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선택의 기술 이은영 Oct 17. 2018

앞머리 자를까, 말까

대신 선택해 드립니다 선택 전문가의 대신 선택

앞머리 자를까, 말까



내겐 언니 한 명이 있다.

나는 이은영.

언닌 이은정.

우린 딱 두 살 차이다.


2살 차이 나는 자매끼리는 ‘야, 너, 니가’라는 말도 가끔 하던데

나는 그 모습을 처음 접했을 때 정말 기겁을 했다.


내 언니와 나 사이에선 절대 일어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상상조차 불가하다.

성인이 된 지금도 내 휴대폰에 언니 전화번호는 ‘언니님’으로 저장이 되어있다.


왜냐고? 

웬 언니님이냐고?


그것은 아주 간단한 이유이다.

언니님이 그렇게 시켰기 때문이다.


내가 휴대폰을 처음 샀을 때 언니님이 


“은영아, 언니는 언니님으로 저장해 주겠니?”


라고 했고 나는 아무런 의심이나 저항 없이 그렇게 했다.

그 후로 지금도 그렇다.


왜냐하면 

그게 너무 당연한 거니까 말이다.

나는 그냥 그렇게 알고 언니랑 30년을 같이 살았다.


그런데 그 천하의 언니님에게 어찌 ‘야, 너, 니가’와 같은 

호칭을 쓸 수 있단 말인가?


그런데 TV에서도(난 TV라서 그런 줄 알았다.) 

실제 현실에서도(그 자매만 그런 줄 알았다.)

자매 사이에  ‘야, 너, 니가’와 같이

충분히 익혀지지 않은 날 것 표현이 

오고 가는 것을 목격하고야 말았다.


나는 이 충격적인 소식을 언니에게 전했다.

언니는 미동도 없었다.


그저 ㅉㅉㅉ


쯧쯧쯧 이런 반응이었다. 

심지어 눈도 감았다.


역시나 언니님 다운 리액션이 아닐 수 없다.


어려서부터 부모님은 맞벌이를 하셨다. 

그래서 언니와 단둘이 있었던 적이 많다. 

그런 어린 내게 그 역시 어렸던 언니님은 내게 이런 말을 자주 했다.


“은영아, 부모님 안 계실 때는 말이야,
언니가 네 제2의 부모다.”


나는 정말 그렇게 생각했던 것 같다.

그래서 언니는 감히  ‘야, 너, 니가’는 상상할 수 없는 언니님이시다.


그런 언니님은 적어도 내가 아는 사람들 중 가장 헤어스타일을 자주 바꾸는 사람이다.

다른 곳에는 돈을 아끼면서도 헤어살롱은 정말 자주 간다.


분명 긴 머리였는데 단발로 잘랐다가 

그것도 짧다고 생각했었는데 채 그 충격이 잊히기도 전에(너무 몽실몽실 했어.)

연예인 아니면 소화하기 힘든 숏커트를 했다.

언니의 머리카락에는 마치 라푼젤의 그것처럼 마법의 힘이 깃든 것이 분명하다.

분명 숏커트였는데 어느새 또 길러서

나에게 물었다.



“은영아, 언니 앞머리 자를까, 말까?”


내 선택과 상관없이 언니의 앞머리는 

있다가 또 금세 없어지고(말했지 않은가, 마법의 머리카락)

또 그 긴 앞머리는 쌍둥 잘려 나갔다.


비단 이것은 언니님만의 행동이 아니다.


여자라면 100%다.


자신의 긴 옆머리를 이용해

그것을 곱게 접어

앞이마에 대어 보았을 것이다.


이것은

자체 모발을 활용한 

[앞머리 있음] 시뮬레이션의 현장이다.


그리고 그 해에 유명한 드라마의 여자 주인공이

단발로 나왔다 하면 

이 행동은 위치만 바꿔 그대로 재현된다.


자신의 긴 옆머리를

곱게 접어

(이번에는 양 쪽 옆머리 다)

마치 단발처럼 연출해 본다.


이것은

자체 모발을 활용한

[단발머리일 때] 시뮬레이션의 현장이다.


여자들은 항상 묻는다.

그리고 연예인의 헤어스타일을 그렇게

자신의 핸드폰에 저장한다.


그러면서 양심의 가책은 일어나는지 스스로 속삭인다.


“누가 얼굴 하제, 헤어스타일은 같을 수 있잖아.”


당신도 알지 않는가, 연예인 헤어스타일은 100% 드라이발이다.

절대 몇 달에 한 번 가는 미용실에서 구현할 수 없는 스타일이다.

똑같이 그 연예인 이름을 딴 파마를 해도 
똑같이 그 연예인 이름을 딴 커트를 해도
매일 드라이를 하지 않으면 그 스타일은 나오지 않는다.


헤어스타일만큼은 주변인들의 스치듯 지나간

무심한 그 말을 따르면 된다.

헤어스타일 결정장애는 분명 해결할 수 있으나

당신이 주변인들의 말을 안 들어서 생긴다.


그들의 말을 잘 떠올려보자.


은영아, 언니 단발로 자를까, 말까?
언니 제발, 자르지 마! 몽실이 같다고!!!


하지만 언니는 잘랐다.

그리고 딱 한 달 지나서 또 물었다.


“은영아, 언니 헤어스타일이 마음에 안 드는 게

앞머리 때문인 것 같아. 언니 앞머리 자를까, 말까?”


“언니 제발, 그 머리에 앞 머리까지 있으면 이상해.”
(애봉이라고!)(말 못 함)


하지만 언니는 또 앞머리를 잘랐다.

그래서 언니가 물어보면 이제 대답을 안 하고 

언니가 원하는 쪽으로 맞춰 대답한다.


이런 사람이 가족밖에 없을까?


잠잠했던 친구들 단톡 방에 카톡이 온다.

(그 해에 유명한 드라마의 여주인공이 단발이었음.)


“ 얘들아, 나 고민이 있어. 나 단발로 자를까, 말까”


친구들 반응

1. 지겹다 이제
2. 얼굴이 달라
3. 그냥 목을 잘라라
4. 너 기억해, 그 연예인은 긴 머리도 예뻐
5. 분명 카톡 확인 숫자 1은 다 사라졌는데 대답이 없음 
그러다가 친절하게 그 여자 연예인과 질문자의 정면 사진을 클로즈업 컷으로 대비해 보냄
그냥 보낸 게 아니라 여자 주인공 헤어스타일을 얹어서 무심하게 멘트도 없이 사진만 보냄
(이거 하느라 대답이 늦었구나)


분명 친구들은 그녀의 이 같은 질문을 수십 번 하기 전에 어느 한쪽을 선택해 대답을 했었다.

하지만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고 당신의 고민은 계속된다.(그런데 왜 물어보니 자꾸)


나라고 왜 안 그랬겠나.

수도 없이 잘랐다 길었다를 반복하며 거지 헤어스타일을 견뎌야만 했다.


여자만 안다.

자른 앞머리를 없애기까지 얼마나 추리한 세월을 견뎌야 하는지를

곱게 자른 단발머리가 긴 머리가 될 때까지 얼마나 초라한 기간을 살아야 하는 지를 말이다.

우리는 그 기간을 거지 스타일 시기라 부른다.


그 해에 유명한 드라마의 여주인공이 단발이었던 날

나는 대책도 없이 쌍둥 단발로 긴 머리를 잘랐다.


그 모습을 보고 언니님이 메시지를 전송해 왔다.


“은영아, 너는 삼손인 것 같아.
너의 인기는 머리에서 나오는 게 아닐까.”


삼손[Samson]은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하고자 신이 보낸 괴력의 주인공이다. 

그 괴력의 원천은 다름 아닌 머리카락과 수염이었다. 

신의 당부를 져버리고 여자의 유혹에 넘어가 머리카락을 자르자 힘이 사라졌다.


즉 단발을 절대 안 된다는 가족의 진심 어린 조언이었다.


이후 나는 한 번도 단발할까, 긴 머리 할까를 고민해 본 적이 없다.

나는 정말 삼손인가 보다. 

잘 나가던 내 연애는 단발머리 시절은 어둑 침침한 암흑기를 겪어야 했다.


나는 정말 긴 머리가 제일 잘 어울린다. 그래서 제일 잘 어울리는 그 머리를 한다.

어깨까지 기를까 가슴까지 기를까는 고민의 축에도 끼지 않는다.

시간 없어서 헤어살롱 못 가면 가슴까지 길고 

상했다 싶어 다듬으면 어깨까지 긴 머리이다.


앞머리 자를까, 말까도 아주 간단하다.

남편이 말했다.


난 앞머리 없는 게 더 예쁜 것 같더라.


이후 한 번도 앞머리 만들 생각을 안 했다.

항상 턱선까지 그것이 내 앞머리이다.


그리고 이마에 주름이 져 그게 보기 미운 때가 오면 

앞 머리를 자를 생각이다.


그 나이쯤 되면 어려 보이는 여자의 핵심 비법

앞머리 신공을 쓰고 싶을 테니까.


앞머리 자를까, 말까

단발로 할까, 긴 머리 할까


이미 당신은 알고 있다.

분명히 당신은 알고 있다.


주변 사람들이 같은 말을 했으니까.


단지 당신이 그 말을 안 들어

더 이상 그들이 말하지 않을 뿐이다.


선택 전문가인 나에게 묻는다면 

나의 대답은 하나다.


그들의 말을 들어라.

당신의 생각과 제발 그 여자 주인공은 잊어라.

그들이 옳다.

이전 06화 익숙한 거 할까, 새로운 거 할까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