아 꽃이 시들지 않도록 넣어 두고 파아노위에 올려놓았다. 가을이 데리고 온 국화향이 집안에 가득했고 꽃이 시들기 전까지 한동안 아버지 냄새를 맡을 수 있었다. 아버지는 볼 수 없고 이젠 국화를 집으로 데리고 와야만 아버지의 가을을 만날 수 있다. 유년이 국화에게서 머물러 있었고 아버지는 그 가을날 국화꽃으로 피어 있었다. 


3)

간밤에 사진 한 장을 꺼내 들었다. 달빛이 집안으로 들어와 피아노 건반을 두드리며 국화꽃물 들여 가던 밤이었다. 국화는 훤한 낮보다 얼굴이 더 환해졌고 피아노 건반 위에 몸을 실었다. 국화가 음악에 맞춰 몸이 흔들릴 때마다 소녀도 덩달아 국화꽃이 되었다. 그 가을날 간격이 벌어진 국화나무를 한 곳으로 모아 주시던 아버지처럼 소녀도 국화꽃을 꼭 껴안았다. 국화와 소녀는 한 몸이 되었고 국화는 소녀에게 이런 말도 전해 주었다.  

"가을 즈음엔

세상이 처럼 곱게

물들어 왔으면 좋겠다"


국화꽃으로 물들어 가던 그 가을날 소녀의 밤은 어느 때보다 더없이 환해지던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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