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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초지현 Oct 03. 2023

블루투스 탯줄

뒷좌석에 앉아있던 아이가  묻는다.

"엄마~나 키다고 힘들지 않아?"

운전을 하면서 후방거울을 통해 아이를 슬쩍 쳐다본다. 내내 손에 만지작거리고 있던 장난감을 보면서 아이가 나에게 묻고 있다.  아이에게는 보이지 않을 내 표정을 한껏 온화하게 만들고, 목소리에 크림 한 스푼 얹혀 대답한다.

"하나도 안 힘들어~ 너 때문에 오히려 더 힘이 나는걸~"

일하다가도 힘들 때 아이사진을 보며 힘을 낸다고 덧붙여서 말해준다.

아이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가는 것이 보인다.

아이는 한 번씩 나의 가라앉는 기분을 감지하는 능력이 있다.




태어날 때부터 원체 예민했던 아이라 주위의 변화가 스트레스로 작용하지 않을까 늘 신경이 쓰였다.

아기 때는 머리 닿아 눕는 것을 극도로 싫어해서 격렬하게 우는 것으로 불편함을 표현했다.

목이 쉬도록 울기전에 안아줘야 했다.

밥을 먹을 시간도, 화장실 갈 시간도, 씻을 시간도 주지 않는 울음이었다.

늘 좀비처럼 흐느적거리며 다니다가 아이를 업고 침대에 엎드려 잠들기 일쑤였다.

몸이 힘들어도 방긋 웃는 아이의 얼굴을 보면 마음이 녹았다. 몸도 함께 녹아 그렇게 흐느적거렸다.

'네가 나에게 이렇게 딱 붙어 있을 시간도 이 시간뿐이겠지' 하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아이가 어느 정도 커서 어린이집을 가게 되었을 때 본격적으로 일을 시작했다. 바쁜 일과 속에서 생각지도 못한 일이 터지면서 남편과의 마찰이 점점 심해지고 있었다.

바깥에서 남편과 다투고 들어간 날은 감추려고 해도 날이 선 감정들이 표정으로 드러나곤 했다.

휘몰아치는 일도 일이지만, 사람관계에서 지칠 때 더 가라앉는 나는 그 표정을 좀처럼 숨길 줄 모른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어느 정도 가면을 쓸 줄도 알아야 하는데 그 가면의 두께가 여전히 얇아 여실히  표정이 다 드러나는 듯하다.


아이에게는 평소와 다름없이 행동했다고 생각했는데 그렇지 않았음을 알게 되었다.

오랜만에 시간이 비어 어린이집에 있는 아이를 데리러 갔다. 아이가 나올 채비를 하는 사이  문 앞에 와 계셨던 원장 선생님께서  " 혹시 집에 무슨 일이 있?"라고 물으신다

아이가 어린이집에서 예전과 다르게 불안해 보인다고 하신다.

그때서야 아뿔싸, 아이가 나의 감정을 고스란히 느끼고 있었구나 싶었다.

아이 앞에서는 싸우는 모습을 보이지 않아 모를 거라고 생각했는데 엄마아빠의 미묘한 신경전을 느끼고 있었구나.

문득 아이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엄마아빠가 만든 분위기의 짓누르는 무게감으로 아이는 그렇게 조용히 있었던 모양이었다. 얼마나 그 무거운 공기가 힘들었을까.

너와 연결되어 있음을 잠시 잊었다.




아이는 작은 태아로 내 뱃속에서 자라나면서 탯줄을 연결했다. 그 탯줄로 내가 먹는 음식으로 영양소를 공급받고 깊이 들이쉬는 숨으로 산소를 공급받았다. 사랑하는 마음은 늘 속삭여주는 목소리로 전해졌을 것이다.

출산으로 아이가 태어나면서 생물학적  탯줄 끊어졌지만  이내 보이지 않는 우리만의 탯줄로 여전히 우리는 연결되어진다. 


이제는 아이가 나에게 그 탯줄로 사랑과 위로를 전해주어 나를 숨 쉬게 한다. 내가 아이에게 준 영양소와 산소 이상의  사랑을 전해주면서 말이다.

노폐물 같은 슬픔과 화는 넓은 공간으로 퍼뜨려 희석시키고 온전히 사랑만 전달할 수 있는 탯줄로 단단하게 우리 사이를 이어야겠다.


점점 기술이 발달하는 요즘,  블루투스 탯줄은 우리가 떨어져 있어도  세상 어디를 가도 연결될 것이다.







사진출처 :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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