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라라 소소 105
작은 집에 꽃이 한 송이라도 있으면 집이 온통 환한 느낌이고 기분도 좋아진다. 향까지 좋으면 수시로 다가가 코를 킁킁거리며 향기를 맡는다. 나를 위한 작은 사치를 부려도 좋을 텐데 그런 여유는 생기지 않아 집에 생화가 있는 경우는 일 년에 몇 번이고, 겨우 한 손에 꼽는다. 그것도 다 받은 꽃이다.
부모님께서 사시는 아파트 단지에는 계절마다 화단의 꽃이 조금씩 바뀐다. 가을에서 겨울로 넘어가는 조금 긴 기간에는 국화가 많이 심겨있다. 색도 다양하고 향도 진한 편이라 지나갈 때마다 잠깐 멈춰 서게 되는데, 무리로 길쭉하게 뻗은 국화는 보기에 그리 화려하거나 아름답지는 않다. 그럼에도 스쳐 지나가는 국화꽃 향기에 바쁜 걸음을 옮기다가도 기분이 좋아져서 싱긋 미소 짓는다.
예전에 행사 때 사용하고 남은 국화를 조금 받아 집에 가져온 적이 있다. 매일 물을 갈아주고 줄기도 조금씩 잘라주니 잎이 마를 때까지 색과 향이 오래 유지되었다. 그러고도 기분이 좋아 계속 물을 갈아 주었는데 어느 날 보니 뿌리가 나오고 있었다. 다 말라 꽃잎이 떨어지는 데도 물속으로 뿌리를 뻗는 걸 보면 국화는 엄청 생명력이 강하구나 싶었다. 내가 국화를 심어 잘 키울 수 있을까 고민하며 어떻게 해야 할지 찾아보기도 했는데, 결국엔 꽃이 다시 필 그 긴 시간 동안 그 국화를 화분에 옮겨 심고 잘 돌볼 자신이 없어 포기하고 말았다. 국화를 보면 그때 생각이 난다. 진한 붉은빛, 와인색이라고 하기에는 조금 어두운 핏빛이었던 국화는 그렇게 사라졌다.
국화에 대한 오래된 기억 하나 :
지금도 꽃의 종류를 다양하게 알고 있는 건 아니지만 꽃은 장미와 튤립과 토끼풀꽃이 전부라고 여기던 어린 시절에는 꽃 그림을 무조건 동그랗게 태양처럼 그리곤 했다. 지금도 꽃을 그리라면 그런 모양이 제일 먼저 나오기는 한다. 아무튼, 어린 시절에는 조부모님 산소에 갈 때마다 국화꽃을 보았다. 그때는 국화라는 걸 알지 못했고, 다만 같은 꽃인데 작고 색이 다양한 꽃이 다발이나 화분에 가득 있어서 예쁘다기보다 조금 이상하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장미나 튤립 같은 예쁜 꽃을 놓으면 좋을 텐데 하는 아쉬운 마음도 있었다. 조부모님을 뵌 적이 없어 애정이 하나도 없는 나는 산소에서 풀밭을 돌아다니며 곤충을 구경하고 계단식 봉분들 저 너머로 보이는 저수지에만 관심이 있었다. 국화는 화분에서 땅으로 옮겨 심어졌고, 그다음에 가면 바짝 마른 가지만이 있었다. 또 다른 국화를 심기도 했는데, 꽃이 피기 전의 꽃봉오리가 많은 화분이어서 초록의 잎사귀가 대다수였다. 꽃이 활짝 핀 모습을 본 적이 없다. 따뜻한 날이 오면 국화가 피고, 고인들의 넋을 활짝 핀 꽃이 위로하는 걸까.
국화에 대한 또 다른 기억 하나 :
[국화꽃 향기]라는 영화가 있다. 박해일 배우님을 좋아해서 보게 된 영화인데, 초기작품이라 연기가 조금은 어색한 감이 있지만 연기 말고도 시선이 머무는 장면이 많이 있다. 다른 이유로도 여러 번 반복해서 본 영화다. 책이 많이 나오고, 손으로 책을 직접 만드는 이야기가 나오고, 배경음악이 좋고, 고인이 된 장진영 배우님이 매력적이어서 오래된 영화이기는 하지만 자꾸 보고 싶어진다. 영화를 보고 나서 국화꽃 향기가 어떨지 많이 궁금해했던 것 같다. 영화 속에서 인하가 희재를 처음 마주치고 지나쳤을 때의 향기. 최근에 넥플릭스에 [국화꽃 향기]가 올라왔다. 다시 봐야겠다. 아픈 마음으로. 그리운 마음을 품고.
나의 오랜 기억에서 국화는 죽음과 관련이 있다. 지금도 어쩌면 죽음과 연관 지어 국화를 생각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죽음은 삶의 다른 말이다. 잘 죽기 위해서 잘 사는 거라고 종종 생각하는데, ‘잘’이라는 말 때문에 늘 혼란스럽다. 그래서 그냥 하루를 살아간다. 가끔 국화를 바라보고 국화꽃 향기를 맡고 국화꽃 작은 다발을 산다. 다른 꽃들에 비해 저렴해서이기도 하지만 국화는 나를 끄는 힘을 조금 갖고 있다. 내가 죽음을 생각하며 국화를 구입한다는 걸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는다. 삶을 위해서 선물해 주는 것이므로 굳이 죽음을 이야기할 필요는 없다.
부모님 집에 갈 때마다 아파트 화단의 그 하얀 국화 다발은 여전히 내 눈을 사로잡는다. 예쁘기보다 투박한 뭉치여서 내가 조금 꺾어 가져간다고 해도 아무도 모를 것 같다. 그래도 꺾는 건 마음이 놓이지 않는다. 모든 꽃들은 잘림 당하여 인간의 손으로 옮겨지는 거지만 왠지 내가 꺾으면 안 될 것만 같다. 무엇보다 공공 화단에 있는 꽃이어서 개인이 욕심을 부린다면 한도 끝도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영하의 기온이 시작되었다. 강추위의 날은 점점 더 늘어날 거다.
국화는 추위에 얼마나 견딜 수 있을까.