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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초지현 Dec 22. 2022

엄마 냄새가 남아 있는 그곳에

엄마 까투리_권정생 글|김세현 그림

[내향점]


집 근처에 그림책 카페가 있다.

생과일주스를 같이 파는 곳이라 정말 애정하는 곳이다.

인위적인 과일 원액이 아니라 직접 과일을 갈아서 만들어주기 때문이다. 아이들을 생각하는 사장님의 배려가 엿보인다. 그림책 또한 다양하게 구비되어 빽하게 꽂혀있다. 꿈에 그리던 카페가 실존하는 것이다.


그 카페에서 만난 그림책이 <엄마 까투리>였다.

읽으면서 눈물을 흘리니 아이가 엄마 왜 울어?라고 묻는다.

9세 아이가 읽을 때는 그냥 숲 속 까투리 이야기였나 보다.


얼마나 뜨거웠을까 엄마 까투리의 마음이 되어 울고

얼마나 엄마가 그리울까 아기 까투리들의 마음이 되어 울었다.

눈물 콧물 흘리고 있으니 사장님이 휴지를 건네며 "그 책 슬프죠?"라고 하신다.

그림책을 읽으면서 이리 눈물을 뚝뚝 흘린 것은 처음이었다.




<엄마 까투리> 내용은 산불이 나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산불이 번지면서 산속 동물들이 불을 피해 도망간다.

이제 갓 태어난 9마리의 아기 까투리가 있는 엄마 까투리 불길에 놀라 혼자 푸드덕 날아오른다.

뜨거운 불길을 피해 몇 번의 푸드득으로 날아올랐다가  새끼들이 눈에 밟혀 곧 다시 불길 속으로 뛰어든다.

엄마를 찾아 이리저리 흩어져있던 아기 까투리들을 품에 안은 엄마 까투리는 온몸으로 불길을 맞이한다.

행여나 불길이 새끼들한테 덮칠까 봐 꼭꼭 보듬어 안는다.

그러고는 정신을 잃는다.

하루 만에 꺼진 산불은 모든 것을 다 태워버렸다.

불에 새까맣게 탄 엄마 까투리 안에서 9마리의 아기 까투리들이 솜털 하나 다치지 않고 살아 있었다.

쑥쑥 큰 꿩 병아리들은 불 탄 산자락을 몰려다니며 먹이를 먹고 다시 모여들어 죽은 엄마 날개 밑으로 들어간다.

엄마 냄새가 남아 있는 그곳에 함께 모여 보듬고 잠이 드는 것이다.




글을 쓰신 권정생 작가님도, 그림을 그린 김세현 작가님도 살아생전 고단한 삶을 사셨던 어머니를 생각하며 이 책을 셨다 한다.


얼마 전 엄마와 처음으로 싸우면서 내 인생의 근간이 흔들린다고 소리를 질렀는데.. 알고 보니 그 뿌리를 잘못 파헤친 느낌이다.

엄마의 고단한 삶을 너무도 잘 알고 있었던 지라 엄마를 이해하는 장녀로 40년 넘게 살았다고 생각했는데 이제 와서 보니 나는 여전히 아이처럼 투정을 부린 거다.

여전히 엄마 냄새가 나는 그곳을 찾아 들어가려고 했던 것이다.

엄마도 외할머니 할아버지의 사랑스러운 막내딸이었고, 연약한 존재였지만  세월의 모진 바람에 우리를 지켜주려 꼭 껴안고 있었다는 것을 이제야 어렴풋이 달았다.


세월의 모진 바람에 새까맣게 타버린 부모 마음이라 품속 자식에게 따뜻한 말 한마디 건네지 못한 건 아닌지.

어쩜 우리의 부모들도 하늘나라로  먼저 보낸  엄마의 내음이 사무치게 그리운 건 아닌지.




[외향점]


유명한 <강아지똥>, <몽실언니>를 비롯하여 많은 이야기를 쓰신 동화작가 권정생 선생님의 마지막 그림책이라고 한다.


동양화를 전공하여 서예작가로 시작한 김세현 작가는  그의 서예 필체 같은 그림 이 책에 담았다.

수묵화 같은 그림체뿐만 아니라  동식물의 테두리 색 변화로 사건을 짐작케 한다.

불길에 휩싸인 모든 것 붉은 테두리로  것이 인상 깊었다.


<엄마 까투리>는  자못 슬프고 무거운 데다 비장미가 너무 강해 어쩌면 신파적으로 보일 수도 있지만, 김세현은 생명력 있는 필선과 화려한 색감의 변화를 통해 글의 무거움을 덜어내고 엄마 까투리에서 새끼들로 이어지는 기운생동의 생명력을 한껏 불어넣었다
_ 낮은 출판사 2013년 2월 20일 글 중에서
<앞표지>
<앞면지의 권정생 선생님의 글>




사진출처: 낮은 출판사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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