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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초지현 Dec 02. 2022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생은 아름다워

집 밖은 코로나 경보로 나갈 수 없었다.

그 당시에는 정체를 알 수 없었던 코로나 바이러스였기 때문이다. 모두가 두려워했고, 연일 나타나는 확진자들의 이동경로를 다 공유하며  철저한 거리두기가 지켜지고 있던 때였다. 세상이 온통 안갯속에 있는 듯했다.


내 삶에 아직 빛이 비치던 시절,

세상에는 친구로 가득 차 있었지만

이젠 안개가 내려앉아

더 이상 그 누구도 볼 수 없어라.

<헤르만 헤세- 안개속에서> 의 일부분


2주간 휴무였던 직장에서 다시 2주간 무급휴가를 보내라고 한다.

사실 처음 2주 동안 쉬게 되었을 때는 무서움에서 한발 떨어질 수 있는 집콕을 할 수 있어 좋다고 생각하면서 집에서 뒹굴뒹굴할 수 있었다. 그러나 또 2주의 무급휴가가 주어지니 당장 한 달의 생활비에 차질이 생기기 시작해서 난처해졌다. 남편도 같은 직장이라 같이 집에서 쉬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휴무가 한 달로 끝나리라는 보장도 없어 보였다. 더군다나 당장 알바를 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다.

적금 들어 둔 통장을 슬쩍 들춰보았다. 한숨을 쉬고 있는데 꼬물꼬물 아이가 다가와서는 "엄마~힘들어?"라고 묻는다. '아차, 너와 함께 있었구나' 싶어 얼른 웃으며 "아니 아니~ 크게 숨쉬기 놀이하고 있었어"

과장되게 한번 더 숨을 크게 쉬고 따라 해 보라고 하니 아이가 까르르 웃는다.



대학교 때 친구들과 함께 보러 간 영화가 있었다.

<영화에 대한 스포가 있습니다>


인생은 아름다워 라는 영화를 보면서 처음에는 웃다가 나중에는 먹먹한 마음으로 울었다.

배경은 제2차 세계대전이었고 주인공은 유대인인 유쾌한 청년 귀도였다.

귀도는 특유의 재치와 유머로 도라의 마음을 사로잡았고, 그녀와 결혼하여 귀여운 아들 조수아를 얻는다. 시간이 지나 전쟁의 영향이 그들에게도 미치게 되 유대인인 귀도와 그의 아들 조수아가 수용소로 잡혀가게 된다. 엄마인 도라는 유대인이 아니라서 수용소에 갈 필요가 없지만 사랑하는 이들이 잡혀가는 상황에서 자진해서 수용소에 들어가게 된다.

수용소에 들어간 귀도는 아들에게 무서운 수용소 생활은 단체게임이 점수를 다 따면 우승자에게 탱크를 준다고 말하며 아들을 위해 최선을 다해 위트를 발휘한다. 아들 조수아는 아빠의 말을 철석같이 믿고 열심히 수용소 생활을 한다.

전쟁이 끝날 무렵 증거인멸을 위해 수용소의 유대인들을 모두 죽일 거라는 정보를 입수한 귀도는 아들을 안전한 곳으로 숨기고 아내를 찾으러 탈출하다가  잡히고 만다.

귀도는 곧 총에 맞을 것을 직감하지만 아들이 보지 못하는 장소까지 일부러 장난치듯 웃으며 우스꽝스러운 걸음으로 걸어가는데 그 장면에서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죽으러 가면서도 숨어서 지켜보는 아들에게는 게임 중이야 라며 안심시키려는 그 몸짓이 눈물 꼭지를 눌러버렸다.


영화를 보고 나오면서 나도 나중에 아이를 낳게 되면 그 아이를 저렇게 지켜낼 수 있을까? 물론 전쟁이 일어나지는 않겠지만 그 어떤 상황에서도 아이의 안전한 울타리가 되어 줄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을 했다.





코로나 팬데믹을  거치면서 총성 없는 전쟁을 맞이한 것만 같았다. 무섭기도 했고 생활방식이 변해가는 것에 적응을 하며 날카롭게 변해가는 사람들 관계에서 지쳐가기도 했다.

문득 <인생은 아름다워>라는 영화가 생각나서 종일 코로나 뉴스로 떠드는 티브이는 아예 꺼버리고 아이에게 집중하기로 했다.

아이는 우선 엄마 아빠가 종일 집에서 자신과 함께 있는 것에 너무 행복해했다.

아침에 헤어지고 나면 저녁에 만나 잠들기 전까지만 함께 했던 엄마 아빠였는데 아침에 눈떠서 종일 자신과 있으니 좋은 모양이었다.

그래,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자, 아이가 느끼는 이 행복을 지켜주자, 이 시간을 즐겨보자 하고 집안에서 아이와 놀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


우리의 첫 번째 모토는 <못쓰게 된 것을 쓸모 있게 만들기>였다. 아이와 함께 못쓰는 것들을 찾기 시작했다.

쑥쑥 크는 아이 덕분에 금방 작아져서 못 신게 된 아이 양말들을 찾아 모아서 돌돌 동그랗게 말았다.

그리고 큰 도화지를 여러 장 깔아서 동그란 양말을 붓 삼아 물감에 묻혀 톡톡 그림을 그려나갔다.

손에도 묻고 얼굴에도 묻고 옷에도 묻었지만 뭐 어때? 집인데~~ 하면서 신나게 놀았다.

모가 다 닳아서 못쓰는 칫솔로도 물감 묻혀 쓱쓱 그림을 그리고 테이프로 여러 모양으로 붙였다가 물감을 부은 후 테이프를 떼서 형이상학적인 무늬를 만들기도 했다. 밖에 나가지 못해 베란다에서 잠자고 있던 잠자리채를 가져와  걸어두고 누가 공 많이 넣나 내기도 했다. 무엇을 하든 재밌다고 깔깔거리며 웃는 아이를 보니 그래, 이렇게 지내는 것도 나쁘지 않겠구나 싶었다.


엄마 아빠에게는 당장 막막한 시간의 시작이었지만 아이에게는 행복한 시간의 시작기를 바랐다.

전쟁이 아들 조수아의 시간을 잠식시키지 않도록 노력한 귀도처럼 코로나가 아이의  시간을  건들지 못하도록 우리는 햇살처럼 눈부시게 즐기기로 했다. 우리 집에서만은 안개가 생기지 못하도록 말이다.




사진출처: daum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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