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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려원 Mar 05. 2023

시아버지와 꽃바구니

그리움, 사랑의 길(1)

며칠 전,

문단에 계신 원로 선생님으로부터 전화 연락이 왔다. 월간문학에 발표된 글이 선생님께서 읽어 내리며 너무도 순수하게 다가와 서평을 쓰셨다고 한다. 그리고 글은 곧 서평과 함께 신문에 실렸다는 소식이었다.


글은 오래전에 창작하여 지금은 곁에 계시지 않는 시아버님을 그리워하며 쓴 글이다. 발표를 언제 할까 미뤄오며 지난여름 한국 문단에서 마침 원고 청탁이 들어와 그 기회에 원고를 보냈다. 그렇게 월간문학 10월호에 발표된 글로 선생님께서 서평까지 쓰게 되셨다.


아버님 생전 내게 보내셨던 꽃바구니

내가 시집온 이후로,

시아버님은 내 생일의 기억을 한 번도 잊은 적 없으셨던 분이다. 아들을 출산하던 날 커다란 꽃바구니를 들고 아이의 울음소리가 세상 밖으로 나올 때까지 어머니와 함께 기다려 주셨고, 이후로 매년 생일날은 아버님이 보내시는 꽃바구니를 받았다. 그리고 꽃 바구니 안에는 꽃 보다 더 귀한 사랑과 나를 이뻐하시는 아버님의 마음도 함께 들어 있었다.

 

아들이 태어나고,

일 년을 육아에 전념하다 그다음 해 나는 의류 사업을 시작했다. 일하는 내내 어머님과 아버님은 아들을 정성껏 돌봐 주셨고 덕분에 나는 매장을 운영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런 아버님의 사랑은 그리 길지 않았다. 아들이 일곱 살 무렵 아버님의 몸이상 증세가 나타나기 시작하셨고 병원 입, 퇴원을 반복하는 일이 생겼다. 그것이 암투병을 알리는 시작이었고 아버님은 그 해 봄 4월 병상에 누우셨다.



 

「그때 그 시간 짧거나 혹은, 길거나,,」

아버님 생전 받았던 꽃바구니를 그대로 간직하니 이렇게 아름다운 컬러가 나왔다

암선고 7~8개월 이후로,

어머님이 병간호를 하시고 우리 부부는 이틀에 한번 이거나, 아님 매일 한강을 가로지르며 아버님이 계시는 병원으로 운전대를 잡았다.


아버님이 견뎌야 하는 하루의 고통은 너무도 길었고, 이별을 준비하는 하루의 시간은 너무도 짧기만 했다. 날로 쇠약해져 가는 아버님의 시간들을 견디는 힘겨운 시간들이었다. 그러나 아버님은 병상에서도 오히려 내게 전화를 하시며 손주의 안부와 우리를 걱정하셨다.


그해 10월,

7시를 조금 넘긴 이른 아침 아버님께 전화가 걸려 왔다. 생일을 축하한다며 꽃바구니를 보내줘야 하는데 보내 주지 못해서 미안하다는 전화였다. 그리고 생일 축하 한다는 말씀을 하셨다.


당시 아버님은 복수에 물이 차올라 호수룰 꼽고 계시던 상황이었다. 그럼에도 며느리에게 전화를 하시며 오히려 챙겨주지 못하는 생일을 미안함으로 여겼다. 당신이 몸져눕지만 않으셨으면 꽃 가득한 바구니에 사랑을 담아 보내 셨을 텐데 그러지 못하시는 마음이 얼마나 애가 타셨을까,,, 괜찮다며,, 감사하다며,,, 나는,, 전화를 끊고 한참을 힘든 눈물로 견디던 시간이었다. 그것이 아버님 생전 내가 받은 마지막 생일 선물이었다.


그리고 그다음 해 1월,

아버님은 모든 고통에서 벗어나 어머님과 우리 가족을 멀리 하시고 영원한 하늘나라로 떠나셨다.


「아버님 산소로 가는 길」

아버님 산소 뒤편

내 곁에서 떠나신, 

아버님의 빈자리는 늘 그립고, 지금도 여전한 마음이다. 아들만 둘인 집안에 시집온 며느리가 얼마나 예뻐 보이셨을까, 발을 다쳐 깁스를 하고 목발을 짚고 다닐 때도 풀어진 운동화 끈을 보시며 무릎을 꿇어 두 손으로 그 끈을 묶어 주시던 나의 시아버지.

 

아버님 생전,

당신이 세상을 떠나 본향으로 돌아가고 나면 보고 싶을 때 언제라도 소풍 간다는 생각을 하며 아버님을 뵈러 오라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우리는 해마다 기일이 찾아오면 아버님 생전의 말씀 대로 소풍을 가듯 아버님을 뵈러 간다. 

 

아버님을 만나러 가는 길은, 

서울에서 고속도로를 달려 2~3시간 정도를 가야 한다. 그리고 산 어귀에 차를 세우고 산소까지 올라가는 길은 비포장된 흙길로 언덕을 올라가야 아버님을 만날 수 있다. 언덕을 오르는 겨울 길가엔 앙상한 나무 가지들만 무성할 때다.

 

국화꽃 한 다발을 들고 언덕길을 오를 땐 아버님 생전의 추억이 떠오른다. 옛 기억이 바람에 실려오는 그 길가엔 벚꽃이 화사하게 피어오는 봄이 찾아오고, 풀벌레가 한나절을 울어대는 여름이 찾아오고, 가을길엔 밤나무 숲이 무성히 자라 입 벌린 알밤들이 땅 위에 뒹굴고, 겨울길은 춥지만 아버님 생각으로 화로 같이 따스한 마음이 드는 길이다. 


「이 길에서 생겨난 그리움의 1) 시 그리고, 2) 서평」


아버님을 향한 그리움은,

아직도 여전하다. 무성히 자란 그리움의 숲엔 한 편의 시가 들어와 있다. 글은 2015년에 작성되어 월간문학에 작년에 발표가 되었으니 거의 7년여 만에 노출된 셈이다. 꽤 오랜 시간 묶여 두긴 했으나 사실, 그간 여유로운 시간이 그리 많지 않았기 때문에 이것을 다시 펼칠 시간도 없었던 것 같았다. 다행히 글이 밖으로 나오고 당시의 마음을 다시 떠올리는 시간을 갖게 되었다. 다음과 같은 "사랑의 길"은 잘난 글은 아니지만 읽는 모든 독자들에게 따스한 사랑으로 전해지길 바라는 마음이다.

 

1) 시 


사랑의 길

 

내 그리움의 길은

당신을 만나러 가는 길 

이 길을 걷다 보면

옛 기억이 바람에 실려와

벚꽃이 화사한 봄날이 찾아오고

풀벌레가 한나절을 울어대는

여름이 찾아오고

밤나무 그늘 아래

하늘을 향해 입 벌린 알밤이

팔 베개하고 누워

가을 길을 걸어가는 길

시린 겨울날에도

따스함이 온몸으로 퍼져

화로가 되는

내 그리움의 길에는

당신의 손길이 아니 간 곳 없는

헌신적인 사랑의 길 

[2022. 월간문학 10월호 게재. 경기매일 게재(2022.12.5)]

 

2) 서평

 

사랑에 길이 있고 정답이 있었다면 사랑의 가치는 없을 것이다. 오직 자신이 만들고 자신만이 가는 길, 그게 사랑의 길이다. 자신이 만들었기 때문에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길을 가게 되고 오직 자신이 개척하여 만들어간 길은 남은 따라오지도 못한다. 나를 던져 그대를 얻고 그대의 사랑이 내 가슴에 안착했음을 확인하고도 길은 끝이 없어 제대로 찾지를 못하는 게 사랑의 길이다. 인류는 첨단 과학을 이뤄내 많은 것을 개척하고 진행하면서도 오직 사랑만큼은 원시적인 상태로 발전시키지 못한다. 그것은 사랑은 마음의 이동이고 그 이동은 보이지도 않고 소유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런 사랑을 왜 하면서 괴로워해야 하고 아픔을 참아야 하는가. 사랑이라는 난제는 어떻게든 풀어보려고 노력했으나 영원히 풀지 못할 운명이다. 려원 시인은 그런 사랑의 길을 서슴없이 간다. 남들은 전혀 모르고 아무도 가보지 않은 길을 혼자 간다. 그 길 끝에는 당신 있고 옛 기억을 풀어줄 사연이 있다. 그러나 품을 수도 없으며 찾지도 못한다. 당신의 손길이 아니 간 곳은 없으나 지금 만져보면 체취도 느껴지지 않는다. 그게 헌신적이었다는 것을 알면서도 멈추지 않는다. 가만히 있어도 따스함이 느껴지고 온몸이 화로가 되게 하는 당신은 나와 함께 영원히 있는데 보이지 않고 만져지지 않는가. 사랑은 모든 것을 주기도 하지만 잃게도 한다. 첨단을 걷는 삶에 무슨 마술을 부려 자꾸 이끄는가. 시인은 다시 강조한다. 아무리 어렵고 힘들어도 나의 사랑 길은 멈추지 않겠다고…    

-[이오장] 경기매일 2022.12.5


<서평의 이오장 프로필>

이오장 시인(1952~)은 한국문인협회 상임이사 겸 사무총장. 부이사장을 역임하였으며, 국제펜 한국본부 이사. 한국 NGO신문 신춘문예 운영위원으로 활동하며 부천문인협회 명예회장으로 지역문단의 발전에 헌신하고 있다. 고등학교 때부터 시를 써왔으며 <믿음의 문학>을 통해 등단했다. 등단 이후 해마다 작품집을 발간했으며 잠시도 쉬지 않고 글을 발표해 주위 사람들을 놀라게 한다.


첫 시집[바람꽃을 위하여]을 발간한 이후 매년 시집을 내면서 꾸준하게 문학지에 작품을 발표하여 어디까지가 끝일지 모르는 왕성한 창작 활동을 보여 주고 있다.


저서로는 [왕릉] [아버지, 아버지] [꽃의 단상] [날개] [99인의 자화상] [고라실의 안과 밖] [꽃구름 탔더니 먹구름, 나룻배 탔더니 조각매] [상여소리] [이게 나라냐] [나무가 생명이다] 외 다수의 작품들이 있다. 




【에필로그:사랑의 방법과 종류와 그 크기는 다양하고 모두 다르다. 사랑을 주는 방식이나 받아서 다시 돌려주는 사랑,,, 삶의 길을 걷다 보면 기쁨과 행복만 있을 순 없다. 때론 힘겨움의 길을 걷기도 하고 아픔의 길을 걷기도 한다. 아픔이란 그것이 육체이든 정신적이든,,, 그러나 그것을 잘 견디고 지나가는 것은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의 숙제 이기도 하다. 숙제를 하는 동안 힘들 수도, 어려울 수도, 잘 풀리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완성작으로 태어 났을땐 힘들고 어려운 길을 잘 지나왔음을 후에야 깨닫게 된다. 깨달음, 그것이 선이든 후이든 인생은 미완성이라서 완성작으로 가는 걸음이기에 그 걸음을 한 발자국씩 내딛을 때마다 사랑의 발길이 되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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