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식사를 하던 도중에 아이가 제대로 하지 않은 부분에 대해 엄한 목소리로 크게 얘기했더니 눈물을 흘리며 입속에 있던 음식물을 채 삼키지도 못하고 토하고 말았다.
그때 알았다. 이 아이는 고양이 털 알레르기만 있는 것이 아니라 어른 큰소리 알레르기도 있다는 것을.
설레는 마음으로 초등학교에 입학한 아이는 며칠 뒤부터 불안해 보였다.
학교를 다녀온 아이가 한 마디씩 툭툭 던진다.
"반 친구들이 너무 떠들어서 선생님이 조용히 하라고 소리를 쳐"
"친구들이 가만히 있었으면 좋겠어"
"선생님이 너무 무서워"
딸깍! 예민 스위치가 켜진 순간이었다.
초등학교 1학년들이니 딱딱한 책상에 오래 앉아있지 못하고 쉬는 시간에는 더 뛰어다녔을 것이다.
선생님께서는 당연히 모두가 들릴 수 있는 큰 소리로 얘기하셨을 것이고 통제되지 않는 몇 학생에게는 좀 더 엄한 표정으로 더 크게 하지 않았을까 싶다.
나중에 전해 들은 바로는 1학년 담당 선생님들 중에서 가장 무서운 선생님이 아이반의 담임이라고 했다.
게다가 학교 부설유치원에서 나 좀 산만해요 하는 아이들이 그 반에 다 모였다고 한다. 그러니 선생님의 엄한 목소리는 당연했다. 선생님의 큰 목소리가 자신에게도 향한다고 생각한 아이는 마음이 얼어붙기 시작한 모양이었다. 그 얼어붙은 마음에 성에처럼 불안감이 모습을 드러내었다.
학교에 가있는 아이의 얼어있는 마음을 어떻게 하면 조금이라도 녹여줄 수 있을까 고민하던 차에 학교 알림장을 받았다.
< 입학 후 첫 알림장 >
그날 하교하는 아이의 손을 잡고 집에 오는 길에 물었다.
"내일부터 학교에 읽을 책 한 권씩 가져가야 한대. 엄마가 책 한 권씩 골라서 가방에 넣어주면 학교 가서 아침 독서활동시간에 어떤 책일까 궁금해하며 열어보는 건 어때?"
아이가 나의 제안을 흔쾌히 수락해주어 그날 밤 아이에게 건넬 책 한 권을 정해서 면지에 작은 편지를 적어 붙였다.
그날 이후 아이는 그림책에 붙여준 작은 편지를 읽고 저녁에 답장처럼 학교에서 있었던 이야기를 해주었다.
말을 많이 하는 아이가 아니라서 자세하게 얘기해주지는 않았지만급식시간에 있었던 일이나, 친구와 있었던 일을 간간히 말해주었다. 하나라도 흩어질까 아이의 말을 소중하게 한 톨 한 톨 주워 담았었다.
하루는 다양한 친구들에 대한 이해가생기길 바라는 마음으로 건넨 그림책 <내 안에는 사자가 있어, 너는?>에 대해 아이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 책 안에 있는 동물들과 비슷한 친구들이 누구인지, 물고기 같은 친구는 말이야~, 파리 같은 친구도 있어하면서 다른 날보다 더 많은 말을 하는 게 아닌가.
아이와 눈을 맞추고 웃으며 듣고 있다가 잠시 친구 얘기를 하지 않을 때 아이에게 "그럼 네안에는 어떤 동물이 있어?" 하고 물었다.
그랬더니 책에는 없는 카멜레온을 말한다.
기분이 좋을 때는 파란색(아이가 제일 좋아하는 색이 파란색이다.) 더 기분이 좋아지면 무지개색이 되는 카멜레온이 있다고 한다. 우울하면 회색이 되기도 한단다.
감정을 색깔로 표현하는 아이가 어찌나 반짝반짝하던지 미소가 절로 번졌다.
멋진 카멜레온이 엄마 아들이라 행복하다고 말해주며 함께 잠자리에 들었다.
가만히 누워서 나를 꼭 껴안고 있던 아이가 내 품을 더 파고들면서 하는 말이
"엄마 안에는 하준이라는 우주가 있어~태양도 되고 달도 되고 별도 되는"
내가 적어준 편지 글을 그대로 정확히 말하는 아이를 보며 마음이 몽글몽글해졌다.
내가 아이를 보살피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오히려 아이가 나를 보듬어토닥거려주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 순간 너무 심쿵해서 아이를 더 꼭 껴안았다.
< 21년 3월 11일 작은 편지 >
우리는 그렇게 1년 동안 하루도 빠지지 않고 그림책의 작은 편지를 들고 학교에 갔다. 반 친구들도 초등학생으로서 적응해나가면서 정돈된 학교 수업이 되기 시작했다. 가끔 들리는 담임선생님의 큰소리가 자신을 향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 아이는학교 가는 발걸음이 가벼워졌다. 퐁퐁 뛰어가기도 한다.
지금도 가끔 아이는 숨은 그림 찾기 하듯이 작은 편지가 붙어있는 그림책을 갖고 와서 내게 내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