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스터디그룹 & 어학원 입사​

by Chiara 라라

살면서 누구나 진로에 대해서, 그리고 미래에 대해서 걱정하는 시기를 겪는다. 그 첫 번째가 고등학교에서 대학 진학을 할 때인 것 같고, 두 번째가 취업을 준비할 때인 것 같고, 그 세 번째가 직장을 어느 정도 다니고 나서 계속 이 직장을 다니는 것이 과연 옳은 것일까 하고 생각이 드는 때인 것 같다. 아, 하나가 더 있을 수 있겠다. 힘들게 입사하고 열심히 버틴다고 버텼지만 그 직장이 내가 생각했던 것과는 많이 다르고, 나와는 맞지 않는다고 느낄 때.


나는 늘 꿈이 있었다. 초등학교 때는 발레리나, 중학교 때에는 나 혼자 속으로만 발레리나, 고등학교 들어와서는 외할아버지의 영향으로 줄곧 건축가. 동물을 사랑해서 중간에 수의사가 되어볼까, 라는 생각을 해보기도 했지만, 수술할 자신이 없어서 패스. 신기하게도 선생님이라는 직업은 단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이렇게 하나만을 바라보며 달리던 내가 설계사무실을 그만두었다. 첫 수술을 하고 6개월간의 치료 후 바로 재발을 했지만, 또 설계사무실로 출근하고 있었기에, 사실 언제 수술을 다시 해야 할지도 모르는 몸 상태였다. 퇴사 후 초반에는 몸을 우선으로 돌보느라 시간이 흐르는 게 나쁘지 않았다. 학원에서 스터디 조교도 하고 있었고, 공부도 하고 쉬기도 하고 스터디 그룹원들과 놀기도 하면서 봄과 여름을 지냈다. 날이 선선해지는 가을이 다가오고 있었다. 건축은 나의 건강이 허락하지 않는다. 그러면 나는 무엇을 하며 살아야 하는가.


마음이 공허해지기 시작했고, 더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건축 말고는 다른 건 할 줄 아는 게 없는데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스러웠다. 그러던 중 알게 된 것이 그림 치료와 북아트였다. 그림도 상담도 책도 내가 좋아하고 관심이 있는 분야다. 주저 없이 수강 신청을 했고, 강의를 들고 공부하며 나의 마음도 치료하고 나의 다른 길도 모색해 보면서 가을을 보냈다. 이렇게 가을을 보내느라 스케줄이 바뀌어서 학원 수업 시간도 바꾸어야 했다. 더불어 스터디 조교도 할 수 없게 되었다. 이제 막 자신감이 생겼고 재미가 붙어서 영어는 다른 수업을 들으며 계속 이어가기로 했다. 몇몇은 나와 함께 수업을 옮겼다. 그리고 새로운 수업에서 알게 된 분들이 스터디를 하자고 했다. 사실 스터디보다는 내가 6개월간 조교를 했던 것처럼 그렇게 함께하며 가르쳐주고 이끌어 달라는 요청이었다. 약간 고민하기는 했는데 조교를 했던 것처럼 이번에도 좋은 경험이 될 것 같아서 시작하기로 했다.


멤버가 구성되었다. 늦은 나이에 유학을 준비 중인 주노, 이민을 준비 중이고 한 집안의 가장인 라이언, 우연히도 라이언과 같은 나라로 이민을 생각 중인 건축가 부부 찰리와 루미, 취준생 루시, 일을 잠시 쉬고 있는 써니, 대학생 제이미와 그 친구 미스터 최, 그리고 중국에서 유학 중인 레슬리. 나까지 딱 10명이 되었다. 이 멤버를 구성하는 데에는 주노의 역할이 컸다. 나보다 절반 이상이 나이가 많으니까 쉽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목표가 뚜렷한 성인들이 있었기에 누구보다도 그들이 솔선수범 열심히 했고, 그 노력하는 모습에 나머지 절반도 따라서 노력하게 되었다. 그리고 우리는 잘 어울렸다. 사회생활을 많이 한 어른들이라고 대우받으려 하지 않았고, 학생들이라고 어리게 행동하지도 않았다. 공부하고 밥 먹고 술도 한잔하며 서로의 미래를 응원해 주고 하루하루를 열심히 보냈다.




스터디는 이렇게 이루어졌다.


* 그날 배운 회화 연습 (영어로만 표현하기) -> 영어 동화책 공부 -> 문법 -> 질문하며 서로 알려주기 -> 집에 가서는 각자 정해진 날짜에 영어로 쓴 글 올리기


나는 문법을 공부해서 멤버들에게 내가 할 수 있는 한 알려주기 시작했다. 늘 6-7명은 스터디를 했기에 칠판을 사용해서 설명했다. 설명하기 위해서는 내가 제대로 알아야 된다. 이렇게 나의 첫 강의가 여기서 시작되었다. 하루하루 공부를 하고 공부한 것을 설명해 주고, 이렇게 몇 달을 반복하니까 영어 문법에 꽤 익숙해졌다. 오히려 영어에 대한 나의 이해력과 설명 능력이 늘고 있었다. 그 수업을 수강하는 학생들이 열심히 스터디를 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주디 선생님은 우리를 응원해 주셨고, 틈틈이 지식적인 부분에서도 도움을 주셨다.


겨울이 찾아오면서 각자의 사정에 따라 인원이 줄어들었다. 그리고 드디어 라이언은 캐나다로 이민을 떠났다. 몇 달 뒤에 찰리와 루미도 캐나다로 이주했고, 라이언 가족과 비슷한 지역에 터전을 잡아서 종종 만나서 좋은 시간을 보내고 있다는 연락도 왔다. 실생활은 쉽지 않다는 소식에 안타까워하기도 했지만, 우리와 함께했던 공부로 인해서 많은 도움을 받고 있다는 이야기에 뿌듯하기도 했다. 라이언과 찰리는 아직도 공부하며 갈 길을 찾지 못하는 우리들에게 힘을 실어주기도 했다. 주노는 싱가포르로 유학을 떠나고 연락이 두절되었다가도 궁금할 때쯤이면 영어로 쓴 주노의 손 편지가 갑자기 날아오기도 했다.


나는 미술치료 과정도 수료하고, 북아트와 어린이 북아트 사범증도 취득하였다. 하지만 미술치료의 길로 가려면 상담대학원의 진학이 필요했고, 북아트의 길로 가려면 경력이 필요했다. 그렇게 고민을 하고 있는 나에게 주디 선생님의 연락이 왔다. 아직 서울에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분당지역에서는 유명한 어학원이라며 운을 띠었다. 지금 분당지역 곳곳으로 어학원을 많이 확장하고 있어서 선생님이 필요한데, 혹시 관심이 있는지 물어보셨다. 원어민 선생님과 한국인 선생님이 50:50으로 수업을 하고 초등관과 중등관으로 이루어진 어학원이라고 했다. 다른 어학원과는 달리 회사 체계로 이루어져서 선생님들도 정직원이기 때문에 안정적인 장점이 있다고 했다. (일반적으로 어학원 선생님들은 정직원보다는 프리랜서의 개념이기 때문에 세금이 3.3%이다.)


제일 먼저 든 생각은, "내가 영어를 가르칠 수 있을까?"였다.

그리고 그다음에 든 생각은, 재미있지 않을까?"였다.


"한번 해 볼까? 시도해보고 이 길이 아니면, 내 실력이 못 미치면 다시 돌아오는 거지 뭐. 지금 딱히 할 것이 있는 것도, 정해진 것도 없으니까."


물론 입사는 그냥 이루어지지 않는다. 서류심사가 있었고, 본사에서 시강과 면접이 있었다. 영어 인터뷰가 아니어서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서류보다는 선생님의 진짜 실력을 보고 싶어 했다. 그래서 시강 준비가 무엇보다도 중요했다. 학원계를 전혀 알지 못하는 나에게 주디 선생님이 하나부터 열까지 다 알려주셨다. 많은 연습을 했다. 선생님 앞에서도, 스터디 그룹원들 앞에서도, 혼자서도, 계속 연습했다. 분당에 있는 본사에 가서 시강을 했고, 면접을 보았다. 시강은 연습한 대로 별 무리 없이 진행되었다. 그리고 면접도 크게 어렵지는 않았다. 사람들 앞에서 강의를 하고 있는 나 자신이 어색하게 느껴졌지만 많이 힘들지는 않아서 오히려 나 자신이 신기했다. 주디 선생님께서는 회사에서 나를 마음에 들어 하는 것 같다고 말씀해 주셨다. 하지만 아직 입사가 확정된 것은 아니라고도 말씀해 주셨다. 이 주 정도 뒤에 연락이 왔다. 그렇게 나는 어학원에 한국인 선생님으로 입사하게 되었다.


건축가에서 영어 선생님으로 직업이 바뀌는 순간이었다.


나는 도전을 했다. 그리고 앞으로의 길이 훨씬 더 멀고 험난할 거라고 예상했다. 그래도 일단은 가보기로 했다. 내가 가보지 않으면 영영 그 길에 대해서 알 수 없을 테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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