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충우돌 첫 출근, 첫 캠퍼스

by Chiara 라라

첫 출근 날짜가 정해졌다.


새로운 학기는 이미 시작되어서 분당에 있는 한 캠퍼스로 발령이 났다. 갑자기 그만두게 된 선생님을 대신해서 강의를 하고, 다음 학기에 서울 캠퍼스로 발령이 나기 전까지 그 캠퍼스에서 일하는 조건이었다. 조금 멀기는 했지만 서울로 오는 것이 확정이 된 상태였고, 출근 시간이 늦으니까 괜찮을 거라는 생각이었다. (학원에서는 각 지역에 있는 학원들을 캠퍼스라고 부른다. 서울의 대치캠퍼스, 부산의 서면캠퍼스 등.)


다행히 캠퍼스 근처에 서울로 오가는 광역버스 정류장이 있었다. 출근 첫날, 여유롭게 출발해서 여유롭게 도착을 했다. 하지만 근처에 어디 마땅히 쉴만한 곳이 없었다. 그래서 한 바퀴 돌아보며 동네 탐방을 했다. 서울에서 나고 자란 나에게 이 동네는 조금 조용한 시골 마을의 느낌이었다.


출근 시간보다 조금 일찍 캠퍼스에 들어가서, 원장님을 만나고 교수부장과 선임강사와 인사를 나눈 후, 교무실로 가서 한국인 선생님들과 원어민 선생님들을 만났다. 내 자리는 교무실 입구 쪽 프린터가 바로 옆에 있는 맨 끝자리였다. 프린터가 있으니 선생님들이 자주 지나다니는 자리였다.


원어민과 한국인이 50:50으로 수업하는 어학원이기에 내 옆은 원어민 강사의 자리였다. 원어민이다!! 아.. 여행 가서 만난 원어민도 아니고, 이렇게 직장 동료로, 선생님으로, 원어민을 만나니까 어찌나 가슴이 쿵쾅쿵쾅 거리던지.. 나 지금 떨고 있니.. 하지만 용기를 내어 "안녕! 나 글라라야 반가워, 잘 부탁해!"라고 말을 꺼냈다. 그 원어민도 인사를 하더니, 덧붙여서 뭐라 뭐라 하는데... 이 원어민 도대체 나한테 뭐라고 얘기하는 거지? 하나도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평소에 워낙 말이 빠르기도 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내가 신입 같으니까 나를 떠보려고 일부러 더 그랬다고 한다. 한국에서 직업을 가지고 살고 있으면서, 한국 사람을 무시하다니!!! 내가 당황하는 모습을 보이자 이 원어민은 그다음부터 나에게 한마디도 단 한마디도 말을 걸지 않았다.


나는 첫날부터 좌절했다. 실력이 안 되는데 괜히 영어 선생님을 한다고 도전했나 싶어서 부끄러웠고, 무시당한 것이 서러웠다. 그래도 힘내야지. 첫날부터 어떻게 모든 것이 완벽할 수 있겠는가. 다행히 몇몇 원어민들과 한국인 선생님들은 나에게 친절하게 대해 주었다. 그래서 조금은 긴장을 풀 수가 있었다. 하지만 내 바로 옆의 짝꿍 원어민이, 나를 계속 무시하니까 점점 화가 났다.


두고 보자, 내가 가만히 있지는 않을 거야. 그런데 어떻게 해야 하지?


첫 며칠은 청강과 시강의 날들이었다. 이전 수업이 어떻게 진행이 되었는지도 알아보고, 시간 분배도 확인하고, 내가 맡게 될 반의 아이들과도 얼굴을 익히는 시간이었다. 그리고 내가 앞으로 진행할 수업을 미리 시강하면서 교수부장이나 선임강사에게 피드백을 받는 시간이기도 했다.


매일매일이 긴장의 연속이었다. 다른 선생님들은 점심에 출근을 하지만, 나는 서울에서 가야 하니까 집에서 아침을 먹고 출발해야 했다. 저녁 10시가 퇴근 시간이지만 일일보고서를 작성하고 하루를 마무리하면 거의 10시 반은 훌쩍 넘은 시간이 되었다. 버스가 끊기지 않게 서둘러서 겨우 막차에 막차를 타면서 집에 도착하면 12시가 넘어 있었다. 집에 와서는 다음 날 수업 준비를 하다가 늦게 새벽이 되어서야 겨우 잠을 잘 수 있었고, 그러다 보니 잠이 턱없이 부족했다. 버스를 타기만 하면 곯아떨어지기 일수였다.


나의 첫 아이들은 천사 같았다. 담임을 맡게 된 반의 대부분이 학생 수가 많지는 않았다. 덕분에 아이들 학습지도도 수업도 관리도 처음 치고는 수월하게 할 수 있었다. 나중에 서울 캠퍼스에서 느낀 것이지만 분당이긴 해도 확실히 서울 아이들보다 순하고 착했다. 서울에서 먼저 강의를 시작했으면 몸도 마음도 더 많이 고생하지 않았을까 싶다.


수업은 재미있었다. 낮은 레벨부터 중간 이상의 레벨까지 수업을 들어갔다. 매일 다른 레벨로 수업을 하다 보니 수업 준비량이 상당했지만, 그래도 최상의 레벨은 들어가지 않았으니 다행이었다. 그리고 반을 함께 담당하는 코 티처 원어민들이 수업을 열심히 했고 별다른 문제도 발생하지 않았다. 내 옆자리 원어민은 천만 다행히도 나의 코 티쳐가 아니었다!!!


아이들이 수업을 일주일에 6번 들으면, 3번은 원어민과 3번은 한국인과 수업을 한다. 주로 원어민 선생님은 스피킹과 라이팅을 담당하고, 한국인 선생님은 리딩, 리스닝, 그리고 문법을 담당한다. 같은 반에 원어민과 한국인이 모두 들어가서 수업을 하지만, 학생들 관리는 한국인 선생님 전담이기 때문에 원어민 선생님과의 소통이 필요했다. 수업 시간에 학생들의 태도가 어떤지, 의사소통에는 문제가 없는지, 학생들이 잘하는 것과 부족한 것 등등 이야기를 나누어야 했다. 그렇게 조금씩 원어민 선생님들과 소통을 하면서 말문이 트이기도 했고 귀도 조금씩 트이기 시작했다. 물론 매번 원어민 선생님과 대화를 나눌 때마다 긴장을 했기 때문에 미리 어떤 말을 할지 생각도 하고, 적어도 보고, 연습도 하고 그랬다. 그렇게 연습을 통해서 실전에 적용을 하다 보니 일말의 여유가 생기기도 했다. 친절한 원어민 선생님들 덕분에 실력도 용기도 하루씩 쌓여갔다.


평강사는 보통 하루에 한두 타임 정도의 공강이 있다. 그 공강 시간에 식사를 하기도 하고, 쉬기도 하고, 매일 해야 할 서류 업무나 학생 관리 등을 한다. 나는 신입이기 때문에 그 공강 시간에도 틈틈이 시강을 했고 다른 선생님들의 수업을 청강했다. 그래서 거의 식사도 하지 못했다. 사실 시간이 있어도 해야 할 것들이 많고 익숙하지도 않으니까 배도 고프지 않았고 먹더라도 소화가 잘되지도 않았다. 선생님들이 같이 식사나 티타임을 얘기할 때면 나는 괜찮다고만 했다. 그래서 선생님들과 개별적으로 친해질 기회가 많지는 않았다. 내가 일부러 그런 건 아니었는데 선생님들은 나를 서울깍쟁이로 봤다고 한다. 어차피 서울 캠퍼스로 돌아갈 선생님이니까 자기들에게 정 줄 생각을 안 한다고. 물론 그건 엄청난 오해였다. 그때 만난 쌤들이자 지금은 나의 베프인 리와 애는 나에게 아직도 서울깍쟁이 얘기를 종종 한다.


바쁘니까 하루하루가 빠르게 지나갔다. 그리고 그 바쁜 와중에도 재미가 있으니까 계속 더 노력하게 되고, 노력하고 연습하고 실전으로 적용하니 실력이 늘지 않을 수가 없다. 노력이 참 중요하다는 것을 다시금 실감하게 되었다. 힘들 때마다 무언가를 견뎌야 할 때마다 내가 건축을 공부했고, 설계사무실에서 일했기 때문에 어떠한 상황에서도 꿋꿋하게 그저 견뎌 나갈 수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남자들 틈에서 어떻게 해서든지 버텼던 그 경험이 영어 선생님으로서도 버틸 수 있는 나의 큰 힘이 되었다. 잠 못 자고 잘 못 먹고 계속 일만 해야 하는 건 건축 바닥이 더 심했으니까, 이건 아무것도 아니다. 나는 잘 버틸 수 있다. 그리고 앞으로도 잘 버틸 것이다. 원어민이 나를 무시하지 못하도록!!!


리와 애는 여전히 나에게는 큰 힘을 준다. 직장동료에서 친구로! 만나면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미래를 얘기하며 함께 걸어간다!

keyword
이전 04화나의 스터디그룹 & 어학원 입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