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왜 우리는 '회피형'에게 끌리는가?

회피형 애착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에게

by 은서

내 사랑의 역사를 되돌아 본다. 그 중에는 가장 행복했던 순간도, 가장 괴로웠던 순간도 모두 녹아있다. 내 인생에 가장 역동적인 감정이 휘몰아치던 그 때 나는 어렸고, 정답이라 믿는 것들을 지키기 위해 싸웠다.


서른 중반. 곧 후반을 바라보는 나는 숱한 연애경험을 뒤로도 아직도 사랑에 울고 웃으며, 여지껏 정답은 찾지 못했다. 다만 이십대의 나보다는 조금 성숙했는지 이제는 사람을, 사랑을 받아들이는 데 익숙해졌다.


내가 처음 '회피형'이라는 단어를 들었을 때, 그것은 꽤 낯선 개념이었다. 누군가를 향해 다가가고 싶은 마음과 동시에, 그 마음을 밀어내는 힘. 그 모순적인 흐름은 마치 자석의 양극처럼, 서로를 끌어당기면서도 끝내 맞닿지 못하게 하는 어떤 신비로운 힘처럼 보이기까지 했다.


나는 감정적으로 자유롭고, 독립적이면서도 자신의 색깔이 확실한 사람들에게 매력을 느끼곤 했다. '자기 자신'을 잃지 않으면서도 사회적으로 단단한 사람. 사람을 경계하는 나는 첫 만남부터 저돌적으로 다가오는 사람들이 아니면 연애가 성사되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자신을 잃지 않는 모습이 나에겐 호기심을 자극했다. 적당한 거리감은 사람을 경계하는 나에게는 안전하게 느껴지기까지 했다.

그래서였을까. 회피형 인간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내 지난 연애가 고통스러웠던 이유를 알게 됐다. 무엇보다도 지금, 나는 또 다른 회피형과 사랑에 빠져 있으니 나의 고통은 끝나지 않는 숙제처럼 남아있다.


'회피형 인간'을 마주한 첫 순간은 늘 찬란하다. 그들은 세련되고, 자유롭고, 어떤 면에서는 인간적인 한계를 초월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 찬란함 뒤에 숨겨진 그림자는 생각보다 짙고 무겁다. 관계가 깊어질수록, 그들은 벽을 세우고, 나를 그 벽 밖에 세워둔다. 그 순간부터, 나는 관계의 주체가 아니라 관찰자가 된다.


아이러니하게도, 회피형과 만나는 많은 사람들, 우리는 이 벽을 허물고 싶어 한다. 내가 사랑을 주면, 그들도 언젠가는 나에게 같은 사랑으로 화답할 거라는 믿음. 그러나 그 믿음은 점점 의심으로 변하고, 결국 나를 갉아먹는 불안으로 이어진다. 결국 많은 사람들이 그 속에서 얻은 트라우마로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내는 이유다.

회피형 인간에 대한 유튜브 댓글을 보아도, 회피형을 경험한 사람들의 많은 증언이 이어지고, 결국은 '회피형은 피하는 게 답이다'라는 말로 귀결된다.


하지만 나는 아직도 회피형 인간을 사랑한다.

정확히 말하면 회피형 애착유형을 가지고 있는 그 사람을 사랑한다.

나의 품이 허락하는 한 그들의 고통까지 품어줄 수 있기를 희망한다.

그동안 내가 만나 온, 그리고 사랑하는 회피형 인간들에 대해 더 깊이 알고, 이해하고, 그 속에서 내가 느끼는 감정들을 천천히 곱씹어 보려고 한다.


그들은 사랑받을 자격이 없는 사람들이 아니라, 사랑을 갈망하지만 그 보다 더 큰 두려움에 휩싸여 있는 사람들이라는 믿음으로.


그 두려움은 대개 어린 시절부터 형성된 깊은 상처에서 비롯된다. 부모의 무관심, 혹은 과도한 통제, 예측할 수 없는 환경. 그들은 어릴 때부터 '혼자서 버텨야 한다'는 무의식적 학습을 반복하며, 결국 타인에게 의존하지 않는 전략을 택하게 된다.


이 프로젝트는 나의 개인적인 경험으로 이뤄진다. 나는 스스로 수많은 관계 속에서 나는 왜 비슷한 패턴을 반복하는지, 왜 하필 회피형 인간을 사랑하게 됐으며, 정말 그들을 사랑해선 안 되는지. 이 프로젝트를 통해 나의 경험을 정리하고 스스로 답을 찾아가 보려고 한다.


나는 이 글을 통해 독자들과 함께 이 질문을 나누고 싶다. '왜 우리는 회피형 인간에게 끌리는가?'라는 질문은 결국 '나는 어떤 사람인가?'라는 더 큰 물음으로 이어진다. 상대방을 분석하고 탐구하는 과정 속에서, 우리는 본능적으로 자신을 마주하게 된다. 나의 결핍, 나의 욕망, 나의 상처. 그 모든 것이 관계라는 거울 속에 투영된다.


이 글을 쓰며 나는 단순히 '회피형 인간'을 규정하거나 비난하려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들의 세계를 들여다보고, 그 안에 숨겨진 두려움과 갈망을 이해하려 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내가 진짜 원하는 것은 무엇인지, 진짜 나다운 관계는 어떤 것인지 탐색하고 싶다.


이 연재가 한 사람의 심리적 여정이자, 우리가 어떻게 서로를 통해 성장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작은 기록이 되길 기대해 본다.


당신도 혹시, 누군가의 벽 앞에서 망설인 적이 있는가? 혹은 그 벽을 세운 적은 없는가? 이제, 그 벽을 바라보는 시선을 조금 더 가까이 가져가 보자. 그 안에는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복잡하고 더 인간적인 이야기가 숨어 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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