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외국어 영역

by Chiara 라라


책이란 책은 어떠한 종류든지 굉장히 좋아해서 늘 끼고 살았다. 소설책, 만화책, 그림책, 심리학 책, 인문학서, 철학서, 과학서 등등 모두 한글 번역이 되어 있는 책으로 었다.


반면에 외국어는 너무나도 어려웠고, 그래서 싫어졌고, 따라서 잘하지도 못했다. '어렸을 땐 재미있어하고 좋아하더니..' 라던 엄마의 안타까운 목소리가 들려온다. 중학생이 되면서부터 어떤 과목을 싫어하냐는 질문을 받으면 '영어'라고 대답했다. (신기하게도 대부분의 영어 선생님은 좋아했다!) 그리고 고등학교 때 그 대답이 바뀌었는데, 그건 바로, '프랑스어'. 우리 학교 이과는 프랑스어만 제2외국어로 가르쳤다. 차라리 일어를 배웠으면 덜 싫어했을 것 같다.


하지만 사람 일은 모르는 법. 이과에 공대생이고 외국어를 싫어했던 내가, 지금은 영어를 업으로 삼고 있다.


20대 초반, 일본어 번역에 관심을 갖게 된 건, 순전히 책 때문이었다. 일본 작가를 좋아하게 되었고 그 책들을 일본어 원서 그대로 읽고 그 느낌을 온전히 받고 싶어서였다. 그래서 일본어 공부를 시작했다. 일본어과 수업도 들었다. 공대생은 나 혼자였고, 당연히 어려웠고 나 혼자만 헤매고 있었지만 은근한 재미를 느꼈다. 역시 원서강독이라는 목표가 있어서인지 잘하지는 못했지만 흥미로웠나 보다.


전공이 건축설계라 대학 입학 때부터 유학을 생각했다. 처음에는 밑도 끝도 없이 그냥 사랑하는 이탈리아라는 나라가 목표여서 이탈리아어를 배웠다. 그것도 잠시, 이탈리아는 예술의 나라이기는 하지만 건축으로는 많이 정체되어 있기도 해서, 발전 중인 미국으로 방향이 바뀌었다. 그때부터 제대로 공부를 시작한 것이 영어이다. 우와, 토플이 나에게는 딱이었다. 토플에는 다양한 주제의 지문들이 나온다. 여러 가지 책을 읽는 듯한 느낌이 들었고, 그를 통해 새롭게 알아가고 배우는 것들이 정말 재미있었다. (재미가 있다고 쉬운 것은 아니다. 참으로 어렵다는 것을 인정한다.)


하지만 졸업 후, 설계사무실을 다니면서 유학의 방향이 뚜렷해진 곳은 프랑스였다. 그래서 출근 전에 학원을 다니며 프랑스어를 공부했다. 일본어에 이탈리아어에 영어에 프랑스어까지. 세상에, 이런 일이.!!! (능숙한 건 하나도 없었지만.)


결국, 유학은 피눈물을 흘리게 된 사정이 생기어 가지 못했다. 아무것도 제대로 이루지 못한 채, 내 미래도 모든 외국어도 사요나라. 차오. 바이 바이. 살뤼.


남자들과 싸워가며 열심히 설계사무실에서 고군분투했다. 하지만 건강 악화. 남자들을 이기기는 쉽지 않았다. 악으로만 버티기에는 체력이 받쳐주지도 않았다. 나 혼자 여자였기에 근무환경도 열악했다. 이사님과의 한바탕을 계기로 그날로 짐을 싸 들고 설계사무실을 뛰쳐나왔다.

필요 없어, 안가 이제. 좀 쉬어야겠어.


확실히 스트레스가 줄어드니 몸도 마음도 조금씩 회복이 되어갔다. 하지만 막상 시간이 많아지니 이제 뭐 먹고살아야 할지 불안해졌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이렇게 있는 것보다는, 영어는 언제고 쓸 일이 있을 테니까 영어 공부라도 하자 싶어서 어학원에 등록을 했다. 사실, 내 진심 어린 속마음은 영어권 나라로의 도피였다. 유학 갈 수 없었던 쓰라린 기억과 돈 벌어서 딱 서른 살이 되면 이 나라를 떠야지 하는 다짐이 내 마음속 깊이 있었다.


그리고 그 당시에는 예측할 수 없었던, 내 나이 서른. 내가 서른이 되었을 때, 비록 이 나라를 뜨지는 못했지만, 원어민들에게 둘러싸여서 영어를 계속 쓰는 환경에 있게 되었다.


언어는 사람에게 다양한 기회를 제공해 준다는 말을 믿는다. 언어뿐만 아니라 어떤 한 분야에서 오랫동안 종사하고 그 분야에 대해서 잘 알게 되면 확실히 영역을 넓혀 나갈 수 있는 기회도 많이 생긴다. 하지만 그건 쉬운 일이 아니다. 한 언어를 잘하게 되는 것도, 한 분야에서 경력을 쌓는 것도 굉장한 인내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 일이다.


어떠한 일이든 기회가 왔을 때, 스스로가 부족하게 느껴지더라도 용기를 내어서 그 기회를 잡는 것은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기회를 잡는 것이 아니라 기회가 다가왔을 때 용기를 내는 것이다. 그 '기회'라는 것이 쉽게 오지도 않을뿐더러, 그 기회에 '용기'를 내는 것은 더욱이 어려운 일임을 나는 충분히 알고 있다. 내가 그랬으니까. 건축에서 영어로의 도전은 큰 용기가 필요했다. 하지만 내가 했으면 누구든지 할 수 있다.


어렵고 두려워도 한 걸음 내딛는 용기, 용기를 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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