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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택의 기술 이은영 Oct 31. 2018

자고 할까, 하고 잘까

대신 선택해 드립니다, 선택 전문가 이은영의 할까 말까 LAB

한국인의 수면시간은 그냥 딱 생각만 해 봐도 짧을 게 분명하다.

24시간 편의점이 한 길 건너 마다 있고 

커피를 왜 그 시간까지 마시냐 싶겠지만 요새는 24시간 커피숍도 많다. 번화가의 술집은 새벽 3시까지는 기본으로 장사를 하고

자정이 넘은 시간에도 치맥에 짜장면, 족발, 심지어 족발의 짝꿍 쟁반막국수까지 배달시켜 먹을 수 있는 나라가 우리나라다.

누군가는 그 가게와 서비스를 이용하고 있다.

또 누군가는 그것을 제공하기 위해 가게 문을 열고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이것은 곧 이용자도 제공자도 다 안 자고 깨어 있다는 이야기다.

즉 치열한 입시경쟁과 OECD 국가들 중 최고의 노동 시간 수치를 굳이 따져보지 않아도 짐작이 간다.

안 봐도 비디오는 이럴 때 쓰는 말이었다.


한국인은 잠이 부족할 게 뻔하다.


글로벌 커피 프랜차이즈 스타벅스가 이 사실을 모를 리없다.

(역시 눈치도 빠른 별다방)

그래서 평균치로 따져 스타벅스 매장 문 닫는 시간이

프랑스 파리 8시 52분, 베를린 9시 9분, 베이징 9시 29분, 도쿄 10시다.


그럼 우리나라의 스타벅스는 몇 시에 닫을까?

대한민국의 스타벅스는 평균 10시 36분에 문을 닫는다.

전 세계에서 가장 늦은 시간이다.

우리들은 왜 이토록 늦게까지 커피를 마실까?


물론 커피 대신 다른 음료를 마실 수도 있다.

그렇다면 왜 이렇게 늦게까지 집에 안 들어가고 밖에 있는 걸까?

사람마다 다 그것의 종류는 다르겠지만 어쨌든 무언가 ‘할 일이 있으니까.’

그래서 본격적으로 공부란 것을 시작한 중학교 때부터 20여 년이 흐른 뒤에도

바쁠 때는 매일매일

덜 바쁠 때는 격일로

이 결정장애 속에서 허우적거린다.

자고 할까,

하고 잘까?

사실 난 어제도 그랬다.


샘플 원고를 출판사에 보내야 하는데 그 날짜는 분명히 내일이다.

하지만 난 자고 싶다, 피곤하다고!!!


물론 일을 싸 들고 집으로 온 거부터가 잘못된 시작이었다.

하지만 난 도무지 사무실에서는 일이 안돼서

집에서 샤워도 하고 편안한 옷으로 갈아입고 글을 쓰려고 한 것뿐이다.

(이 나이가 돼도 참 순진한 생각을 잘도 한다.)

하지만 씻고 운동복을 입고 로션을 바르고 머리를 질끈 묶으니

이것은 내가 자기 전 했던 행동들과 정확하게 일치했다.

이미 내 몸은 ‘집에 왔으면 이만 자야지’라는 사인을 보내고 있었다.

자꾸만 오늘따라 평범한 내 침대가 마치 Heaven Bed라도 되는 냥

그렇게 푹신해 보일 수가 없다.

물론 불안함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중학교 때부터 매번 안 하고 자면 자고 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자고 할까’의 유혹에 빠질 때면 항상 이런 생각이 승리한 것이다.

‘자고 일어나면 컨디션이 좋아질 거야.’

‘자고 일어나서 하면 더 이상 졸리지도 않을 거야.’

‘그래서 집중도 엄청 잘 될게 분명해!!!’

하지만 우리 모두가 알고 있다. 

절대 맞춰 놓은 알람 시간에 벌떡 일어날 수 없다는 것을.

간신히 몸을 뜯어 일어나더라도 어제 자고 해야지 할 때보다

더 피곤했으면 피곤했지 절대 개운해지지 않다는 걸.

그럼 하고 자야 할까? 이것도 그리 간단한 문제는 아니다. 

사람의 의지력에는 총 양이 정해져 있다.


즉 참고 버티면서 하는 것은 무한대의 에너지가 아니라는 점이다.


정신 똑바로 차리고 하면, 노력하면, 바늘로 허벅지를 찌르며 

에너지 드링크를 들이켠다고 해서

이미 소진된 의지력이 되살아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즉 하고 자고 싶어도 내 의지력이 이미 바닥난 상태에서는 

잠 말고는 딱히 다른 방법이 없다.

그럼 어쩌라고!

아주 간단하게 정리해 보겠다.

첫 째, 절대 자고 하는 건 없다. 이 점을 100% 수용하자.

자고 나서 맑은 정신과 또렷한 집중력이 돌아올 거라는 가정은 도대체 왜 하는 것인가?

잘 생각해봐라, 12시간을 잔들 당신 몸은 정말 개운했는가?

그랬던 적이 있는가?

많이 자면 많이 자서 피곤하고 

많이 안 자면 수면 시간이 부족해서 피곤하다며 

‘역시 잠이 문제가 아니라 운동을 해야 돼.’ 라며 헬스장을 기웃거렸을게 분명하다.


자는 것은 습관이고 패턴이다.


매일 7시에 일어나던 사람이 새벽 4시에 일어나서 해야지 라고 생각한다고

갑자기 그렇게 되는 종류의 것이 아니다.

게다가 당신은 자고 해야지 라는 약간의 불안한 마음으로 잘 테고

푹 자지도 못한 채쪼갠 잠을 자야 한다. 

즉 애초에 숙면이 불가능한 상태였다.

절대 자고 하는 것은 없다.

아예 ‘자고 해야지’를 나의 선택지에서 지워버려라.

즉 잔다는 것은 안 하고 그 일을 다른 날로 미룬다는 것을 뜻한다고 생각하자.

왜냐하면 누차 이야기했듯이 자고 새벽에 하는 것은 없으니 말이다.

그래서 원고 마감일에 쫓기던 나는 어젯밤에 그냥 안 하고 잤다.

자고 해야지가 아니라 [자는 것 = 안 하는 것]이다.


즉 나는 자기로 했고(정확히 도저히 안 자고는 안 되겠어서 자기로 했고)

그것은 출판사에 원고를 제 때 안 보낸다는 것을 뜻한다.

그럼 나는 다음 날 일어나 출판사에 이런저런 그럴듯한 변명을 대고

최대한 비굴하고 측은한 마음이 들게 사과의 마음을 전한 후

다시 빛의 속도로 낮시간 동안 초인적인 힘을 발휘해 원고를 쓰면 되는 일이다.

그리고 스스로에게 안 하고 잔 것에 대한 심심한 위로의 메시지를 보낸다.

출판사에 내 신뢰도는 좀 깎이겠지만

그래도 멍하게 밤에 안 하고 햇빛 비추는 낮에 하니깐

더 밝고 힘 있고 빛나고 이글이글대는(그 낮에만 비춘다는 해님의 정기를 받아서)

좋은 원고가 나올게 분명해.

어제 역대급의 속도로 난 깊은 잠에 빠져 들었다.


그리고 오늘 이렇게 하루 종일 마치 사무실의 붙박이 가구처럼

하루 종일 가만히 앉아 글을 쓰고 있다.

마치 사무실 가구들 색깔에 맞춰 보호색을 띤 파충류처럼

책상에 앉아 꼼짝도 않고 글만 쓰는 중이다.

사람이 이렇게까지 안 움직일 수 있나 싶다.

행여 엉덩이가 듀오백의 엉덩이 받침과 들러붙지는 않았는지

확인해 보고 싶지만 이제 내 엉덩이가 더 이상 주인의 말을 듣지 않는 지경이 되었다.


이것은 분명 아직도 내 엉덩이이다.
하지만 이미 그것은 시디즈의 것이 되어 버린 듯하다.


왜 우리는 항상 자고 해야지 라는 유혹에 넘어가 해야 할 그것을 미루게 되는가? 

당연하다. 몸이 지치니까 그렇다. 지치니까 자고 싶다. 

그러니까 안 될 걸 알면서도 당장의 달콤한 잠을 위해 

몇 시간만 자면 씻은 듯이 컨디션이 좋아질 거라며 스스로를 속이게 된다. 

그만큼 절실하게 자고 싶거나 당장의 스트레스와 부담감을 잊고 싶은 것이다.

아닌 걸 알면서도 정말 그 순간 그렇게 믿어버린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짓고 넘어가자. 


정말 하고자야 하는 일이라면 도대체 집에는 왜 들어갔나?

물론 어제의 나도 그랬다.

피곤하고 지치고 수분이 부족한지 화장도 뜨고

누가 양쪽 얼굴 끝에서 피부를 끄집어 잡아당기는 것처럼

얼굴이 땅겨 돌아 버릴 것 같았다.

(여자는 나이가 들면 피부의 건조함으로 인한 피부의 노화와

주름의 수와 깊이가 마치 보이는 것 같단 말이다.)

빨리 들어가서 좀 씻고 새로 장만한 꽉 쪼이는 스커트도 훌훌 벗고

극강의 편안함을 자랑하는 고무줄 장착 운동복으로 갈아입고 싶었다.

하지만 이 일련의 행동은 곧 무엇을 의미하는지 눈치챘는가?

우리가 수십 년 동안 자기 전에 했던 행동과 정확하게 일치한다.

집에 들어가서 홈 웨어로 갈아 입고 화장 지우고 머리를 질끈 묶는 모든 것이 말이다.

즉 우리 몸은 아 우리 주인이 오늘만큼은 일을 하려고 이런 행동을 하는구나가 아닌

우리 주인이 수십 년 동안 자기 전에 했던 행동을 하는구나로 느낀다.

당연하지 않은가?

왜 자꾸 하고 자려고 했는데 하필 잠이 쏟아져서 자고 하고 싶게 하냐고?

자기 전에 할만한 모든 행동을 하고 있으니까 그렇다.


즉 자고 할 생각이 아니라면 집에 들어가지 마라.

다 하고 들어가라.

하지만 꼭 집에 가야겠다면 아예 옷을 갈아입지 말아라.

절대 옷을 갈아입으면 안 된다.

그렇게 찝찝하고 불편한 상태로 다 한 후에 옷 벗고 씻고 자라.

자고 해야지라는 실현 불가능한 막연한 환상을 애초에 버리고

자는 것은 그냥 자는 것이라는 것을 받아들이자.

하지만 이 경우와 달리 절대 미룰 수 없는 일이라면 다음 단계로 진입하게 된다.

[절대 자고 하는 건 없다고 했다.]-> 그런데 정말 안 하면 큰일 난다.

[그럼 무슨 일이 있어도 해야겠다.]->즉 하고 자는 것이다.

이때 필요한 것이 바로 우리나라의 한 블록 건너 하나씩 있는 편의점이다.

핫식스나 돈을 조금 더 투자해 레드불을 산 후 미래의 에너지를 소환해서 쓰기로 한다.

신기한 것은 앞 서 이야기한 유한의 에너지 의지력이

정말 다급할 경우에는 미래의 의지력 총 양에서 조금 빌려와 현재에 쓸 수 있다는 점이다.

물론 100% 의지력이 바닥난 경우에는 불가능하지만

정말 다급한 경우에는 이 경지에 이를 수 있다.


20년 넘게 자고 할까, 하고 잘까 자체 임상 실험의 결과는 아래의 두 가지 단계이다.

첫 째, 절대 하고 자는 일 따위는 없다고 마음에 새겨 넣자.

그리고 최대한의 의지력을 소환해보자.

자고 할 수 있을 거라는 마음을 치웠는데도 

의지력이 안 생긴다면 그건 못 하는 일이라는 점을 받아들이자. 

깔끔하게 마음이라도 편하게 푹 자고 어떻게 이후의 일을 처리할지 생각하자.

그리고 제발 수년 동안 몇만 번이나 잘 준비할 때 했던 행동들을 다 한 후

하고 자야지 라고 생각하지 말자.

몸은 귀신처럼 안다.

깨끗하게 씻고 편안 옷으로 갈아 입고 머리 묶으면 바로 자고 싶다.

개운하게 집중력이 발휘되는 일 따위는 없다.

만약 의지력이 조금 되살아났다면

둘째, 정신을 바짝 차리고 자정이 넘었어도 상관없으니

카페인 과다 투약한 후 그 일을 다 끝내 놓고 자자.

가령 전혀 잘 수 없을지라도 

그것은 미래의 에너지를 소환할 만큼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다시 한번 강조한다. 자고 하는 것은 아예 없다. 그것은 불가능하다. 하고 자자.

하지만 도무지 의지력이 없다면 자고 할 수 있다는

막연한 현재의 기대를 무시하고 못한다는 가정으로 출발해 그 뒷단의 일을 생각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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