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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초지현 Dec 09. 2022

버리지 아니하면

책 트리가 됩니다.

아이가 알사탕을 좋아한다.

그리고 매일 문방구를 들러야 한다.

문방구에 가면 휘휘 오늘은 또 뭘 사볼까 구경하다가 꼭 하나씩은 들고 나온다.

매일 사탕을 챙겨 먹게 된 이유도  백희나 작가의 <알사탕>이라는 그림책 때문이다.

혼자 놀던 동동이는 문방구에서 알록달록한 알사탕을 산다.

알사탕에서 소파의 목소리도, 아빠의 속마음도, 하늘나라에 있는 할머니 목소리도 듣게 된다.

아빠의 잔소리가 고딕체로 한 바닥 가득 적힌 페이지는 숨도 쉬지 않고 읽기를 한다.

이때는 딱딱한 어조가 필수다. 그러곤 엄마도 이런 마음이야?라고 묻는 아이에게

아니, 뒤에 아빠 수염 모양 같은 까칠한 사탕을 먹었을 때 들렸던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엄마는 늘 그 마음이야.


아이가 사탕을 먹으며 이건 어떤 소리가 들릴까 하면서 눈을 찡긋하는데,

다 알거든. 너 달달한 사탕 좋아해서 먹는다는 거.


우리 가족이 사랑해마지않는 백희나 작가의 책들은 톡톡 튀는 상상력과 그녀의 손길로 만들어진 여러 소품들이 담겨있다. 2020년에 아동문학계의 노벨상이라고 불리는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상'을 수상했을 때는 우리 일처럼 기뻐했다.

신간이 나올 때마다 기다렸다가 구입해서는 너덜 해질 때까지 읽고 또 읽었다.

아이가 신생아일 때부터 읽어준 <구름빵>에서부터 최근에 나온 <연이와 버들 도령>까지 아이가 자라는 만큼 그녀의 책도, 모서리의 닳고 해짐도 쌓여갔다.


아이가 초등학생이 되고 나서 남편은 집안 곳곳에 쌓여있는 그림책을 처분하자고 하는데 동의할 수 없는 나는 남편을 설득할 이유가 필요하다.




보통 그림책은 나이가 어린 아이들이 본다는 편견이 있는 듯하다. 물론 그림으로 표현하는 의성어, 의태어 중심의 그림책은 이미 말을 하기 시작하는 아기가 있는 집으로 입양을 보냈다.

그러나 지금 소장하고 있는 그림책들은 아마 내가 호호 할머니가 되어서도 이고 지고 있을 듯하다.

가끔은 하고 싶은 말이 정돈되어 나오지 않거나, 위로할 수 있는 적당한 말이 떠오르지 않을 때

내 마음을 담은 그림책을 사서 선물한다.

그림책은 긴 호흡이 아닌 비교적 짧은 시간에 그림과 글로 사람의 마음을 어루만져주는 힘이 있기 때문이다.



아이를 너무 사랑하는데, 그 맘과 달리 자꾸 화를 내고 있는 자신이 슬프다고 말하는 아이 친구 엄마에게

"괜찮아, 아이는 어떤 상황에서도 엄마를 사랑해. 엄마가 행복해야 아이가 행복해"라고 말을 해주어도 닿지 않을 것 같아서 대신 한 권의 그림책을 전했다.

<방긋 아기씨> 그림책 속의 한 장면이 그녀를 톡 건드려 "언니, 내가 행복해야겠어요~"라고 말하는데 마음이 잘 전해진 듯싶어 다행이었다.

어떤 방법에도 웃지 않는 아기씨의 눈동자에 엄마의 모습이 비친 장면이, 엄마를 보고서야 웃게 된 아기씨가 그녀를 보듬어준 듯했다.



이렇듯 그림책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힘을 가지고 있다.

초등학생과 중고등학생, 심지어 어른들까지도 그림책을 통해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다

꼭 긴 한 권의 책을 다 읽어야만 사고가 확장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긴 호흡으로 책 읽을 시간이 없는 중, 고등학생들에게 한 권의 그림책을 그 자리에서 읽어주고 함께 생각을 나누고, 그에 대한 여러 활동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입시에 지친 그들에게 위로가 될 수 있는, 학교도서관의 활동들이 이루어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문헌정보학을 석사과정으로 공부하면서 가장 안타까웠던 부분이 우리나라의 입시 중심 교육이었다.

하긴 30년 전 내가 고등학교 다닐 때부터도 교실 3개 정도의 크기였던 학교 도서관이 1년 뒤에는 교실 2개의 크기로 축소되고 나중에는 교실 한 곳에 그 향긋한 고서들을 다 쌓아둬야 했다.

하물며 지금은 오죽할까..


학교 도서관이 활성화가 되어 그저 조용히 책만 읽거나 대출만 해가는 곳이 아닌 시끌벅적한 도서관이 되기를 감히 상상해본다. 그림책이 어린이도서관뿐만 아니라 학교도서관에도 꼭 함께하기를.



그림책은 미술뿐만 아니라 음악과 글쓰기, 토론도 가능한 매개체이다.

요즘은 그림책 심리코칭도 하는 추세이다.

가령 <알사탕>에 나오는 이야기를 읽고 각자가 먹고 싶은 알사탕이 어떤 것인지(각자의 심리상태 분석)

<나는 개다>에서처럼 개의 입장에서 인간을 바라보았을 때의 이야기라던지(타인이나 사람이 아닌 동물에 대한 이해)

<구름빵>을 읽고 함께 빵을 만들어본다던지(요즘 유행하는 쿠킹클래스) 등 다양한 활동이 가능한 것이다.


나는 그림책의 무한한 힘을 믿는다.

그래서 2023년에는 그림책 속을 거닐며 나만의 그림책 숲을 가꿔볼까 한다.



고로 그림책들을 버리지 않고 한 곳에 트리를 만들어둘 겁니다.
들었죠! 남편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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